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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가전사> 유극량과 임진강 전투

  • 입력 2014.05.16 10:09
  • 수정 2014.05.16 10:47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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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엽의 어느 캄캄한 밤, 한양 대갓집의 담을 넘는 사람이 있었어. 밖에서 안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내닫으려는 움직임이었지. 그러나 여간 힘들지 않은 듯 몇 번이나 미끄러지다가 겨우 낑낑대며 담 위에 오른 그림자는 한숨에 풀썩 뛰어내린 후 절룩거리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집의 주인은 홍섬이라는 양반이었고 도망자는 그 집의 계집종이었어. 그녀는 일을 하다가 그 집의 가보 같은 물건을 깨먹은 참이었거든.

그녀는 멀리 멀리 도망을 쳐. 문경새재 넘어까지 도망가서 한 좌수의 첩이 돼서 아이를 낳는다. 서자였지. 임진왜란 이후만큼은 아니라도 점차 적서의 구별이 뚜렷해져 갈 때였고 역시 이 아이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을 겪으며 자랐지. 이후 아이는 홍길동처럼 집을 나서기로 해. 어머니도 함께였지. 홍길동처럼 기골이 장대하고 헌헌장부에 누가 봐도 장군감이었던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그리고 아물지 않은 차별의 상처도 안고 경기도로 다시 올라온다. 그의 이름은 유극량.

그는 타고난 무골이었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무예를 익히고 공부를 하여 무과에 급제하게 된다. 가문의 영광일 일이었지만 그에게 가문이란 게 있을 리 없었지.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발생해. 급제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이내 낙심하여 눈물을 떨구고 만다. 자신이 노비였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거야. 신분은 어머니를 따라가는 게 당시 법도였으니 유극량도 노비의 신분이었던 거지. 하늘이 꺼지는 한숨과 소리없는 통곡 이후에 유극량이 택한 길은 어머니의 주인 홍섬을 찾아가는 거였어.

“대감마님. 소인 대감마님의 노복이 되겠나이다. 소인의 어미가 모년 이 집에 죄를 짓고 도망친 아무개이옵니다.” 그는 자리 위에 엎드렸다. 이른바 석고대죄.

영의정도 몇 번씩 지낸 홍섬이었지만 좀 기가 막혔어. 수십년 전 일이 가물가물한데 갑쟈기 웬 기골장대한 청년 무과 급제자가 자기 앞에 엎드려 죄를 청하니. 하지만 홍섬도 인물이었어. “네가 정녕 그 아이의 아들이냐?” 유극량은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사실입니다. 홍섬은 한동안 유극량을 바라보다가 뜻밖의 명령을 내린다. “여기 주안상 차려 오거라.” 그리고 유극량을 안으로 들여 위로한 다음 또 한 번 호령을 하지. “아무개의 노비 문서를 가져 오거라.” 즉 유극량의 어머니의 노비문서 말이야. 홍섬은 그 노비문서를 유극량 앞에서 불살라 버린다. “네 기개가 어찌 노비에 그치겠느냐. 이제 너는 노비가 아니고 조선의 무과 급제자다. 내가 너를 노비로 보지 않으니 네가 나를 주인으로 섬길 것도 아니요, 무반으로서 네 주인은 임금이요 백성일 뿐.”

이렇게 유극량은 벼슬길에 오르게 돼. 홍섬은 무던한 인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지. 유극량의 벼슬길은 그 능력에 비해 순탄하지 못했고 항상 주변의 쑥덕거림을 받아야 했지. 뭘 하나 잘못하면 “종놈의 자식이 할 수 있나” 소리를 들었고, 상관으로 부하를 불러도 “어 거 참 양반더러 오라 가라네.”하는 식의 행동에 속을 썩어야 했지.

