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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달력에는 매달 자살한 친구들의 기일이 적혀있다

  • 입력 2018.01.19 16:19
  • 수정 2018.01.19 20:45
  • 기자명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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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너희 또래들 처음에 취업하면 한 달 월급 얼마나 받냐?"

나는 먼저 아버지의 생각이 어떤지 물었다. 아버지는 "350~400만 원 정도"라고 답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200~250만 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야”라는 내 말에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며 놀랐다. 아버지는 당신이 젊을 때만 해도 사기업에서 일하면 공무원 월급의 두 배 이상을 받았는데, 이제는 공무원이나 사기업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왜 공무원시험으로 몰리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젊은이들이 배가 부르고 무사안일을 꿈꾸다 보니 같은 돈이면 기업보다 편한 공무원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 게다가 공무원은 잘릴 가능성도 적으니까 그쪽으로 몰린다는 지극히 당연한 깨달음이었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아버지 젊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때 주위에 자살한 친구들이 많았느냐고. 아버지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사고로 죽거나 병으로 죽은 친구는 있었어도 자살한 친구는 없었다고 했다.

나는 거의 월마다 한 명씩은 자살한 친구들의 기일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친구의 친구까지 혹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기일까지 합쳐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초등학교 동창, 연락이 끊겼던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들, 그리고 군대에서 자살했다는 애인의 소식을 듣고 같은 선택을 한 내 친구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친구들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집에서 같이 놀던 친구가 찾아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서 더는 찾아갈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노력하지 않고 배가 불렀다고 하는 게 너무 화가 나"

나는 말했다. "내 주위에선 친구들이 죽어 나가고, 그들이 왜 죽음을 택했는지 너무나 잘 알겠는데 어른들은 그저 나약해서 그렇다고 말해. 정말 너무 화가 나. 내 친구들을 죽인 건,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인데"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배고팠을지 몰라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주변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나는 삼각김밥이랑 편의점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다가, 문득 정신 차려서 주위를 둘러보면 달력에는 죽어간 친구들의 기일이 적혀 있어."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와 나의 대화가 이렇게 일방적인 적은 별로 없었다. 평소 서로 핑퐁같이 주고받는 대화를 했지만 ‘죽음’이 등장한 순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도 더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

돈 이야기에서 시작한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그렇다. 돈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젊은이들의 내일을 빼앗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오히려 노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다. 가장 화나는 건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안지를 작성하길 꺼리는 나, 너,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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