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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당신의 문장을 사랑한 적이 있습니다

  • 입력 2018.03.10 12:09
  • 수정 2018.06.05 16:51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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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이었습니다

명사를 모셔 강의를 진행하던 한 단체에서 대외활동을 하던 그 친구는 나에게 몇 번을 참석하기를 권했습니다. 나는 한사코 싫다고 했습니다, 난 그때 스무 살이었고 누군가의 강연보다는 친구와 함께하는 몇 잔의 소주가 더 중요했던 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강연에 참석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온다던 이야기 때문이였죠.

고은. 그 두 음절. 나뿐만이 아닐 겁니다. 당시 숱한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동경하는 것보다 더 당신을 동경했습니다. 확실합니다. 당신의 이름 두 글자는 나를 두 시간 걸리던 혜화동으로 결국 이끌었습니다.

지독히도 문학을 좋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힘들던 고등학생 시절 나를 책상머리에 붙들었던 것은 몇 가지 한국의 현대 문학이기도 했지요.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자주 찾아본 것은 당신의 이름 두 글자였습니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당신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마을마다 소를 키웠고, 모든 소의 흰 자위는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당신의 그 말은 내 기억 속에서 너무도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답변을 기억하는 것은 내 일생에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자랑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쓸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런 문장을 쓰고 싶다’며 인용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몇 번의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또 몇 명의 세계적인 문인들에게 당신이 밀릴 때 나는 솔직히 분했습니다. 번역이 문제였고 그만큼 부족했던 우리 문학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뿐만이 아닐 겁니다. 당신은 우리의 자랑이었고 언제나 우두커니 선 채 당신의 길을 걸어오던 고고한 문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한 편의 시를 보게 됩니다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를 보다 나는 놀라 멈추고 말았습니다.

‘En 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중략)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린 ‘괴물’이라는 시가 발표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한 매체에 당신의 성추행 목격담을 보았습니다. ‘한참 자위를 즐기면서’. ‘니들이 여기를 만지라는’ 문장을 보며 저는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역겹다고 말이죠.

하지만 당신의 혓바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외국의 기자들에게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실과 맥락을 쉽게 알기 어려운 외국인 친구들에게 ‘내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울 일을 한 게 전혀 없다’는 걸 확인해줘야 한다”는 말을 주절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모습을 지우고자 합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고 흰자위가 빨갛게 물들었던 소의 눈을 기억합니다. 비극보다 더 끔찍한 당신의 추잡한 모습을 보며, 그 소의 흰자위는 어떤 색깔로 물들고 있을까요.

당신은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나에게 단지 성추행범, 피해자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준 가해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가해자는 당신의 혓바닥을 닮아있습니다. 예술계의 관행이냐고 묻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과, 당신을 비롯한 권력이 올라탄 혓바닥을 가진 자들은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우리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소서. 부디 당신이 피해자들을 뒤로 한 채 행해오던 추악한 일들을 당신의 혓바닥으로 곱씹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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