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살아있는 현송월 죽었다고 소설 쓴 조선일보

  • 입력 2018.01.16 17:00
  • 수정 2018.01.16 17:02
  • 기자명 아이엠피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합뉴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의 부활 같은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닙니다. 5년 전에 총살당했다는 현송월이 판문점에 나타났습니다.

5년 전인,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는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조선일보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은 중국 내 복수의 대북 소식통 말을 인용해 가수 현송월과 은하수 관현악단장 문경진 등이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관총으로 공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안용현 특파원은 현송월의 공개 처형 이유가 김정은의 지시를 어겼으며 음란물을 제작하고 성 녹화물을 시청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현송월이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정보까지 친절히 알려줬습니다.

구체적인 공개 처형 이유와 사망 날짜, 증인까지 보도된 상태에서 현송월의 사망은 확실시 됐습니다. 그런데 2018년 1월 15일 현송월은 판문점에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 조선일보의 보도는 ‘처형’ 사실 여부를 떠나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도 첫 문장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옛 애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이라고 강조하며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까지 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5년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현송월이 등장했지만 조선일보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홈페이지 메인에 현송월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걸어 놨습니다.

음란물 몰카의 제작자가 북 예술단 이끄는 협상 전문가로

2013년 당시 조선일보는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을 인용해 “현송월이 김정은과 고려 호텔에서 은밀히 만나는 장면을 몰래 촬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신의주 소식통, 무산 소식통의 말을 전하면서 “현송월이 생활고로 음란물 제작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보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8월 말을 시작으로 12월까지 4개월 간 가수 현송월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기사 제목은 ‘음란물’ ’공개 총살’ ’기관총 처형’ ’화염방사기로 잔혹 처형’ ’김정은 옛 애인 섹시 댄스 영상’ 등 자극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단독]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2013년 8월 29일, 조선닷컴

김정은 옛애인 현송월, 음란물 제작 혐의‥가족 지켜보는 데서 공개 총살, 2013년 8월 29일, 조선닷컴

김정은 옛 애인 현송월, 음란물 제작·취급 혐의로 공개 총살 ‘충격’, 2013년 9월 1일, 조선닷컴

음란물 제작 혐의로 총살된 김정은 옛 애인의 섹시 댄스 영상, 2013년 9월 6일, 조선닷컴

현송월, 김정은과 ‘고려호텔’ 밀회 몰카 들통나 ‘기관총처형', 2013년 9월 8일, 조선닷컴

리설주 추문 화난 김정은, 은하수악단 기관총·화염방사기로 ‘잔혹처형’…김정일 능가 폭군”, 2013년 12월 12일, 조선닷컴

그러나 2018년 다시 조선일보에 등장한 현송월은 ‘세련되고 카리스마 있는 협상 전문가’였습니다.

현송월의 ‘협상 이미지’ 전략, 2015년 중국 때와는 달랐다.

이날 현송월 단장은 감색 정장을 입고 눈에는 진한 아이라인을 그렸다. 입술은 옅은 핑크색 립스틱을 누드톤으로 바른 모습. 앞머리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레 젖혀두고 뒷부분은 반만 묶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스타일로 연출했다.

-2018년 1월 15일 조선일보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건 하나 있었죠. 과거 현송월이 김정일의 옛 애인이다, 섹시 댄스를 이렇게 췄다 식의 신변잡기 보도를 한 것과 동일하게 이번에는 현송월의 옷과 화장, 머리 스타일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대형연예기획사 임원의 말까지 인용해 “단정하고 카리스마”라는 표현을 강조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더 나아가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현송월의 헤어 스타일을 비교하면서 라이벌 관계인양 묘사했습니다. 이거 막장 드라마 전개도 아니고 말이죠. 특히 현송월이 든 핸드백이 2500만 원 상당의 명품이라는 등 ‘외모’에 집중하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북한판 걸그룹 이끄는 현송월, 엷은 미소에 강렬한 눈빛 눈웃음’이라는 2018년 조선일보기사 제목에서의 현송월은 2013년 조선일보가 보도한 현송월과 동일 인물인지 아리송해집니다.

조선일보의 북한 오보에 대응하는 자세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현송월 공개 처형 오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단독보도: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 여러 건 보도

현송월의 지위나, 처형 여부 등을 사실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몇 달에 걸쳐 여러 편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카더라: 찌라시를 기사화하는 언론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기사에는 ‘소문이 있다’는 문장이 자주 나옵니다. 여기서 소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라시’입니다. ‘카더라 통신’을 지면이나 네이버 뉴스 등에 당당히 송고하는 조선일보의 배짱.

③ 물타기: 다른 언론사도 보도했다.

만약 오보로 밝혀지면 꼭 다른 언론사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다른 언론사의 기사에 등장하는 정보도 조선일보가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오보→다른 언론사 받아쓰기→다른 언론도 보도했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책임을 회피합니다.

떠넘기기: 탈북자들 왜 그랬어?

2014년 10월 17일 조선일보 황대진 정치부 기자는 “일부 탈북자의 신중해야 할 입”이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을 썼습니다. 언론이 북한 관련 기사에서 오보를 내는 건 탈북자들이 미확인 루머를 확대 재생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신기합니다. 탈북자의 말을 열심히 ‘받아쓰기’ 해놓고 모든 책임은 탈북자에게 떠넘기다니요.

황대진 기자는 “북한 관련 미확인 정보를 다룰 때는 신중해야 한다”며 “잘못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남북 관계는 물론 ‘통일 대계(大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탈북자를 훈계합니다. 이 말은 탈북자가 아니라 조선일보가 꼭 새겨들어야 할 말 아닌가요?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