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는 검찰 내부의 성폭력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성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뒤흔들며 2018년 한국 미투 운동의 진원지가 됐다.
이후 검찰은 ‘검찰 성추행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출범하며 “검찰 문화를 뿌리째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86일 동안 (서 검사가 폭로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사건을 포함한 검찰 내부의 성폭력 사건들과 인사 불이익 등 2차 가해 정황을 조사한 조사단은 지난 26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결과로 조사단은 안태근 전 검사장을 포함한 전, 현직 검사 및 수사관 등 7명을 재판에 넘겼고,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권 확보와 2차 피해 방지 등을 골자로 한 제도 개선책도 제안했다.
그러면 모든 게 잘 마무리된 걸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아니, 사실은 조사단 출범의 이유였던 서지현 검사 측부터가 조사단의 결과 발표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수사 의지, 능력, 공정성 결여된 3無 조사단"
26일 서지현 검사의 대리인단은 조사단의 결과 발표에 입장문을 냈는데, 입장문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3無 조사단”이라는 평가였다. 대리인단은 조사단의 수사가 “예상했던 대로, 검찰 보호를 위한 수사”였다며 “처음부터 수사 의지, 능력, 공정성이 결여된 3蕪 조사단을 구성해 부실 수사를 자초했다”고 밝혔다.
핵심적인 문제는 서지현 검사의 인사 불이익 등 ‘2차 가해’ 문제였다. 조사단은 인사 불이익과 관련한 안 전 검사장의 구체적인 지시 사항이나 관련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물증이 부족해 다시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가려야 할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서 검사 대리인단은 조사단이 처음부터 안 전 검사장의 인사 불이익 등 2차 가해 항목에 대해선 수사할 의지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조희진 조사단장의 자격 여부부터가 문제였다. 조 단장은 과거 서지현 검사의 인사 불이익 문제가 관련된 2014년 사무감사 결과를 결재한 이력이 있다.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대리인단은 ‘오히려 조 단장이 조사 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추행 조사단’이라는 조사단의 명칭도 문제가 됐는데, 조사 목표를 명시해야 할 조사단 명칭부터 그 범위가 ‘성추행 조사’만으로 한정된 만큼, 조사단이 가해자의 직권남용엔 무관심하고, 성추행 부분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수사의 속도와 조사단 멤버 구성도 의지 부족의 증거로 제시됐다. 증거 인멸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을 조사단에 배치해 신속한 압수수색 등을 진행해야 했는데, ”이를 잘 알고 있는 검찰이 성폭력 블랙벨트 검사 등 성폭력 여검사 위주로 조사단을 구성한 것은 성추행 이외 부분에는 수사 의지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대리인단의 주장이다.
“조사단이 오히려 2차 가해에 앞장섰다”
문제는 또 있다. 폭로 이후 서 검사가 직면한 ‘피해자 비난하기’류의 2차 피해에 관련한 일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1월 29일 서 검사의 폭로 이후, 검찰 내부엔 “서 검사가 무리한 인사 요구를 했지만 안 받아들여지자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는 요지의 2차 가해성 이야기가 나돌았다. 한 부장검사는 서 검사를 가리켜 “피해자 코스프레”라 지목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직접 올리기까지 했다.
지난 24일 <한겨레>는 조사단이 이러한 2차 가해 사건들에 관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서 검사가 직접 자신을 비난한 부장검사를 명예훼손으로 수사의뢰했지만, 원본 글이 삭제된 데다 주위 검사 중 누구도 증언에 나서지 않아 조사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검찰 내부에서 “다른 사람도 서 검사를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도는 등 검찰 내 2차 가해적 환경이 여전하다는 소식까지 함께 전했다.
이에 더해 26일 대리인단은 ”법무부, 검찰 및 조사단은 서 검사의 고발 이후 허위 발표와 온갖 허위사실유포로 피해자를 음해했다”며 조사단이 오히려 2차 가해에 앞장섰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조사단은 2010년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가해 당시 이에 대한 감찰이 진행되지 못했던 이유를 두고 ”본인(서지현 검사)이 사건이 문제 되는 것을 명백히 반대해서 진행되지 못했던 과정이 1번 있었다”고 발표했다. 대리인단은 이를 “명백한 허위사실”이라 비판하며 “서 검사는 당시 검사장을 통해 사과를 받아주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렸던 것”이라 해명했다.
조사단의 위와 같은 발표는 특히 1월 폭로 당시 “제가 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주목해달라”라 요청했던 서 검사의 입장을 완벽하게 배반하는 태도였다. 검찰 내부의 성폭력 은폐 시도, 폐쇄적인 조직 문화 등을 거론치 않고 피해자의 입장(그나마도 허위사실이라 지적된)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점은 2차 가해의 혐의를 벗기 힘들다.
이후의 재판 과정이 남아있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검찰 내 성추행 폭로 이후 사건의 진행 과정은 용두사미에 가까워 보인다. 서지현 검사 대리인단은 “검찰이 신뢰 회복의 기회를 놓친 데 대해 안타까움과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안 전 검사장의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검찰 내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것으로 알려진 임은정 검사 또한 검찰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려 “조사단에서 권력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어쩔 수 없이 드러난 몇몇에 대한 최소한의 기소라는 극히 초라한 성적표를 내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