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원으로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전두환에게 적폐청산의 칼날이 다가왔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 헬기 사격사건 때문이다. 4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진실을 부정했지만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는 증거들이 드러났고, 국방부 특조위에서 헬기 사격을 사실로 공식 인정했다. 이에 검찰도 전두환이 집필한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을 부정한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결론 내리고 소환 조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94년 5월 1일자 한겨레 신문
“사람이 그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보여. 그 헬리콥터에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러다가 이 정도 높이에서 스윽 가면서 픽, 드르르륵 쏘는 거라. 민간인을 향해서 발사를 했다? 이건 군인의 무력 폭력 아니냐는 말이야.
-조비오 신부
처음으로 세상에 계엄군의 헬기 사격 사건을 알린 고 조비오 몬시뇰 신부의 말이다. 이후 고 피터슨 목사를 비롯한 11명의 헬기 사격 목격자들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헬기 사격 사건을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았고, 성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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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두환을 비롯한 관련자들은 헬기 사격을 꾸준히 부인해 왔다. 전두환은 지난해 4월 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와 피터슨 사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하면서 헬기 사격 목격이 허위라고 주장했다. 이후 전두환은 조비오 신부의 유족으로부터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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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헬기 사격의 진실은 관련자들의 전면 부인과 당시 검찰의 헐렁한 조사로 수십년간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으로부터 37년이 지난 2017년, 광주 전일빌딩에서 탄흔으로 보이는 185개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흔적을 분석해 해당 탄흔이 헬기 사격으로 생긴 것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냈다. 증언으로만 존재했던 헬기사격에 첫 물증이 등장한 것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고,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그 후 5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국방부 특조위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공식 인정했다. 특조위는 “육군은 1980년 5월 21일과 27일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 광주시민을 향해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다”며 38년 전 5월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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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오 신부의 사자명예훼손 사건을 담당하는 검찰도 그동안의 검찰 수사 기록, 헬기 목격 증언, 헬기 출격 기록 등 자료 확인, 헬기 조종사 조사 등을 통해 5·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검찰 역시 조사 결과 헬기사격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보고 전두환 회고록에 담긴 내용을 허위사실로 판단했다.
이제 사실관계 확인, 참고인 조사까지 마친 검찰에게는 전두환이 헬기사격을 알면서도 거짓으로 집필했는지, 아니면 헬기사격을 모르는 상태에서 집필한 것인지 고의성 여부만이 남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 전두환이 이 사건의 피의자 신분인 만큼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 그에 대한 조사를 마쳐야 기소와 무혐의 여부를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가 전직 대통령인 점 등을 감안하면 소환 방법, 시기를 놓고 검찰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 직접 불러 조사하는 방법은 전 전 대통령이 거부하면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특히 전두환은 1995년 12·12 군사반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을 받아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받았지만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 소환에 불응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간 전적이 있다.
서면·방문조사도 검토할 수 있지만 5·18단체 등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비난 가능성이 있다는 게 부담이 될 수 있다. 5·18단체는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는 만큼 전 전 대통령을 조속히 소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헬기를 통한 무력진압이 국방부 공식 조사로 확인되면서 헬기사격은 명백한 사실이 됐고 검찰 조사에도 중요한 증거가 됐다"면서 "본인이 회고록을 써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어떻게든 본인 입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당당하게 검찰 조사에 응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조위 조사 결과를 검토하고 피의자 소환 여부와 시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