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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그럴싸하게 말 잘하는 방법

  • 입력 2018.02.12 15:57
  • 수정 2021.08.21 00:34
  • 기자명 박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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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이: 이해를 돕기 위해 '또박 또박 말 잘하는 사람'을 임의로 지칭함

말이 많은 것과 말을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가끔 회사에는 프로또박이들이 한 분씩 계십니다. 그리 길게 말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뇌리에 타카를 쏜 것 마냥 상큼하게 메시지를 박아주시는 분들이죠. 깔끔하고 명료한데다가 뭔가 안경선배같은 아우라까지 풍기는 터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말이라는 게 항상 또박또박일 필욘 없습니다. 매일 일상마다 또박또박 거리면 설명충 같기도 하고, 재수없어 보이기도 하니까요. 스벅에서 친구와 해묵은 얘기를 나누거나 닭도리탕과 소주를 마시며 노가리를 깔 때는 의식의 흐름이 더 중요합니다. 흔히 우리가 의식의 흐름이라고 부르는 대화의 기법은 '말꼬리잡기' 인데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어제 라면 먹었는데 눈이 부었다."

"그러게 쌍꺼풀이 완전 없어졌네."

"야 나 쌍꺼풀 수술해야 하지 않을까?"

"넌 쌍꺼풀이 문제가 아니다."

"니 얼굴"

"응 니 얼굴"

"아 맞다, 너 내 친구 소개해줄까?"

" 하는 사람인데?"

" 디자인한다는 거 같던데"

"아 디자인 쪽 하는 분이면 야근 많지 않나? 자주 못 보면 싫은데"

"너도 야근 많잖아"

"아...진짜 요즘 것 때문에 짜증나 죽겠다니까"

"왜 또 팀장이 계속 꼰대짓해?"

"아니 세상에 있잖아....블라블라..."

네 그렇습니다. 짧은 대화지만 눈이 부은 것에서 야근얘기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의식의 흐름' 기법 내지는 '아무말 화법' 이라고 하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내뱉는 느낌이랄까요. 주로 친구와의 대화는 이런 식의 화법을 따릅니다.

그러나 일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다간 맴매 맞겠죠.

일할 때는 "또박이 화법"을 활용합니다. 이 화법은 상당히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 있어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 지 꽤나 고민을 했습니다. 크게 3가지의 단계로 나눌 수 있겠더라고요. 일단 오늘은 기초편으로 "끊어 말하기" 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장. 또박이의 외모

1. 안경을 쓰자

안경을 쓰면 똑똑해 보입니다. 물론 안경을 썼을 때 아라리같다면 지양하도록 합시다. 추천 드리는 포즈는 사카모토의 제스쳐입니다. 반무테는 늙어 보이지만 똑똑해 보이더군요. 코난안경은 코난 같이 생겨야 하므로 패스합시다.

사카모토입니다만?

2. 올바른 자세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으면 또박또박한 말이 안 나옵니다. 복화술 화법으로 입은 안 벌리고 입술만 오물거리면 쭝얼쭝얼거리는 듯 해서 별로입니다. 정석의 자세를 알려드리죠. 일단 제시카 챠스테인 누님의 미스슬로운 포즈로 변신해보도록 합시다. 고개는 집어넣고 여유로운 자세와 적당히 소매를 걷고 윗 단추를 풉니다. 아래와 같은 자세가 또박 또박 말하는 법의 정석이랄까요. 혹시라도 영어로 또박 또박 말하고 싶으시다면 미스슬로운을 200번쯤 재감상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챠스테인 누님 [미스 슬로운 中]

3. 제스쳐는 단순하게


이렇게 하라는 건 아님

스피치 학원가면 허리 밑으론 손을 내리지 마라 짝다리 짚지 마라 등등 다양한 제스쳐 룰을 알려주는데 사실 이건 몸에 밴 습관인지라 어지간해선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제기찰 때 왠지 손이 으에ㅞ에ㅞ? 처럼 되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음, 제스쳐에서 중요한 건 손가락입니다. 검지가 괜히 Index finger가 아니죠. 손가락의 힘과 방향에 따라 집중력도 크게 좌우된답니다. 우리의 챠스테인 누님처럼 부드럽고 고결한 검지의 선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어딘가를 잡고 얘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선이 살아있는 검지.

제2장. 또박이의 화법

또박이 화법의 기초예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3가지 예제를 보도록 하죠. 일단 도입부분을 알아볼까요? 뭔가 말을 시작할 땐 갑자기 끼어들면 안됩니다. 우리가 친구들과 얘기할 때도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물론 그것은 대부분 재미가 없음) 하면서 들어가듯 내가 지금부터 말을 하겠다는 뉘앙스의 스타트 문장을 잘 얘기하는 것이 또박이의 첫걸음이더라고요.

그런데 이 첫 문장이 "제가 의견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라는 식의 안경선배 말투면 가끔 어색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도 받고... 그래서 시공간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분들께선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시더군요.

