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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살기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 입력 2018.03.07 11:49
  • 수정 2018.06.05 16:52
  • 기자명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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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1.
나의 딸은 십팔 십팔 하는 십 팔 개월을 시작으로 미운 두 살, 세 살을 두루 거쳐 네 살이 됐다. 그동안 나도 단련되었는지 어지간한 떼 부림엔 눈 하나 깜짝 안 하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버럭 하는 횟수가 줄고, 달래는 솜씨가 는 것 같아 뿌듯했다. 일주일 하는 어린이집 방학을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했다.

첫날밤, 애를 세 번이나 울렸다. 저녁 7시가 넘자 팔다리가 후들거렸고 얼굴엔 피곤이 검버섯처럼 덕지덕지 피었다. 아이를 빨리 재우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잠들지 않은 아이를 보니 조바심이 났다. "너 왜 안 자는 거야! 빨리 자라고!” 참다 참다 소리 질렀다. "으아아아앙" 평소 9시에 자는 아이가 11시가 다 되어 겨우 잠들었다. 그러더니 아침 6시에 깨어났다.

삼 일째 되자 몸살 기운이 덮쳤다. 동트기 무섭게 일어난 아이를 두고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남편 출근할 때 겨우 몸을 일으켜 믹스커피 두 잔을 타 마셨다. 그러면 그렇지. 할 만하긴 뭐가 할 만해.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 수북이 쌓여 쉰내 나는 빨래, 전날 밤 미쳐 다 하지 못한 설거지, 돌아서기만 해도 "놀아줘" 하고 달려드는 애. 끼니때마다 벌이는 "안 먹어!" 전쟁까지. 남은 날을 어떻게 데리고 있는 담.

단련되었다는 말 취소다. 내가 살만해진 건 전적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4시에 오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집에서 놀다 6시쯤 저녁 먹고, 씻고, 놀고, 이 닦고, 8시부터 취침 준비. 아침 포함해서 3~4시간 안팎으로 집에 단 둘이 있는다. 육아가 수월해진 건 아이와 일대일로 부대끼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지 대단한 스킬 따위, 있을 리 있나.

이런 생활에 무척 만족하지만 '무척'이라고 쓰면 안 될 것 같은 일말의 미안함, 껄쩍스러운 무엇이 있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종일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도 아닌 둘을 가정 보육하면서 보람차고 행복하다는 엄마들도 있는데, 고작 하루 세네 시간 봐도 때로 한숨 푹푹 쉬는 나. 나만의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장전해보지만 꾹꾹 눌러둔 죄책감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아직 어린데" "엄마가 편하려고 보내면서" "애착에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2.

출퇴근하는 직장도 없고, 가계 도움 되는 돈벌이도 못 하던 시기에, 게다가 애가 둘이야, 셋이야, 아니면 둘째를 가졌어, 달랑 하나 키우면서도 나는 17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었다.

아이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모든 서랍을 열고 꺼내고 변기에 코 박고, 손 넣고 휘젓고, 신발을 쪽쪽 빨아댔다. '나가요 병'에 걸린 딸아이와 한여름 텅 빈 놀이터에서 죽치고, 아이가 낮잠 자는 사이 이유식까지 하고 나면, 오후엔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두통이 밀려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3세까지 내 손으로 키우리라'하는 신념을 갖출만한 정신적, 육체적 체력이 나에겐 없었다. ‘오늘 저녁만 버티자’란 심정으로 하루하루 때우며 살았다.

몇 명 안 되는 육아 동지들도 하나둘 어린이집을 보냈다. 모두 나처럼 밤늦게 들어오는남편을 두었고, 근처에 가족, 친지 하나 없었다. 도우미를 쓸까 고민하던 나에게, 도우미 쓸 비용으로 어린이집에 보내라는 조언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도우미가 와도 한 달이면 20만 원이 넘었다. 양육비 지원금 15만 원(2015년 만 1세 기준/경기도)을 받지 않는 대신 무상보육 지원이 되는 어린이집을 보내고, 그 시간에 집안일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 경제적이라는 계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회사에서 아무도 어린이집 안 보내" 다 자기만큼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두었지만 세 살, 네 살 되어도 집에 데리고 있다고 말했다. 차로 세 시간 거리에 사시는 부모님도 나를 나무랐다. "말도 못 하는 애를 어떻게 남한테 맡기냐"

