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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의 나라

  • 입력 2014.05.20 11:10
  • 수정 2014.05.20 11:53
  • 기자명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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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참 어색한 사람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서구에서 장애인에 대한 처우는 놀라울 정도로 극진합니다(도심에서 장애인들이 반복적으로 시위를 하는 우리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교통, 생활, 환경 모든 측면에서 위험 요소로 가득찬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입니다(심지어 권력자와 그 가족까지도). 이런 생각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학살은 문제의 본질이 훨씬 악랄합니다. 이윤확보에 눈이 벌개져서 왼갖 불법을 저지른 악덕 자본이 화약고를 제공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뇌관에 불을 붙이고 마침내 수백명 아이들의 생목숨을 수장시킨 것은 바로 타락하고 무능한 이 나라의 국가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경에서 뿌리까지 진상을 밝혀낸 다음, 사태를 야기시킨 책임자를 아래에서 위까지 철저히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조만간 지금보다 더 끔찍한 대형 참사가 나와 내 가족들을 대상으로 재발할 겁니다(확률적으로 당신은 안전할 것이라구요?) 1분만 생각해도 고개 끄덕여지는 이런 기본적인 인식이 마비된 사람들이 주위에 참으로 많습니다.

다음 셋 중에 하나겠지요. 첫째 독점적 안전망을 통해 24시간 생활환경 자체가 완벽히 보장되는 최상위 1% 계급. 둘째 제 처지를 망각해서(혹은 하느님이 도와서) 자기와 자기 가족만은 이런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믿는 자. 셋째 가슴과 머리가 굳을 대로 굳어져 아무리 사태의 의미를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자.

친구의 나라 터키에서도 일이 터진 모양입니다. 폭발사고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 펴고 가혹한 노동을 이어오던 광부 282명이 숨졌습니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에 걸쳐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세월호 학살에 비교해서 터키 정부의 책임이 우리 정부보다 훨신 더 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터키 사람들이 절제와 관용이 부족한 “미개한” 국민이라 그런 걸까요?

GDP로 우리와 경쟁하는 다른 선진국에서 국가기관이 개입한 이같은 참혹한 사태가 터졌을 때, 그 나라 국민들이 어떻게 대처를 할까 한번 생각해보시라 간곡히 권합니다.


세월호 학살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은 할 수도 있고 안 할수도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절대적 책무입니다. 이 일을 게을리하거나 포기하면 반드시 제 2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때는 다름 아닌 나와 당신의 아들딸들이 희생양이 되고 말 것입니다.

멀쩡한 얼굴로 멀쩡한 말을 하고 돌아다니는 괴물들이, 위로는 청와대부터 아래로는 인터넷 공간까지 가득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해 생생히 알게 되었습니다. 찢어지는 타인의 고통과 절망에 무감각한 자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눈물과 분노를 비웃기까지 하는 자들. 그러한 괴물들이 누군지 뚜렷이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까요.

서글프고 아픈 밤이 하늘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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