"제 생각은...(PAUSE)"

이라고 말입니다. 아주 짧은 2초간의 포즈이지만, 이 효과는 굉장한 집중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반박이나 다른 인사이트를 말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제 생각은.' 입니다. 혹시라도 그 상대방이 나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존재이거나 뭔가 내 결재란 어딘가에 있는 이름이라고 한다면

"좋은 의견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라고 그 의견이 좋든 안 좋든 그냥 일단 좋은 의견입니다. 하나 덧붙... 이라고 얘기해주도록 합시다. 이 때도 ~덧붙이자면... 다음엔 2초 포즈를 걸어줍시다. 뭔가 집중되는 느낌과 함께 부담과 현기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이렇게 시작을 했는데, 그 다음 말이 별 거 없다거나 횡설수설하면 '그건 어떤 혼돈의 음성이니?' 라는 눈빛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말을 하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겁니다. 이 때 생각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제(-한다면)

2. 가정(-입니다.)

3. 누가/무엇을

4. 어떻게

5. 어쩐다.

이렇게 5단계로 따박따박 얘기해줍니다. 경우에 따라 1,2번은 생략이 가능합니다. 주로 1,2번은 상대방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정리해주고 내 의견을 들어가는 경우에 많이 쓰이죠. 또는 현재 프로젝트의 상황을 정리하면서 내 의견의 거점을 확실히 잡는 역할도 하구요. 예를 들어볼게요.

"현재 오프라인의 사용자가 온라인 사용자보다 훨씬 많은 상태인데, 만약 오프라인에 별다른 공지 없이 온라인을 바로 오픈 하게 된다면 고객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변화된 UX에 대한 학습을 강요 받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일단, 리뉴얼하는 웹페이지 이벤트를 온라인에선 헤드배너, 이벤트 지점안내를 진행하고 오프라인에선 방문고객 대상 결제 시 안내를 통해 옴니채널로 운영하면서 안정적으로 리뉴얼페이지로 유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전제 : 현재 오프라인의 사용자가 온라인 사용자보다 훨씬 많은 상태인데, 만약 오프라인에 별다른 공지 없이 온라인을 바로 오픈 하게 된다면 /

가정 : 고객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변화된 UX에 대한 학습을 강요 받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을 : 일단, 리뉴얼하는 웹페이지 이벤트를 /

어떻게 : 온라인에선 헤드배너, 이벤트 지점안내를 진행하고 오프라인에선 방문고객 대상 결제 시 안내를 통해 옴니채널로 운영하면서 /

어쩐다 : 안정적으로 리뉴얼페이지로 유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네 이런 식으로 포인트 단어들만 묶어도 말이 되게끔 논리구조를 만드는 거죠. 저 문장의 핵심은 결국

"웹이벤트를 옴니채널로 운영해서 오프라인 고객들도 유도하자."

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대부분 위 5가지 요소에서 하나씩 빠질 때마다 반문과 질문이 생기게 되는데, 그걸 물어 봐주는 사람은 오히려 괜찮은 편이예요. 일반적으론 그냥 '뭔 말이야?' 하고 말아버리죠. 한 번 볼 까요.

일단 전제가 빠지면 "쌩뚱 맞다"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가정이 없으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명확히 보이지 않아 "추상적이다" 라는 느낌을 주죠.

주어가 없으면 "그러니까 무엇을?" 이라는 반문이 나옵니다.

‘어떻게’가 없으면 "말을 해 말을" 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어쩐다’라는 내용이 없으면 "어쩌라고?" 라는 질문이 튀어나와요.

여기서 특히 중요한 건 제일 마지막에...그러니까 그걸 어쩌라고? 라는 부분을 콕 집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유도하자!

제작하자!

공유하자!

런칭하자!

모집하자!

등등... 딱 하나의 행위로 점철될 수 있는 명확한 단어로 정리해주는 게 또박이의 첫 걸음입니다. 저 부분이 없으면..이렇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그 옴니채널로 운영을..뭐 잘 해보면 어떨까 해서요..."

잘한다, 가치 있게 해보자, 정리해보자....등등의 추상적인 단어들로 헤벌레 풀어질 수 있죠. 그러니 마지막에 확실한 서술어로 콱 쪼매주어야 해요.

마지막 또박이의 기초화법은 바로 말의 마무리입니다. 위에서 말한 마지막 '어쩌라고' 부분에 대한 얘기와 일맥상통합니다. 말이 어버버버 해지는 이유는 그 내용과 논리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용이 챡챡 정리되어 있어도 '어미처리'가 흐릿하면 느낌적으로 말이 장황해 보이죠.

말을 마무리 지을 때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아닐 수도 있고요..."

"그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까...해서요."

등등 어미를 주욱 늘여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물론 이는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을 너무 뿜뿜하면 재수없는 놈이 될까 봐 자기방어에서 비롯된 화법일 겁니다. 살아남아야 하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인생은 원래 개썅마이웨이이므로 저렇게 말해도 욕먹고, 따박하게 말해도 욕먹습니다. 기왕 욕먹을 거면 어버버 해 보이기보단 좀 세 보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정치인마냥 부르짖으란 얘기는 아니고, 다음과 같은 어미처리의 느낌이랄까요.

"~ 라고 생각합니다."

"~의 방법도 있습니다."

"~쪽을 추천합니다."

"~해보는 건 어떨까요."

등등 아무리 풀어도 2어절 이상을 넘기지 않는 우회적 어미처리를 추천 드립니다. 내가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느낌보단 내 생각은 확고하지만 난 자비롭다라는 느낌을 동시에 줄 수 있는 크세르크세스식 화법입니다. 유용하게 쓰이곤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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