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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에서 ‘실시간 성폭행’이 일어나고 있다

  • 입력 2017.12.07 17:03
  • 수정 2018.03.05 13:48
  • 기자명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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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텀블러 유저가 여동생에 대한 강간모의를 제시하는 글을 업로드했다.

아래는 최근 SNS 텀블러의 한 유저가 자신의 계정에 본인 동생 제보라며 올린 게시물이다. 게시물엔 미성년자로 보이는 한 여성의 나체 사진이 함께 올라와 있었다. 게시자는 사진 속 여성이 자신의 여동생이고, 자신이 여동생을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으로 학대해왔다고 주장했다.

텀블러에 올라온 문제의 게시물

다른 유저들에겐 자신의 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피해 여성)과 성적으로 접촉 시켜주겠다고 말하며 정말 하고 싶으면 댓글을 남겨달라, 개인마다 채팅 주겠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2년 전 민간 여성들의 모니터링으로 세상에 공개돼 충격을 줬던 소라넷 강간모의사건들을 연상시킨다.

해당 게시물은 1만 건에 달하는 좋아요를 받았고, 2200개가 넘는 리블로그(공유)를 기록했다. “하고 싶다, 연락 달라는 강간모의 댓글은 수천 개가 달려 아무리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을 목격한 제보자가 캡쳐한 댓글들의 일부다. 해당 게시물엔 비슷한 내용의 강간모의 댓글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진 속 피해 여성이 게시자의 진짜 동생인지, 또 진짜 그에게 수년간 성폭행을 당해온 사람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있다. 지금 한 여성의 나체 사진이 불법적으로 유포됐고, 피해자는 '성폭행 피해자'SNS에 알려졌으며, 그런 그를 성폭행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수천 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강간모의부터 지인 합성까지, “2의 소라넷텀블러

비슷한 게시물이 한두 개가 아니다. 텀블러에선 현재 해당 게시물과 같은 온라인 강간모의, 성관계 영상이나 나체 사진 유포 등 통칭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해 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걸레 백과사전” “걸레 제보등의 이름을 단 계정들은 SNS에서 입수한 여성들의 사진과 신상을 계정에 공개하며 그들을 걸레라고 매도한다. 해당 여성(피해자)이 얼마나 많은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는지, 얼마나 문란한지 설명하며 성적으로 모욕하는 식이다.

제보, 사전 따위의 형식을 취한 사이버 성폭력, 인격 테러 계정이 다수 존재한다. 텀블러뿐 아니라 트위터 등의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전엔 페이스북의 인기 유머 페이지 등이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여성 지인이나, 심지어 모르는 여성도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보복성 테러일 때도 있다. 피해 여성에 대한 제보는 거의 거짓이지만,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같은 인격 테러가 정당화될 순 없다. 개인의 사생활을 그릇되게 가치 판단하여 모욕하고 공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명예 훼손이다

이런 인격 테러 게시물들이 텀블러에선 소위 능욕이라 불리며 하나의 콘텐츠 장르처럼 다뤄진다. 여성의 입장에선 자신의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의 사진을 나체 사진과 합성하여 유포하는 경우도 많다. 텀블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인능욕이란 단어는 지인의 얼굴을 성적인 사진과 합성하여 포르노로 만들어주는 디지털 성범죄 콘텐츠를 의미하는 은어다.

'지인능욕' 계정에선 제보 받은 여성의 사진을 포르노로 만들어 유포한다. 사진은 해당 사이트의 캡처.

텀블러는 2016년 디지털 성범죄의 메카라 불리던 소라넷이 폐쇄된 이후 2의 소라넷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입 절차가 간단하고 성인인증도 필요 없다. 기본적으로 익명 시스템인 데다가 본사는 해외에 있어 국내법으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디지털 성범죄가 이루어지기에 딱 좋은 구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방심위가 시정, 삭제를 요구한 성매매, 음란 관련 온라인 게시물 중 78%가 텀블러의 게시물이다. 방심위는 이미 지난해 텀블러 측에 자율심의를 요청했지만 텀블러 측은 본사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디지털 성범죄 막으려면 소비자들을 잡아야 한다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황이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특히 텀블러, 트위터 등 해외 사이트에서 주로 일어나는 지인능욕” “걸레제보같은 범죄들에 대해선 아직 법적인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다. 때문에 경찰과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게시판엔 해외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무분별한 일반인 모욕 사진의 유포를 처벌해주세요라는 청원 게시물이 올라왔다. 청원 게시자는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이러한 범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며 해당 범죄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했다. 7일 현재 해당 청원의 참여인 수는 5만 7천여 명이다.

해당 청원.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캡처.

그러나 해외 사이트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소라넷이 폐지되자 텀블러가 떠오른 것처럼 언제 어떤 사이트가 다시 디지털 성범죄의 메카를 형성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금도 수많은 웹하드에 디지털 성범죄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일각에선 디지털 성범죄를 대할 때 공급보다 수요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끊이지 않는 법, 콘텐츠 유포자들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 그 소비자들을 통제할 대책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10월 부산경찰은 불법촬영물 근절을 위한 Stop downloadkill 프로젝트에서 몰카, 보는 사람도 공범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대중의 호평을 얻었다.

공급보다 수요’. 부산경찰이 보여준 접근법이 이번 사안에 있어서도 중요해 보인다. 텀블러에서 지인능욕” “걸레제보같은 인격 테러 범죄들은 이미 일종의 콘텐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해당 범죄들이 콘텐츠화될 수 있는 이유는, 범죄적 게시물에 동조하며 콘텐츠를 즐기는 수천의 공범들에게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그들 모두를 통제할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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