그렇지만 "내가 애 좀 봐줄게 병원 좀 다녀와라"는 말을 해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남편에겐 “엄마로서 내 능력이 이만큼이다”라고 말했고 부모님에겐 “올라와서 봐주실 거 아니면 나무라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연합뉴스

2015년, 메르스가 전국을 휩쓴 직후라 가을에 자리 난 곳이 여러 군데 있었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에 갔다.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처음 보자마자 안겼고 넓고 쾌적한 환경, 많지 않은 아이들이 마음에 들었다. 천천히 적응해갔지만 쉽지는 않았다. 아기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해서가 아니라, 열 시까지 등원시키기가 난관이었다. 오전 낮잠을 자던 시기, 유모차 태워 가는 도중에 잠들어버리곤 해서 못 간 적도 있었고 점심시간 다 되어 데려다준 적도 많았다. 겨우 12시 반에 데리러 가는 패턴으로 정착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요가원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세 번은 아이를 맡기자마자 요가원으로 달려갔다. 잠이나 더 잘 걸 왜 그리 설쳐댔는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보람찬 일을 하고 싶어 무리하지 않았나 싶다. 요가를 하는 동안 긴장된 몸이 풀리며 방정맞게도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끝나면 꿈에서 깬 듯 정신 차리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복병은 또 있었다. 어린이집에 다니자마자 콧물, 기침을 달고 살았다. 두 달째엔 입원까지 했다. 이렇게 자주 아플 줄은 몰랐고 계속 보내야 하나 고민했다. 아이가 아픈 게 내 탓 같았지만, 하루 한두 시간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도 절실했다. 그러지 않고선 24시간 풀 육아를 감당할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충전할 수 없었다. 늘 지쳐 있는 채로 짜증 내고 혼내는 엄마보다, 조금이라도 활력 있는 엄마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SBS

3.

보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돈도 안 버는 주제에 어린이집 보내는 엄마'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전업주부인데 왜 어린이집에 보내느냐, 그런 엄마들 때문에 정작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를 못 맡긴다"는 말을 듣곤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야말로 어린이집 정원 축내는 집에 있는 엄마였으니까. 아침부터 밤새도록 혼자 아이를 보는 게 어떤 건지 아느냐고, 병원 갈 시간조차 없어 진통제 먹어가며 참는 게 뭔지 아느냐고, 너무도 활동적인 아이를 상대하느라 기진맥진해보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일을 판단하는 건 쉽다. 어린이집에 보낸 후, 엄마들과 수시로 티타임 할 만큼 시간과 돈이 여유로운 엄마들이 얼마나 있나. 내 주변에는 한 명도 없었다. 겨우 시간 맞춰 한 달에 한 번 만나 한풀이하고, 점심에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질려 나가서 밥을 사 먹었다. 그렇게 외출하고 오면 집 치우느라 똥줄 탄다. 이게 그렇게 한심해 보이냐고, 하면 안 되는 사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 하였다.

무상보육은 보편적 복지의 일환이다. 선택적 복지가 아니므로 누구에게나 혜택이 주어진다. 무상보육 때문에 어린이집 정원 부족 문제가 생겼다면, 공급을 늘리는 방향을 요구해야 한다. 애초에 제한 기준을 두는 방식도 있지만 정규직을 제외하곤 서류 증빙을 할 수 있는 일자리 자체가 극히 한정적이다. 전업주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다양한 부업과 활동을 하는 많은 엄마들은 자신의 일을 재직증명이나 고용보험으로 증명할 수 없다. 차등지원도 마찬가지이다. 월 천만 원 이상 버는 사업자라 해도 수입을 줄여 신고하면 그만이다. 선별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아무리 잘게 쪼개며 선별해도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기에 '보편적 복지'를 하는 것이다. 준비가 덜 된 채 시행된 정책은 엄마들을 편 갈랐다.

