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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때문에 '여직원'이 불편한 남자들

  • 입력 2018.03.07 12:17
  • 수정 2018.06.05 16:52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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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의 나쁜손. 연합뉴스

5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수행하던 윤창중 대변인이 현지 인턴을 성추행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정부 일각에서는 외국 순방에서 여성 수행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대책이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사건 직후 정홍원 총리는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에 참석할 인턴들을 모두 남성으로만 뽑았고, 한동안 여성 수행원들은 불편한 짐짝 취급을 받아야 했다.

지난 5일 안희정 충남지사가 자신의 여성 수행원을 수 차례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번에는 애초에 여성 수행원을 둔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자 정치인이 여자 수행원을 두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익숙한 '대책'도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지금 안희정 지사가 남자이기 때문에 이성, 여성이 수행비서를 하는 것은 조금 부적절하지 않나라는 얘기들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 YTN 방송 중 모 패널

미투 운동이 힘을 얻자 비슷한 생각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여성 직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아예 여직원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쉽게 동의를 얻는다. 얼마 전 어떤 국회의원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회식을 해체하겠다 선언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일터에서의 남녀의 격리(여성의 배제)를 가장 단호한 성범죄 예방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이런 사고는 새로 개발된 논리가 아니다. 여기는 100년 전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나라였으니까.

그럼 여성의 사회진출이 제한되던 유교의 나라 조선은 여성들에게 살기 좋은 세상이었을까? 오늘날에도 남녀의 일상적 접촉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국가 여성들은 안전한 삶을 살고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성의 배제가 성범죄의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성 동료가 불편하니까 치워야 한다는 주장 속에는 여성 동료에게서 인격을 삭제하고 물화(物化)시키는 남성의 시선이 담겨있다.

여성에게도 징병제를 실시하는 노르웨이 군대는 남녀가 같은 내부반을 사용한다. 조사 결과 남녀가 함께 내무반을 사용했을 때 성적인 문제가 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웨이 병사들은 남녀가 함께 생활하니 서로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흐려지고 우정과 동지애가 더 커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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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일은 노르웨이가 OECD 최고의 성평등 지수를 자랑하는 나라이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성평등 수준이 낮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배제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직장 성폭력의 원인은 이성과의 접촉이나 이성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이성 동료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의 동료로 인식한다면 불편할 이유도 배제할 필요도 없다. 주변에 동료 여직원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동료를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여성 수행원'이 아니라, 수행원을 '여성'으로 인식한 안지사에게 있다. 이번 일로 애꿎은 여성 수행원, 비서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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