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전히 제주 4·3이 ‘좌익 폭동’ 때문이라는 홍준표

  • 입력 2018.04.03 12:24
  • 기자명 서정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4·3 희생자 추념식에 대해 한 발언이 시민들의 공분을 낳고 있다. 또, 색깔론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3일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을 맞아 페이스북에 “오늘 제주 4·3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글을 올렸다.

문제는 다음 문장이었다. 그는 제주 4·3사건을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입니다”라고 규정했다. 엄청난 숫자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 당한 현대사의 비극에 다시 한번 색깔론을 끼얹었다.

그의 말과 달리 4·3사건의 발단은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경관이 탄 말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고였다. 이에 사람들은 경찰서까지 쫓아가 해당 경관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경찰들은 총을 쏘았고 시민 6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중에는 초등학생과 젖먹이를 안고 있던 20대 여성도 있었다.

시민들은 경찰의 발포에 항의했지만 경찰과 미 군정은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오히려 시민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이에 4만여 명의 제주 시민들이 총파업을 단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의 양상은 5·10 남한 단독 선거 반대, 미군 철수 주장으로 확장됐다. 미 군중과 경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 군정의 통치 아래 있었다.

사태 진압을 위해 육지에서 경찰과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 등이 파견됐다. 미 군정에 저항한 제주 무장대와 “빨갱이를 소탕하자”는 경찰과 우익세력 등의 토벌대 사이에서 유혈 사태가 오고 갔다. 이 과정에서 무장대를 지원한다고 의심받는 주민들은 무자비하게 총살당했다. 집집마다 불에 타 마을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됐다.

미군정보보고서(1949년 4월 1일자)에 따르면 “1949년 현재 사망자 숫자는 1만 5천 명으로 추정된다”며 “사망자들은 적어도 80% 이상이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한다. 그 외 자료 중에선 사망자 수를 3만 명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9에 정도이며 그중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비율은 무려 90%에 이른다.

이처럼 제주 4·3사건을 두고 단순히 남로당 때문이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여기엔 이승만 대통령의 정권 안정화를 위한 계엄령, 무장대 진압을 위한 미 군정의 지휘·통제 등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런데도 홍 대표는 4·3사건을 ‘좌익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그는 2017년 4월 3일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에도 “제주 4.3은 소위 좌익들에게 제주도민이 이용되어서 제주도민 3분의 1이 피해를 본 사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