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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예능,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나요?

  • 입력 2014.05.14 12:12
  • 수정 2014.05.14 12:26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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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케이블 예능에는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많다.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 ‘아궁이’, 채널A의 ‘웰컴투시월드’, TV조선의 ‘대찬인생’ 등 다양한 이름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실상을 보면 마치 하나의 방송인 것처럼 닮은 점이 많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은 대개 특정한 주제에 관해 여러 패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포맷을 취하는데, 나오는 패널조차 비슷하다. 최은경 아나운서는 ‘동치미’와 ‘웰컴투시월드’의 여자MC를 맡고 있으며, 방송인 전원주·이혜정 등 이 방송의 고정패널이 저 방송에서도 패널인 경우는 종편예능에서 흔한 일이다.

ⓒ 채널A의 '웰컴투시월드'

다루는 내용 역시 대동소이하다. 위에서 언급한 토크쇼에서 다루는 주제는 크게 두 종류이다. ‘여자 대 남자’의 구도거나 ‘시어머니 대 며느리’의 구도거나. 일례로 MBN의 ‘동치미’는 최근 한 달 간 ‘손주가 사람 잡네(76회차)’, ‘우리 집에 왕이 산다(74회차)’, ‘칠순 잔치가 웬말이냐?(73회차)’, ‘늙어서 두고보자(72회차)’ 등을 방송했다. 이분화된 구도 속에서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패널들은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이해하거나 절충하려는 시도는 없다. 의견대립이 팽팽해지면 어색한 분위기를 웃고 넘기며 어찌어찌 방송은 끝이 나지만, 남성과 여성 혹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만천하에 ‘공개’되었을 뿐 ‘해결’은 없다. 방송이 끝나면 나이 지긋한 부모님들은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 모실 줄 모른다’며 푸념하시고, 20대 여성들은 ‘시월드 무서워서 결혼 하겠냐’며 울상을 짓는다. 종편예능이 ‘남자 대 여자’, ‘시어머니 대 며느리’의 갈등을 조장하는 셈이다.

ⓒ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가부장적 사고와 왜곡된 여성관이 드러나기도 한다. ‘남자가 여자의 일(여자가 하는 일)을 하면 추레하고 불쌍하지’, ‘제사 때 종갓집 며느리가 바지를 입는 게 말이 되냐’는 등 웃어넘길 수 없는 발언들에 패널들과 방청객들의 공감이 쏟아진다. 이런 논의 속에서 여성은 ‘돈 벌어다 주는 남편의 아침밥은 꼭 차려주어야 하는 존재’, ‘제사상 차리느라 고생하지만 명품백 하나만 쥐어주면 해결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TV조선의 ‘대찬인생’이나 MBN의 ‘아궁이’등의 프로그램은 심심치 않게 가부장제의 희생양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고된 시집살이와 남편의 외도를 견뎌낸 인생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들의 고난과 역경의 인생살이는 한편으로는 가부장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듯 하면서도 교묘히 이를 감춘다. ‘이렇게 힘들게 산 할머니도 있는데 요즘 젊은 며느리들이 고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와 같은 인식을 유도하여 웬만하면 참고 사는 것이 현명한 여자라는 결론에 이른다.

종편 예능에서 가부장제가 웃음과 감동 코드로 사용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무리 중장년층 시청자층을 타겟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라 해도 구시대적인 사회통념을 반복적으로 심어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 것일까. 비슷한 포맷과 비슷한 패널, 비슷한 주제로 구성된 종편 예능들. 가부장적인 시월드와 남녀관계 이야기를 빼고나면 할 이야기가 그렇게도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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