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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교실 죽은 학교, 그리고 '키팅 선생' 김석준

  • 입력 2014.05.19 11:34
  • 수정 2014.05.19 11:39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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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가 불거질 때나 교육감 선거철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20여년 전 상영된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가 그것이다. 암울한 교실과 교권에 갇혀 신음하는 학생들을 일깨우는 한 교사와 그로 인해 변화돼 가는 학생들을 통해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보기 드문 수준급 교육 관련 영화다.

죽은 학생, 죽은 교실, 죽은 학교에 나타난 한 교사

변화는 한명의 교사에 의해 시작된다. 전통, 명예, 탁월, 훈육을 교육목표로 내건 보수 명문학교인 웰튼 고등학교에 키팅이 교사로 부임해 온다. 그의 수업방식은 권위적인 학교 입장에서 볼 때 파격적이었다.

교과서의 한 부분을 가르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며 배울 필요가 없으니 찢어버리라고 말한다. 오래된 사진 속 얼굴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교실에 갇히지 말고 ‘너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Carpe diem)’고 열변을 토한다. 사진 속 얼굴들은 나이 먹어 이미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선배 모습이었다.

휘트먼의 시 제목(오! 캡틴, 나의 캡틴!)을 인용해 자신을 ‘선생님’이 아닌 ‘학급반장’ 정도로 대해 달라고 말하는 교사 키팅. ‘세상을 넓고 다양하게 봐야 한다’며 교탁에 올라가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선생님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키팅이 주도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문학서클에서 활동하며 학생들은 서서히 자신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한 학생은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 기뻐하고, 소극적인 성향 때문에 의사표현이 서툰 어떤 학생은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당당한 청년이 돼 간다. 모두 사랑의 시를 쓰고 미래를 꿈꾸는 멋진 청소년으로 변모해 가던 중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변화하는 교실 주도한 키팅, 희생양 돼 학교 떠나는데

의사가 되라는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힘겨워 하던 닐 페리. 키팅의 가르침 덕분에 문학에 재능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익스피어의 연극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꿈을 키워갔으나 권위적인 닐의 아버지는 아들을 호되게 꾸짖고 당장 군사학교로 전학을 가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라고 호통을 친다.

크게 낙심한 닐은 아버지의 총으로 자살을 하고, 닐의 부모와 학교장은 키팅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태를 수습하려 든다. 결국 키팅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

키팅을 대신 수업을 맡게 된 교장이 학생 모두의 교과서에서 동일한 부분이 찢겨 없어진 것을 보고 언성을 높일 그 때, 학교를 떠나는 키팅이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보러 교실에 들어선다. 작별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릴 무렵 학생들은 선생님의 어떤 모습을 생각해 낸다.

키팅이 그랬던 것처럼 책상에 올라서는 학생들. 그 수가 늘어나자 놀라 소리치며 막아보려는 교장. 거반의 학생들은 책상에 올라가 ‘세상을 넓고 다양하게 보라’며 자신들을 일깨워 준 키팅에게 존경을 표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컷>

40년 전 부산에도 비슷한 일이

이 영화를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 40년 전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집권연장과 공안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교련과목을 도입했을 때다. 당시에는 현역군인이 교련을 맡았고 학생들은 교련교사를 ‘훈육관’이라고 불렀다.

부산고 훈육관은 학생들에게 ‘불독’이라고 불릴 만큼 악명이 높았다. 1973년 10월 ‘불독 훈육관’은 학생들에게 여름 동안 신었던 흰 운동화를 검정 운동화로 바꿔 신고 오라고 호령을 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신발을 새로 살 형편이 못됐던 한 학생은 궁리 끝에 흰 운동화에 검정 잉크를 칠하는 것으로 훈육관의 지시를 대신하려 했다. 검정 잉크를 칠한 신발을 본 훈육관은 그 학생을 구타하고 기합을 줬다. 그리고는 신발을 압수했다.

<고등학교 교련 수업 장면>

독재정권 공안횡포에 맞섰던 부산고 2학년 3반

돈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잉크 칠을 한 것인데 온갖 모멸을 당한 것이다. 맨발인 급우의 모습에 반 학생들은 분개하기 시작했다. 작심한 반 친구들은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맨발로 교련 수업에 들어가 목총 수령을 거부한 채 훈육관에게 공식 사과와 함께 불필요한 신발 단속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훈육관은 노발대발했고 교장까지 학생들을 야단쳤다. 학생들이 단체행동을 멈추지 않자 결국 훈육관이 무릎을 꿇었다. 17세 학생들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키팅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한 학생이 있었다. 부산대 사범대 김석준 교수가 바로 그다. ‘키팅의 교실’이 그랬듯이 ‘김석준의 부산고 2학년 3반’도 잘못된 교육과 부당한 학교행정에 정면으로 맞섰다. ‘김석준 교실’의 시대적 배경은 박정희 독재의 한복판. ‘키팅의 교실’에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했을 터, 그런데도 정말 용기있는 일을 해낸 것이다.


‘17세 키팅’, 부산의 대표적 진보인사 되다

김석준. 대학 시절 서울대 학생운동에 앞장섰다가 건강이 크게 악화되는 바람에 ‘학문을 통한 운동’에 뜻을 세우고 교수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진보 인사이기도 하다.

몇 차례 출마도 했다. 하지만 당선과 자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보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출마의 목적이었다. 일화가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다. 그가 소속된 진보신당은 야권 후보단일화 거부를 당론으로 확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김석준 교수는 당론을 뒤로 하고 민주당 김정길 후보와 단일화에 나선다. 김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내가 징계 당하지 않으려면 김정길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에게는 당론보다는 진보 영역 확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죽은 교실을 산 교실로 바꿔놓기 위해

‘17세 키팅’. 이런 그가 부산시교육감에 도전한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사범대 교수로서 수천 명의 제자를 길러냈고, 그 제자들이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진보적이지만 상식적이어서 대중적 신뢰를 받는 인물이다.

변화는 한 둘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가 교육감에 도전하는 거다. ‘죽은 교실’을 ‘산 교실’로 바꿔놓으려 했지만 키팅은 결국 학교행정의 수장에 의해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지 않던가. 교장이 키팅 같았다면 교실과 학교는 어떻게 변했을까.

50대 중반이 된 ‘17세 키팅’. ‘키팅 선생님’이 못 다하고 떠난 교실의 변화를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죽은 학생의 교실’ ‘죽은 교사의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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