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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 왜 미국에서 인기 있는지 알겠다

  • 입력 2017.12.06 10:29
  • 수정 2017.12.06 13:26
  • 기자명 리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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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하 BTS)의 미국 인기는 난데없이 등장한 하나의 현상이 아니고 차곡차곡 쌓인 과정의 결과물에 가깝다. 싸이의 인기가 신드롬이자 일시적 현상이었다면, BTS는 미국이 선도하는 대중문화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 결과물이다.

따라서 싸이와 BTS의 인기를 비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KPOP이라는 공통분모는 둘 사이에 지극히 얕고도 좁은 영역이다. 언론이 BTS의 인기가 SNS의 영향이니, 춤이니 KPOP의 부활이니 떠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다 헛다리만 짚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BTS의 인기는 KPOP의 우월함 때문이라기보다 BTS 자체가 현재 대중, 특히 이제 주도권을 쥐게 된 청년층의 대중문화에서 원하는 맥을 잘 짚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라는 소개를 받으며 AMA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 ⓒ빅히트 ENT

미국에서 중,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 같은 비주류(라고 쓰고 찐따라고 읽는다)들이 심취해 있던 문화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특히 에반게리온이 그 중심에 있었다. 사실 나는 에반게리온이나 일본 애니에 1도 관심 없었지만, 주위 친구들이 다 좋아하는 분위기였기에 나도 이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미안하지만 친구의 모든 설명을 듣고 애니도 다 봤지만 사실 아직까지 에바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당시 애니메이션이 인기 있었던 건 현실 부정 세계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 비주류로서의 좌절감, 우울함, 분노의 폭력적 분출 등 비주류가 원하는 요소들을 대충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애니는 특유의 저변적인 느낌 때문에 애니에 관심 없는, 생뚱맞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가 어려웠고, 특히 서양인들은 근본적으로 공감하기가 어려운 정서가 담겨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유튜브나 SNS가 존재하지 않아서 더더욱 주류로 가는 문턱을 넘기 힘들었다. 결국 일본 애니는 주류 문화가 되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 수많은 반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체감 수준에서의 이야기다.

하지만 BTS는 다르다. 한국 팝이라는 비주류 요소가 있는 동시에 universal한 춤과 노래 그리고 전파 가능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경험상 미국에서 대중문화의 수문장은 중, 고등학생들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판명 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기표현 욕구에 날뛰는 틴에이저들의 엄격하고 촘촘한 그물망을 뚫어야만 주류 문화권 안으로 편입된다. 이들은 자신이 쪽팔리는 문화를 절대 친구들에게 전파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문화는 비주류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 동시에 세련되어야 하며, 일정한 수준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BTS는 이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춘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셀레나 고메즈와 저스틴 비버, 켄달 제너의 fabulous한 라이프에 지치고 더 이상 공감하고 싶지 않은 비주류 틴에이저들이 찾아 헤매던 중 걸린 것이 바로 BTS이다.

다면체의 아티스트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에는 SNS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공중파 방송보다 라이브 앱이나 트위터가 더 세련된 문화인 것은 자명하고, 그렇다면 어떤 것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도 명확해진다. (기성세대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요즘 한국 방송국 시상식이 온라인에서 무슨 의미가 있...?)

이모가 절대로 방탄 덕후라거나 막 팬질하거나 그래서 그러는 게 아니라규(.....)!!!

북미 사회에서 KPOP은 여전히 비주류이다. 유투브 리액션 비디오를 보면 최근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KPOP에 심취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유명한 리액션 유투버 ‘JRE’의 비디오는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자주 봤는데 역시나 BTS를 사랑한다. 필리핀계 미국인인 JRE는 자신의 삶이 힘들 때 KPOP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스스로를 ‘BTS TRASH’라고 부르는 용기 있는 남자. 올곧은 KPOP way. ⓒ유튜브 캡처

즉 KPOP은 한국계 이민자들을 포함해서 소수인종이나 비주류들에게 저 멀리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도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줌과 동시에 묘한 동질감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위로를 제공하는 역할이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교포 2, 3세들이나, 일본 애니와 동양 문화 전반에 관심이 있는 비주류 백인들, 성소수자들 등 말이다.

그래서 이번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 퍼포먼스를 보는 유튜버 ARMY(방탄소년단 팬덤)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I feel so PROUD'였다.

왜 북미에 사는 그들이 한국 케이팝 그룹이 미국 공중파 음악쇼에 데뷔하는 데 그토록 긴장하고, 자랑스러워하는가? 이미 BTS에 스스로를 투영한 사람들에게 있어 BTS는 이미 자신이 속해있는 미국 사회보다 더 가까운 문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BTS가 성공적으로 AMA에 데뷔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주류 사회에 인정받는 기분을 느낀 듯하다.

'Captain Korea' 유튜버. ⓒ유튜버 캡처

이들은 캐나다에 사는 재미교포 형제로 ‘Captain Korea’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BTS가 AMA에 나올 때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긴장하더라.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는 정말 '내'일이었다. 인종적으로 ‘한국인’인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 나가야 할 북미 사회에서 방탄에 대한 평가는 그들 스스로가 받게 될 평가에 가깝다.

방탄소년단이 출연한 AMA를 정말 긴장하면서 보던 오빠들. “so proud”를 연발했다. ⓒ유튜브 캡처

계속 비주류 얘기를 했지만 결국 주류 대중문화는 항상 비주류로부터 시작한다. 힙합도, 록도, 재즈도 다 비주류에서 시작했다. 세련되고 우월한 주류 셀럽이 무지몽매한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부분 비주류에 속하는 대중들이 스스로가 원하는 모습을 셀럽에게 투영시키고, 그 욕망은 바로 셀럽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KPOP 그룹이 미국 주류 대중문화를 아무리 잘 따라한 들, 그들은 이류가 될 수밖에 없다. “나 멋있지? 나 스웩 짱임” 이런 태도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오 그래, 잘 따라 하네” 이상의 반응을 끌어 낼 수 없다.

반면 비주류인 BTS가 전 세계에 “내가 너고 네가 바로 나야, 너도 사실은 나처럼 멋있는 사람이야”라는 위로를 전했을 때, 이미 승부는 판명 났다. '넌 멋지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대중문화다. 그것이 아무리 상업적 메시지일지라도 그 안에서 위로를 받고 싶은 대중의 힘은 막강하다.

BTS가 굳이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BTS는 미국 비주류에게 위로를 주고 동시에 나아갈 방향도 제시해줬다. 그리고 AMA에서 자신들이 주류에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함으로써, 앞으로 주류 문화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중문화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이 교묘한 맥락을 아주 섬세하고 정확하게 잘 읽어야 하지 않을까.

KPOP의 우월성이라는 헐거운 틀로 바라보면 절대 이 결과론적인 인기를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도 없다. BTS보다 춤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사람은 미국에 깔렸다. 대중문화는 실력이 아니라 메시지다. 결국 대중문화는 현상이 아니고 축적된 결과물이다.

BTS는 싸이도 PPAP*도 아니다.

*단순한 가사와 춤을 반복하는 후크송 ‘PPAP(Pen-Pineapple-Apple-Pen)’로 유명해진 일본 가수 피코 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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