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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장어덮밥을 먹다가 떠올린 고마운 얼굴들

  • 입력 2017.12.28 10:14
  • 기자명 김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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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아침 7시, 전날 자정부터 짐을 싸느라 늦게 잔 탓에 몸을 힘들게 일으켰다.

“진짜 가는구나..”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심지어 7시 30분 ‘SBS 모닝와이드’에서는 어제 촬영했던 내 모습이 나왔다. 정말 생긴 그대로 나와서 잠이 확 깼다.

주섬주섬 짐을 꾸리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집을 나섰다. 원래 사진 찍는 것 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사진으로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었다. 집을 나서는 길부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과, 공항 버스가 오는 장면까지 모두 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공항버스에서 2시간 동안 잠을 보충할 생각이었지만,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김민섭 작가님이 생각나 버스 안에서 작가님이 그간 쓴 글을 읽었다.

공항 가는 길. ⓒ김민섭

공항에 도착해서도 새로운 일은 또다시 펼쳐졌다. 제주항공에서 체크인을 할 때였다. 항공사 직원이 내 여권을 보더니 “어?” 하고는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저, 기사 봤어요! 신기하다. 와, 내가 수속할 줄이야.”

이름과 항공편을 보고서 직원은 ‘김민섭’을 알아봤다. 나는 멋쩍지만 기분 좋은 얼굴로 인사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제주항공 직원은 “즐겁게 여행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내 캐리어를 수화물로 부쳤다. 여행자 보험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전화가 걸려왔다.

“경향신문 OOO 기자인데요, 지금 어디시죠?”

“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D쪽에 있습니다.”

사실 그제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부담스러웠다. 왜 내가 이렇게 따뜻한 일을 겪게 된 것일까, 그리고 겪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멍한 표정으로 기자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김민섭 작가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민섭씨, 저는 빨간 옷 입고 있고요. G구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G구역에서 우리는 만났다. 나는 김민섭 작가님을 처음 만났지만 멀리서부터 단번에 알아봤다. 며칠 사이, 가장 친한 친구보다 더 많은 연락을 주고받아서 일까. 우리는 마치 지난 주에 만났던 사람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작가님, 요새 제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았어요. 나도 그랬거든요. 첫 책을 출간할 때,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그때마다 ‘왜 저를 도와주십니까’하고 물어보면 대답은 하나같이 ‘나는 김민섭씨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였어요. 제가 잘되는 게 우리 사회가 잘 되는 것이라면서요.”

작가님의 말씀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작가님은 그 말을 들은 지 2년 만에 다른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해주시게 됐네요. 멋져요.”

“저보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더 멋지죠.”

“저는 아직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도움을 받는 것도 어색하고, 아직도 칭찬을 받으면 제대로 감사하다고 표현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우리 모두 어쩌면 받는 것과 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 주는 것에 익숙하신 분들을 한꺼번에 만났으니까, 민섭씨 앞으로 살면서 계속 이 분들을 떠올리게 될 거에요.”

“작가님은 저를 돕겠다고 나선 분들에 대해 하나같이 ‘정중하다’고 표현 하셨는데, 처음엔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는 흔히 받을 때는 정중하게 받아도, 줄 때는 정중하지 못한 경우가 많죠. 이번에 도움을 주시고자 하신 분들은 하나같이 ‘정중’하셨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작가님을 만난 건 정말 잘된 일이었다. 체크인 시간에 늦겠다며 나를 출국장까지 데려다 주신 작가님은 아직 정산되지 않은 펀딩 금액 중 일부를 자신의 사비로 환전해서 내 손에 쥐어줬다.

환전 중인 김민섭 작가님의 뒷모습. ⓒ김민섭

“편하게! 잘 쉬다 와요!”

작가님은 악수를 청했다.

“저 안는 거 좋아하는데..!”

나는 포옹을 했다. 나는 김민섭 작가님과 경향신문 기자님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장으로 들어왔고, 이내 비행기에 올랐다.

김민섭 작가님으로부터 받은 책. ⓒ김민섭

“허..허허, 하하하 참”

헛웃음만 연신 나왔다. 내가 진짜로 하늘 위에 있다. 학교인 울산을 가는 데에도 2시간 반이 걸리는데, 후쿠오카는 1시간밖에 안 걸렸다.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다니.

입국 수속을 마치고 한숨을 돌릴 때쯤, 또 전화가 울렸다. 유명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인터뷰였다.

“안녕하세요.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담당작가입니다. 이제 금방 연결될 거에요. 녹음이니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인터뷰를 마치니 저녁 7시였다. ‘아차, 오늘 잘 데도 없다’ 정말 계획도 없이 일본 땅에 떨어졌다. 그제야 에어비앤비 어플을 켜고 오늘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공항에서 하카타 역으로 이동했다.

하카타역은 크리스마스마켓이 한창이었다. 눈부신 조명들과, 크리스마스마켓, 락 밴드의 공연, 공연장 앞 의자에 앉아 캐리어를 붙들고 한참 동안 있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계속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 좋구나’

후쿠오카의 크리스마스 풍경. ⓒ김민섭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후쿠오카에서 첫 끼니를 먹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갑자기 내리는 우박 같은 눈을 뚫고 음식점에 도착했더니 점원이 따뜻한 차를 내왔다. 장어덮밥(우나기동) 하나를 주문했다. 정말 맛있어서 울 뻔했다.

다 먹고서 근처에 있던 구시다 신사로 향했다. 이 곳은 명성황후를 시해할 때 쓰였던 칼 ‘히젠도’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울산보다 가까운 곳에 역사인식이 극명하게 다른 곳이 있었다. 이 칼을 폐기하라는 한국의 여러 단체의 요청에도 구시다 신사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이 신사 정문 앞에서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머리를 숙인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한참을 구경했다. 더듬더듬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읽으며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받아 몸을 녹이고, 내일 한국을 잠시 떠나 중국으로 출장 가는 후원자이자 회사 대표님, 그리고 회사 동료들을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올 수 있는 것도 이들 덕분이다. 사실 내일 어디 갈 지 계획도, 잘 데도 없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쓰러졌다.

맛있어서 울 뻔한 그 장어덮밥. ⓒ김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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