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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눈 감았다” 언론이 들어야 할 절규

  • 입력 2014.04.28 13:45
  • 수정 2014.04.28 13:53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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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한 듯 멍한 표정. 힘겨운 눈망울. 피곤이 켜켜이 쌓인 얼굴. 햇볕에 그을린 이마. 수심 40m 아래 세월호 어딘가에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열하루를 눈물로 지새웠을 단원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언론이 조금만 비판적인 보도를 내보냈다면”

울고 또 울었을 텐데 그의 눈물은 조금도 마르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울었다. 안면 근육을파르르 떨며 피울음을 삼켜보지만 또 넘쳐흐르는 눈물. 그가 27일 ‘손석희의 뉴스9’ 카메라 앞에 섰다. 무능한 정부와 사실을 외면한 언론을 향해 천근의 무게를 실어 이런 말을 했다.

손석희: ‘언론에서 보여지는 것과 실제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라는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혹시 같은 생각이신지?

이군 아버지: “예. 저뿐만 아니고 모든 엄마 아빠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배가 침몰되는 그 당일 날부터 조금만 더 사실적이고 조금만 비판적인 보도를 언론들이 내보내 줬다면 생존해서 만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언론이 현장 상황을 사실대로 담은 영상을 내보내고 안타까워 몸부림치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기사를 썼다면, 그래서 무능해 갈피도 못잡는 정부를 채근했더라면, 생존자 명단에 단 몇 명이라도 더 이름을 올렸을 거라는 피맺힌 절규다.


실종자 가족에게 절망감 안겨준 언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통렬한 지적이다. TV와 신문이 전하는 소식과 현지 상황이 크게 달랐다는 얘기다. 언론들이 사고가 터진 직후부터 그랬단다. 이군 아버지는 눈물조차 삼키지 못하고 오열했다.

“여기(사고 현장)에 와보니 (아들이 살아서 구조될 수도 있을 거라는) 그러한 희망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이건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력으로 작용해 배가 더 침몰하는 것을 막아 줄 장비라며 설치한 ‘부력백’이 단지 부표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해주듯 선미가 완전히 가라앉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는 “절망감은 그때 다 온 것 같다”고 울먹였다.

“그 시간에 엄마 아빠 찾으며 살려달라고 고함쳤을 텐데”

배안에 에어포켓이 형성돼 있었다면 상당수 학생들이 살아 있었을 사고 후 72시간. 이 금쪽같은 시간을 정부 대책본부가 “너무 무의미하게 보냈다”고 통탄했다. 온통 컴컴한 공간으로 차가운 물이 점점 차올랐을 ‘생존시간대’에 대해 이군 아버지는 입술을 악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시간에 아이들은 발버둥치고 있었을 겁니다. 배 안에서…이미 명을 다한 아이도 있었을 거고, 흔히 이야기하는 에어포켓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 안에 서서 엄마 아빠를 찾았을 것이고, 살려달라고 고함도 쳤을 것이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아 이제 내가 죽는 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아이들이 눈을 감았을 텐데...”

그 시간 동안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아버지는 어깨를 들먹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물속에 있는 아들 딸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가슴을 치던 그때 정부도 국민과 함께 가슴을 쳐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가슴을 쳐야 하는 이유가 뭔지도 모를 만큼 무능했다는 얘기다.

국민과 함께 가슴 칠 줄도 모를 만큼 무능한 정부

대신 정부는 이랬다. 어떤 장관 수행원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자식을 붙들고 오열하는 빈소에 들어서며 유족에게 “장관님이 오십니다”라고 귓속말을 했고, 그 장관은 사고 현장에서 응급약품을 밀치고 의전용 의자에 앉아 ‘황제라면’을 먹었다. 콘크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안행부의 고위간부는 사망자 현황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실종자 가족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피울음을 흘리는 실종자 가족과 오열하는 국민들과 함께 가슴을 치지 않았다. 정권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목적성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와있는 기자들이 수두룩했다. 언론사 카메라가 구름떼처럼 많았지만 정작 언론다운 언론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

<실종자 가족을 위해 국민과 함께 가슴을 쳤던 두 언론, '손석희의 뉴스9'과 '이상호의 고발뉴스'>

이군 아버지는 ‘가슴을 칠 줄도 모를 만큼 무능한 정부’의 입장만 담고자 했던 한심한 언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들의 목숨과 자신의 피눈물로 빚는 비수를 언론에 꽂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그 2~3일 동안 방송은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가슴을 칠 줄 아는 언론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이상호기자의 고발뉴스’가 그랬다. 수색 작업에 큰 진척이 없는데다 해경 순시선 몇 척만 사고 해역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연합뉴스가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는 기사를 내보내자 이상호 기자가 분노해 “니가 기자냐”며 “니가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라고 소리쳤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실종자 가족과 애통해 하는 국민들에 주파수를 맞추지 않고 은폐에 급급한 '정부의 입'이 돼 버린 언론들. 아들을 바다에 묻은 아버지의 절규를 엄중하게 새겨듣고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방송은 눈을 감아버렸다”며 치를 떠는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안 보이는가. 비판적 기사와 언론의 본분에 충실한 보도로 무능한 정부를 일깨웠다면 내 아들과 딸을 살아서 만날 수 있었을 거라고 울부짖는 저들의 통곡이 들리지 않는가.

국민을 향해서는 눈 감고 권력을 향해서는 눈을 크게 뜨는 언론. 이건 죽은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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