그러던 그가 전라 좌수사라는 직위에 올랐어. 정3품. 그러나 유극량의 승진은 바로 구설수에도 오른다. “사람됨이 미천하여 그런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겠나이까.” “능력은 있다 하나 본디 비천한 신분, 영이 안설까 두렵습니다.” 유극량은 바로 잘린다. 유극량으로서는 참담한 일이었겠지. 그나마 다행한 일은 그 후임자가 바로 이순신이었다는 사실이야. 이순신도 정읍 현감에서 벼락 승진을 한 케이스여서 말 많은 사간원 관리들이 투덜거렸는데 이때는 선조 임금이 입을 막아 버리지. “바꿀 수 있다면 왜 안 바꾸겠나. 더 이상 입 놀리지 마라.” 그렇게 단호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유극량 때 찧었던 입방아에 임금이 질려 버린 탓도 크지 않았을까.


임진왜란이 터졌어. 유극량은 죽령을 지키다가 후퇴해서 임진강 방어선에서 왜군과 대치했지. 임진강은 천혜의 방어선이었고 일본군은 도강 수단이 없었어. 그런데 일본군이 천막을 불사르고 짐짓 후퇴하는 기미를 보여. 어 놈들이 도망간다. 싸우던 적이 도망가며 등을 보이면 사기가 두 배가 되는 건 동네 강아지부터 군 사령관까지 동서고금의 동물이 똑같지. 거기다 이쪽에는 형 신립 장군의 죽음 이후 복수심에 불타던 방어사 신할이 있었어.

“도원수! 칩시다!” 도원수 김명원은 말렸지만 책상물림 한응인은 신할에 동의했어. 이때 필사적으로 말리고 나선 게 유극량. “속임수입니다. 조금 더 두고 봐야 합니다.”
“이봐 당신 눈깔에는 왜놈들 도망가는 게 안보여? 지금 안 치면 놈들이 경상도까지 내려간 뒤에 덮치겠다는 거야? 지금 저놈들을 치지 않는 건 이적행위요!”“
“신중해야 합니다.” 유극량이 계속 반대하자 신할은 칼을 빼든다. “천한 것이 겁을 먹고.”
이미 백발 노인이었다는 유극량의 눈에도 핏발이 섰을 거야. 핏발 선 눈에 눈물도 돌았겠지. 그러나 그는 화도 내지 못한다. 뚝뚝 끊어 가며 이렇게 말할 뿐 “내가 군인이 된 지가 몇 년인데 목숨을 아까와하겠습니까. 단지 나라의 일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히 그러시다면 제가 선봉을 서겠습니다.”

신할의 군대는 기어코 임진강을 건넌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바대로 함정을 파고 기다린 일본군의 밥이 되지. 신할은 죽고 한응인은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유극량은 최후까지 싸운다. “여기가 내 죽을 자리다.” 그는 강가에 늠연하게 버티고 서서 활을 당긴다. 한 발, 두 발, 세 발, 흩날리는 백발의 노장은 어지러이 도망가는 조선군 사이에서 홀로 버티며 싸웠다고 해. 어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마지막 순간에 노래를 불렀다고 해. 어떤 노래였는지는 몰라도 그 노래를 부르면서 그는 꺽꺽거리고 울었을 것 같다. 활을 당기던 그는 일본군이 접근해 오자 칼을 쳐들고 달려갔고 머지않아 한많은 노구를 임진강변에 누이게 되지.

도순찰사 한응인은 문관으로 전쟁을 몰랐고 신할은 형 신립의 죽음 이후 복수심으로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들은 조급했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이라고 믿어 버린 순간 그 유리함을 이용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멍청해 보였고 그들을 경멸했던 거지. 그들 눈에 비친 유극량은 겁쟁이였고 그에 동조하는 도원수마저 아둔하게 보였어. 실제로 한응인은 상관인 도원수 김명원을 무시하고 작전을 펴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지만 이들은 적도 모르고 자신들도 몰랐던 거지.

거기에 비천한 종의 아들 출신인 유극량은 그들의 추상같은 대의명분에 반하는 비겁함을 뒤집어씌우기 딱 좋은 만만한 존재였던 것이고 말이야.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1592년 5월의 임진강에서만 벌어질 것 같지는 않네 한응인과 신할, 유극량도 그때만 있을 것 같지는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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