가장 슬픈 건, 엄마들 내부의 '깎아내리기'였다. '보내는 엄마와, 그럼에도 보내지 않는 엄마' 사이의 간극은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는, 안 보내는 엄마에게 아이 사회성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안 보내는 엄마는 보내는 엄마들에게 애착을 걱정하라 말한다.

좀 더 솔직하면 안 될까. 상대를 깎아내리며 입지의 우월함을 확보하기보다, 보내는 이유 혹은 데리고 있는 이유로 '아이 핑계'를 대기보다, 엄마 자신의 감정과 능력에 집중할 수 없을까. 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선택에 따른 보상과 기쁨, 때로는 포기한 바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순 없을까. 그 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상, 가치판단은 좀 미뤄두고, 각자의 사정을 존중하길 바라는 건 너무 무리인가.

아동발달 전문가 김수연 박사는 돌 이후부터 3세 이전의 아동은 엄마 혼자 키울 수 없는 존재라면서, 엄마와 단둘이 지내는 것보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편이 아이 발달에 좋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핵가족 사회에선 어린이집이 대가족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한다. (책, <엄마가 행복한 육아> 참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불편한 마음을 이런 전문가의 권위를 빌어 다독여보지만, 나는 인정한다. 내가 살기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도 살고 나도 살았다.

ⓒ연합뉴스

4.

아이는 세 살이 되면서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기 시작했고, 오후 3시에 데리러 갔다. 두세 시간 늘었다고 한결 여유로워졌다. 아이의 일과도 안정되어 갔고,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해졌고, 식습관도 잡혀 혼자 밥을 비웠다. 어린이집에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오니 집에 오면 덜 어질렀다. 나는 아이에게 조금 더 친절해졌고, 저녁 반찬을 신경 써서 해줬다.

적응했다는 건 어쩌면 나의 바람일지 모른다. 가끔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거나, 전에없이 손가락을 입에 넣는 버릇이 생긴다거나 할 때마다 어린이집 스트레스인가 싶어서 가슴이 철렁했다. 등원 차량에 태울 때마다 뉴스에서 접한 온갖 차량 사고를 떠올리곤 했다. 어린이집에 쉽게 안심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아이가 피곤해한다거나 감기 기운이 있으면 기꺼이 집에서 쉬게 했다. 아이를 위한 마음도 있지만 좋은 엄마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식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집에 혼자 있을 땐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 분주하게 볼일을 보다 보면 아이 생각은 까무룩 잊는다. 때론 너무 생각이 나지 않아,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 또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워워 진정하라고. 애 떼어놓고 좋아하다니’ 정신 차리고 집에 올 시간, 허둥지둥 간식을 챙기고 저녁을 준비한다. 2부를 위해 믹스커피 한 잔을 타 마신다.

방학하고 오전 내내 병원놀이, 마트 놀이, 언니 아가 놀이까지 분야별 역할 놀이를 네 번 이상 반복했고, ‘흰 눈이 기쁨 되는 날’ 노래 들으면서 같이 손 붙잡고, 춤추기를 20분, 팥 들어간 빵을 나눠 먹으면서 “똥- 먹어! 똥- 먹어!”를 오십 번 했고 비행기도 10분간 태워줬다. 시간을 보니 겨우 1시간이 지났다. ‘엄마 일 좀 할게’라고 했더니 금방 울상이 된다. “정말 너무 한다 너! 엄마 빨래도 널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해. 점심도 먹어야 하잖아” 아까 타 둔 믹스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었다.

집안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이름표 스티커를 찾아내서 죄다 벽지에 붙여놨다. 뭐 괜찮다. 실컷 만들어놓은 된장찌개는 쓱 쳐다보더니 먹지 않겠다고 했다. 괜찮다. 하지만 괜찮은 건 최대 삼일이었다. 너와 부대끼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지만, 뜨거운 숨결, 끈적이는 살결을 내내 맞대고 있는 것 같다. 이 날 커피를 네 잔 마셨다. 달력을 봤다. 남은 날을 세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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