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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의 숨겨진 의미

  • 입력 2017.12.14 18:43
  • 기자명 영화 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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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 오랜만에 ‘이데올로기’의 뜻을 찾아봤다. 이데올로기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식의 방법과 형태로 세계관, 가치관, 사고방식 등 다양한 신념 체계를 뜻하는 말’이다. 굳이 이 단어를 찾아본 건 <강철비>를 잘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강철비>는 대사에서도 이데올로기를 직접 언급하고,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단적인 한 민족 안, 두 나라에 관해 말하는 영화다.

양우석 감독은 전작 <변호인>에서 한 국가 내의 이데올로기 충돌을 보여주며, 부패한 권력(적폐)과 싸운 변호사를 중심에 세웠다. 그리고 차기작에서는 끝나지 않은 남북의 대립, 이데올로기가 전혀 다른 두 국가의 갈등 속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는 이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시작된 균열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강철비>는 이데올로기 개념 그 자체의 충돌과 대립은 그다지 보여주지 않는 편이다.

ⓒ영화 '강철비' 스틸컷

<변호인>에서도 양우석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의 개념’ 간의 충돌과 대립에 주목하지 않았다. 대신, 힘을 가진 이들이 힘을 유지하기 위해 그 단어를 이용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변호인>에 등장하는 썩은 권력은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붙잡고, 비상식을 합리화했다. 양우석 감독은 이데올로기 자체가 아닌, 이를 도구로 삼아 이용하는 이들을 비추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가 이데올로기 자체의 대립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철비>는 <변호인>에 비해 영화의 시대, 소재, 그리고 스케일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지만, 양우석 감독이 바라본 가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란 주제는 유사하게 남아있다. <강철비>는 한민족이지만, 사상(이데올로기)이 다른 두 국가의 구성원이 각자의 진영에 서 있다. 이 두 사람, 북한의 엄철우(정우성)와 남한의 곽철우(곽도원)은 심지어 이름도 같다. 처음엔 등을 돌리며 서로를 외면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조금씩 같은 곳을 보며, ‘같은 편’이 되어간다.

ⓒ영화 '강철비' 스틸컷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우리 편’이란 짧은 대사는 꽤 묵직한 한방으로 다가온다. 이데올로기도 다르고, 모시는 지도자도 다른 두 사람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둘은 전혀 다른 사상을 가졌음에도 마음이 통한다. 그렇게 ‘분단국가의 국민은 분단 자체보다 그걸 이용하는 권력자들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대사처럼, <강철비>는 두 국가의 대립이 이데올로기만의 문제가 아님을 뜨겁게 말한다.

영화의 제목 ‘강철비’(스틸 레인)는 강철로 된 비란 뜻으로 영화 내의 미사일에 관한 비유적 표현이다. 과거 1991년 걸프전 당시 처음 사용된 이 폭탄(MLRS)을 본 이라크 군이 ‘강철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강철비>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이 미사일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미사일의 목적은 적군을 공격하기 위함도, 아군을 수호하기 위함도 아니다. 단지, 권력자의 야망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강철비>는 미사일이 쏟아지는 이 장면과 그 참혹한 결과를 무척 힘주어 찍는다. ‘강철비’란 미사일이 이데올로기를 구분해서 폭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무척 섬뜩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공을 들였을 것이다.

ⓒ영화 '강철비' 스틸컷

더불어 <강철비>는 20세기의 시작부터 함께한 한국과 북한, 일본, 중국, 미국 간의 복잡한 관계를 영화에 반영해 흥미로운 전개를 끌어냈다. 영화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으로 보일 정도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두드러지는 건 국민의 안전과 한 민족의 관계 속에서 고민해야 하는 남한의 딜레마다.

이 혼란 속에 <강철비>는 어떤 것이 더 소중한 가치인지를 명확히 말한다. 그리고 화합이 힘들다면, 공존을 위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가치관이나 사상 따위를 바꾸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꽤 괜찮은 완성도를 보인 영화이지만, 다소 민감할 수 도 있겠다. 관객은, 그리고 국민은 이 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영화관 안보다 밖이 더 뜨거울지도 모를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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