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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안은 파도도 없는데 왜 못 구해" 편리한 음모론의 함정

  • 입력 2014.05.12 10:23
  • 수정 2014.05.12 10:52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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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의 베스트셀러 '달착륙 음모론'

재미없는 테스트 하나 해 볼까. 다음의 문항에서 그렇다 반반이다 아니다 문항을 놓고 각자 체크해 보시기 바란다. 그렇다 하면 3점, 반반이다 하면 2점, 아니다 하면 1점이다. 이는 일반 시민은 물론 이른바 진보쪽에 속한다고 여기거나 그쪽을 지지한다고 여기는 분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내 맘대로 이를 ‘상식 지수’라고 부르기로 한다.

1. 6.25는 북침이다.

2. 이승복은 가공의 인물이며 그런 아이 존재하지 않는다.

3. 아웅산 사건은 남한의 친위 쿠데타 세력이 저지른 것이다.

4. KAL858 폭파범 김현희의 국적은 북한이 아니다.

5. 1987년 대선은 컴퓨터로 조작된 부정선거였다.

6. 88년 대학생들이 열심히 반대를 외쳤던 ‘콘크리트 장벽’은 베를린 장벽과 맞먹는 민족 분단의 상징이다.

7. 천안함은 이스라엘 잠수함과 충돌했다.

8. 북한의 대량 아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수천 명 정도가 굶어죽었을 뿐이다.

9. 노무현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된 것이고 그 유서도 조작된 것이다.

10. 바다 아래에는 비도 없고 파도도 없어서 얼마든지 잠수 작업이 가능하다.

15점 이하 : 수고하셨습니다.

15-25 : 분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26 - 30 :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위 주장들에 대해 논하자는 게 아니다. 전쟁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음모론이나 그에 준하는 주장을 모아 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이 모두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나름의 근거를 얼마든지 댈 수 있다는 것이다. 북침설만 해도 그렇다. 오랫 동안 북침설의 근거로 들어졌던 것은 국군의 해주 입성 방송인데 그건 옹진 반도에서 얻어터지던 17연대장이 그때까지 머물고 있던 기자에게 “뭐하고 있소? 어서 서울로 가서 전하시오. 17연대는 해주에 입성한다고!” 거창하게 한 마디 한 것이 “국군 해주 입성” 방송으로 둔갑했던 것이다. 생존자의 증언과 객관적 전황 따위는 제쳐 두고 방송이 나온 자체로 유력한 증거로 수십년을 버텨왔던 것이다. 노무현 타살설의 그 백 가지 근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언젠가는 아웅산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죽은 사람들이 다 군부에 맞서는 테크노라트들이었거든. 그래서 죽인 거야. ” 그러면서 당시의 권력 지도를 막 그린다. 그럴 듯하다. 그런데 내가 물었다. 너 누가 죽었는지는 아니? 그는 단 한 명의 이름도 대지 못했다. 이스라엘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했다는 증거가 그 얼마 뒤 이스라엘 수상인지 뭐시깽인지가 방문했다는 것 외에는 없는 것처럼.

각설하고 넘어가자. 다시 한 번 저 위의 주장들을 반박하고자 함이 아니라 나는 딱 10번 하나만 얘기하고 싶다. 지금같은 시기에 1-9번같은 현실적으로 무리스러운 주장을 전개하다가는, “오죽했으면 저런 말을 하겠어.” 하면서 온정적으로 넘어가다가는, “저 사람도 전문가인데....” 하면서 귀를 솔깃했다가는 엄청난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변증법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건 연결돼 있다.


신상철 씨처럼 바다 안은 파도도 없는데 왜 못 구하냐 안 구하는 것이지라고 얘기해 버리면 분노하기는 쉬우나 반박당하기도 너무나 쉬운 껀수가 돼 버린다. 저놈들을 살인자라고 말하고 싶다면 정확하게 살인 혐의를 짚어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무고가 되고 조선일보식의 ‘아니면 말고’가 된다.

황금같은 골든 타임 때 해경의 구조가 미치도록 무능했던 건 사실이다. 선원들을 구하면서 신원 파악도 안했고 배 안에 몇 명이 있는지 제대로 묻지도 않은 것 같고, 거기에 대응하는 구조 역량이란 정말로 아메바와 짚신벌레와 동급의 것이었다. 밝혀야 할 의혹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왜 아파트에서 재우고 모텔에서 숙박시키며 입맞추는 걸 용인했는지, CCTV는 왜 지웠는지. 언딘하고 계약하라고 성화를 부릴 시간에 그들은 모든 역량을 총집결하지 못했는지. 열거하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이건 연역적으로 추리해야 할 문제지 “구할 의사가 없었다”고 선언해 버릴 문제가 아니다. 그 선언하고픈 욕망 때문에 “바다 안에는 파도 없잖냐” 같은 억지가 나오는 것이다. “정말로 바다 안에는 파도 없지 않아요?”라고 물으시는 분 계시다면 이순신 장군은 명량 해협에서 조류를 이용해서 싸웠지 파도를 이용해서 싸운 건 아니라는 걸 상기시켜 드리겠다.

계속적으로 터져나오는 ‘아고라’발 뻥카들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초기의 7시 20분 사건설도 그렇고 잠수함 충돌설도 그렇고 생존자 문자와 카톡설도 그렇고 사실은 조금만 고민해 보면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되는 음모론들이었다. 문제는 그 음모론들에 발목이 잡히는 동안 사실 우리가 밝혀 내야 하고 알아야 하고 저쪽의 목줄을 쥘 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한 접근이 더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아고라에 국정원 댓글러들이 설치고 있지 않는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밑도 끝도 없는 오보를 쏟아내고 나름의 증거를 들이대서 사람들을 흥분시켰다가 “어 아니네” 맥을 놓게 만드는 이 악순환이 어디 한 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최악의 음모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미 나온 팩트만으로도 해경과 정부의 무능은 분명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공감장애는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했고 대통령으로서의 임무 수행 능력에 이의를 제기할 만하다. (‘이의’다. 선언이 아니라) 왜 여기에 ‘결정적인 한 방’을 무리수를 둬 가며 굳이 장만해야 하는가. 그 결정적인 한 방 뒤에 카운터 맞으면 데미지가 더 큰 건 복싱의 기본인데. 이제 조사 과정을 감시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팩트와 어긋난 조작이나 은폐, 밝히지 못하는 무능을 폭로하면서 그게 오히려 파괴적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로이터인가 어딘가에서 선원들이 “명령을 받고 배를 떠났다”는 로이터 통신인지 뭐시깽인지 기사가 떴다는 분노가 타임라인을 수놓있다. 비록 영어를 못하지만 그 기사가 “(승객들을 버리라는) 명령을 (누군가로부터) 받고 배를 떠났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선원들이야 당연히 선장이든 기관사든 배를 떠나라는 말을 듣고 탈출했을 것이고. 그리고 선원들이 경찰 통제하에 있을 때 그런 ‘특종’(?) 인터뷰가 외신에 노출되리라는 건 너무 허망한 기대 아닌가.

화난다. 나도 난다. 하지만 좀 진정하고 때릴 때 때리고 밟을 때 밟고 찌를 때 찌르자. 아무데나 찌르는 칼은 금새 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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