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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민섭, 후쿠오카 잘 다녀왔습니다”

  • 입력 2017.12.21 12:23
  • 수정 2017.12.21 15:50
  • 기자명 김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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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직썰은 필명 '309동 1201호'가 쓰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12월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둡니다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담담한 필체로 풀어낸 글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지방대 시간강사가 겪는 고난한 삶의 자취, 불합리한 대학 사회의 내부 고발은 단순히 대학과 교수 사회에 국한되지 않았지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였고, 우리 세대의 자성적인 기록이었습니다. '309동 1201호'는 바로 김민섭 작가입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이후 <대리사회>, <아무튼 망원동>을 출간한 김민섭 작가는 '우연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생애 첫 홀로 떠나는 여행을 꿈꾸며 후쿠오카행 티켓을 끊었고, 개인 일정 때문에 갈 수 없었고, 환불 비용이 못내 아까워 대신 여행을 갈 사람을 페이스북에서 찾았던 겁니다.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30일, '김민섭' 씨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309동 1201호'가 아닌, 또 다른 '김민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민숩, 헬로우 민숩~"

처음 내가 영문 표기된 이름을 가지게 된 건, 태권도 1품증이 생겼을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태권도 1품증에 새겨진 내 이름의 영문 표기는 ‘minsub’이었다. 그때부터 영문 이름을 써야 할 곳에는 항상 ‘minsub’이라고 썼다. 이게 서운한 것이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 ‘민숩’ ‘민쑵’ 거리기 일쑤였다.

어머니, 아버지가 작명소에서 지어 온 나의 이름, 김민섭. ⓒ대학생 김민섭

‘민숩’이 달갑지 않았던 나는 그냥 영어 이름이 필요할 때면 ‘Daniel’이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정확한 발음으로 ‘민섭’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시기는 스무 살이 넘어 여권을 갱신했을 때였다. 나는 비로소 ‘MINSEOP’이 되었고, 여전히 외국인들은 발음하기 어려워했지만 그래도 곧잘 ‘민섭’, ‘민썹’이라고 불러줬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뒤인 어느 화요일, 페이스북에서 느닷없이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글에 태그됐다.

ⓒ작가 김민섭 페이스북 캡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의 저자인 김민섭 작가님의 글이었다. 큰맘 먹고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매하셨던 작가님은 출발하기로 한 그 주에 아이의 수술 일정이 잡히셨다고 했다. 갈 수 없게 된 작가님은 터무니없는 가격인 2만 원을 환불 받느니, '여권에 등록된 영문 이름(MINSEOP)이 같은 대한민국 남성'에게 양도하겠다고 했다. 평일인 화요일에서 목요일까지의 일정이었다.

나는 작가님이 찾는 사람의 조건에 딱 맞았다. 내 여권 이름은 정확히 ‘KIM MIN SEOP’이었다. 그러나 9월부터 작은 벤처기업에서 일을 시작했기에 평일은 당연히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태그해준 분들에게 감사하지만, 못 갈 것 같다’고 댓글을 남겼다. 그 날 점심, 밥을 먹다가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에 대해 대표님께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흔쾌히 갔다 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바로 김민섭 작가님께 메시지를 드렸다. ‘여행이 더 절실한 다른 김민섭이 나타나면 양보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틀 후인 목요일 오전에 연락이 왔다.

ⓒ대학생 김민섭

"안녕하세요, 김민섭입니다. 오늘까지 신청해주신 김민섭 씨가 한 분이에요. 그래서 기쁘게 결정하게 되었어요. 선생님께 후쿠오카 티켓을 양도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지요?"

얼떨떨했다. 그리고 얼떨떨한 놀라움은 더 이어졌다. 김민섭 작가님께 항공권을 양도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 프로젝트가 재미있다며 숙박비를 지원해주고 싶다는 분이 나타났다. 연말까지 후쿠오카에서 쓸 수 있는 교통 패스를 가지고 있다며 등기로 보내준 분도 있었다. 포켓 와이파이를 무료로 임대해주시겠다는 회사도 나타났고, 언론사 4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얼마 전 모 대학교의 졸업전시를 보러 가서 알게 된 높은 금액의 졸업전시비용 때문에, 졸업 전까지 여행을 포기하고 있던 나에겐 마다할 수 없는 행운들이 이어졌다.

고마운 연락들이 이어졌다. ⓒ대학생 김민섭

그리고 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도 펀딩을 해보자는 연락을 전해 받았다. 카카오 쪽에서 생각한 첫 리워드는 여행을 다녀온 후 ‘두 민섭의 대담’이었다. 하지만 작가님 이야기라면 몰라도, 스물다섯 살 휴학생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싶었다. 게다가 작품도 나오지 않은 디자인 전공생의 졸업 전시 비용을 언급하기엔 매우 민망해 처음엔 펀딩 기회를 고사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리워드를 고민하다가 한 달 전부터 매일 하고 있던 #1일1스케치 프로젝트를 작가님과 펀딩 담당자에게 보여줬다. 결국 리워드는 후원자분들을 그려드리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펀딩 게시물이 올라갔다.

ⓒ카카오 스토리펀딩

"그가 후쿠오카에 다녀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어느 순간에서 믿을 수 없는 연대가 일어났음을 기억하고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민섭 작가님

작가님이 스토리 펀딩에 써주신 글귀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펀딩 게시물이 올라간 지 22시간째, 펀딩은 목표 금액을 넘었고, 내 메일함에는 너무나 감사한 분들이 담긴 사진들이 쌓였다. 후원자들과 후원자들의 소중한 아들, 딸들을 못나게 그릴 수 없어 3시간 동안 한 사람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후원자분들이 맘에 들만한 그림을 전달할 수 있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되지만 행복하다.

여행을 간다는 사실보다도, 대단할 것 없는 나에게 보내는 이들의 응원이 너무나 따뜻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나도 대단할 것 없는 누구든 응원받을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 공모전 때문에 밤을 새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침, 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차 속에 수많은 응원 받아야 마땅한 삶들이 보였다. 잘난 것 없는 나 같은 보통의 삶들을 응원한다.

끝으로 ‘김민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께, 한바탕 즐거운 일을 만들어주신 김민섭 작가님께, 숙박이나 교통, 통신을 해결해주겠다고 나서주신 분들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도와주신 후원자분들께, 이 이야기를 알리면서 잠깐이라도 즐거워했던 나의 지인들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대단할 것 없는 저를 응원해주셨던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나의 짧은 여행기를 선물한다. 후쿠오카의 유명한 곱창전골이 가장 먹고 싶었던 나의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그런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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