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빈 교실을 0세 유아들에게 주자는 대책, 정말 교육적인가요?

  • 입력 2017.12.15 15:57
  • 수정 2017.12.16 12:52
  • 기자명 천경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글 '유시민 작가의 청원이 비교육적인 이유'를 잇는 초등교사 경호님의 주장 글입니다. 현장 교사로서 학교 내 보육교실을 마련하는 일이 영아, 아동 모두에게 부적절하다는 내용입니다. 더불어 보육정책은 학교가 아니라, 사립어린이집과 일반 유치원의 문제점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1. 빈 교실 활용 청원은 공리주의적 발상이다

ⓒ연합뉴스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행복을 누리게 하자는 논리다.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을 ‘보수’하여 아이를 ‘맡길’ 공간을 마련하면 ‘부모’는 심리적으로 행복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대단히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영유아의 애착 및 학교에 다니는 아동에게 주어져야 할 학습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행복은 사회적 비용지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상호작용 및 아동 중심의 사회적 환경 마련에 있다. 영유아 및 아동의 발달에 대한 적합한 환경이 무엇인지 고려하고 이에 맞는 최적의 시설을 갖추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대하는 태도여야 한다.

2. 학교는 안전하지 않다

2012년 서울의 한 사립 초등학교에 10대가 무단 침입해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 ⓒKBS뉴스

몇 년 전, 교실에 학부모가 허락 없이 들어와 아이의 멱살을 잡고 나간 적이 있었다. 사건은 이렇다. 금요일, 교사의 시선이 미치지 못한 공간과 시간에 아이들 간에 다툼이 벌어졌고, 교사는 월요일에 확인 후 알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학부모는 기다리지 못했고 교사의 허락 없이 다툼을 한 상대 아이의 멱살을 잡고 나간 것이다. 이뿐인가. 도망간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찾아내라고 칼을 들고 교장실로 들어간 아버지도 있었다. 개인적 경험 외에도 수많은 사고에 학교는 무방비 상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던 아빠로서 어린이집에 오가는 부모들의 불규칙한 등하원 시간, 차량의 출입을 생각하면 학교는 더 위험한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빈 교실의 어린이집 사용은 타당하지 않다.

3.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공간이다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수업보다 업무가 우선이고, 돌봄이 우선이고, 방과후학교가 우선이다. 교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이들을 돌본다. 돌봄 강사를 섭외하고 월급을 계산하고, 사용 물품을 구입하고, 돌봄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방과후 프로그램 수요를 조사하고 강사를 섭외하고, 일정을 조정하고, 안내장을 내보내고, 신청서를 모으고, 수납을 확인하고, 만족도 조사를 한다. 강사의 근태도 확인하고, 수강 취소 환불도 한다.

가르치는 게 뭐가 힘드냐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할 말은 없다. 요즘 아이들 옛날처럼 강압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교사가 상담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배운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함께 배우도록 할까 동료 교사들과 공부 모임도 한다.

그런 교사들이 어디 있냐고?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 교사 전체를 매도하는 짓은 하지 말라. 내가 속한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 했던 교사가 만들어가는 교육이야기 연수는 토요일에 실시했고, 자비를 내야 했으며, 전국에서 교사들이 수백 명씩 모여들었다.

교사들은 가르치고 싶다.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왜 교사들은 돌봄과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야 하는가. 왜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학교에 떠넘기는가. 이제 보육교실까지 학교 보고 안으라고 하는 것이 진심으로 교육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인가? 아니면 최소비용으로 최대 다수의 행복을 누리게 하자는 구시대적인 공리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말인가?

4.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보육시설이 아니라 부모다

0~5세 아이에게 필요한 건 부모다. ⓒtvN <미생>

부모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0~5세 사이의 아이들 곁에 부모를 돌려보내 줄 생각은 안 하고 보육시설을 늘리고 돌봄 시간을 확대하는 것이 교육적이고 아이들 중심 사고인가? 초등수업 시수 확대해서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논의도 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직장에서 일하는 것인가. 자녀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부담을 짓는가. 아이들 옆에서 부모를 떼어놓는 것이 불가피한 사회적 구조라면 그 구조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사회인가. 아니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사회인가?

양육에 있어서 애착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부모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지금의 학교가 겪는 학교폭력, 기초학력부진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제발 아이들 곁에 부모를 돌려주자. 가만히 앉아서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 가로막혀 사람을 보지 못하는 짓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