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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에게서 익숙한 꼰대의 향기가 난다

  • 입력 2017.12.29 10:08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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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궁금했다. 3대 엔터테인먼트 수장인 양현석이 얼마나 날카로운 시선으로, 촌철살인 같은 피드백으로 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이끌어갈지. 하지만 프로그램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믹스나인>은 재미를 떠나 다소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 됐다. 당신의 소년, 소녀를 ‘뽑는’ 것에서 이제 ‘구하는’ 게 되어 버린 처절한 경쟁.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연습생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남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현석의 조언을 가장한 독설을 보자. 우리가 삶 속에서 한 번쯤 들어봤던 말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말한다. 다 너네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그리고 그 앞에 숨죽이고 서 있는 청춘들의 모습에서 나와 우리가 겹쳐진다.

“이 나이 동안 뭐했어요?”

아직 앞날이 창창한 28살의 참가자에게 양현석이 날린 막말 LIST

01. 은퇴할 나이인 것 같다.

02. 지금까지 한 건 많은 데 다 망했다.

03. 그 나이 동안 뭐했느냐.

04. 그런 사연팔이 감성팔이 정말 많이 들었다

BONUS 하루도 열심히 안 한 날이 없는데 너네 졌잖아 (Feat. iKON)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왠지 제자리인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탓한다. 나름대로 죽기 살기로 노력한다고 했는데 그 시간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내가 틀린 걸까. 그때 누군가 내게 말한다.

‘넌 지금까지 뭘 했니?’

내가 노력했던 시간이 그 한 마디로 모두 지워진다. 나를 절실하고 간절하게 한 마음속 이야기는 남들도 하나씩 갖고 있으니 별다른 가치가 없는 상품 취급을 받는다. 마음을 다잡고 차근차근 다지려 했던 다음 한 칸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어떤 타인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의 노력만으로 ‘지금 당장’ 안 되는 것들도 많다. 꽃이 피는 시기나 속도가 다 다르듯 사람마다 속도가 다를 뿐이지 누가 더 멀리 나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을 한 번쯤은 겪는 거라고, 참 고생하고 있겠구나, 수고했다는 말을 함께 건네는 어른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 걸까?

“없는 가슴이지만 좀 내밀어보란 말이야”

꼰대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성희롱 발언 LIST

01. 사진 봤어. 남자친구랑 여행 갔더라?

02. 딸 같아서 그런 거야

03. 살을 조금만 더 빼면 아주 예쁘겠어.

04. 농담한 건데 뭐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BONUS 쟤가 먼저 꼬리 친 거에요 (Feat. 판사님)

양현석은 짧은 옷을 입고 섹시한 안무를 하며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윙크를 날려주는 걸그룹 지망생들을 보며 우리 애들은 '이런 거' 안 해주는 거냐며 웃는다. 그의 옆엔 소속 걸그룹인 2NE1의 CL이 멋쩍게 웃고 있다. 사실 양현석의 이런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과거 안무 연습 중인 산다라박에게 ‘없는 가슴이지만 내밀어보라’는 농담을 건넨 적도 있다.

부당함을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자극을 받아야 자기 관리를 한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내가 과민 반응했나? 여기서 괜히 들이받으면 일만 키우겠지? 그렇게 암묵적인 강요와 불이익이 생길 거라는 불안은 내 입을 다물게 만든다.

그런 감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당장 나를 온전히 책임지기도 버거운데 주변 사람들에 대항해 작은 정의를 세우는 것은 무리다. 그저 잠들기 전 내일은 신경 쓰이는 일이 덜 생기길 바라며 속앓이를 할 뿐이다. 하지만 ‘원래’ 그런 건 없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걸 나이나 지위를 권력 삼아 당연하게 내뱉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지금 니가 이런 차를 타고 다닐 때가 아니다.”

꼰대들이 습관처럼 내뱉는 비아냥 LIST

01. 그 돈으로 저축을 하겠다

02. 세상이 마음대로 되는 줄 아니?

03. 한참 멀었다 정신 차려

04.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BONUS 근데 형이 요즘 많이 힘들어서 그런데 (Feat. 구질구질)

과거 자신의 소속사 작곡가로 일했던 용감한형제가 자신과 같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고 양현석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용감한형제는 민망한 듯 웃었지만, 그 웃음은 참으로 무겁게만 보였다.

양현석과 같은 어른들은 항상 소비나 생활 습관에 대해 주제넘게 간섭을 한다. 말대꾸라도 하면 정신 차리고 더 성공하길 바란다는 조언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조언에는 존중이 없다.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아도 내 돈으로 영위하는 소비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도 내 몫이다.

쓰레기 버리듯 아무렇게나 툭 내뱉은 말. 그러면서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는 졸렬한 자기변호. 이런 조건에서 쏟아지는 말들은 절대 조언이 아니다.

양현석에게도 서태지 옆의 ‘아이들’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꼰대들에게도 지금 우리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역지사지를 기대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선배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이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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