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수능에 패배한 생존자 둘, 어떻게든 즐겁게 삽니다

  • 입력 2017.11.25 11:29
  • 수정 2017.11.25 14:07
  • 기자명 변재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합뉴스

원래 수능 끝나면 수험생보다, 아는 척하려는 아저씨들이 더 신난다더라. 나도 그런 것 같다. 각설하자면, 수능이 얼마나 과학적인 시험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가연이도 모른다.

가연이도, 나도 수능을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능을 보기는 봤으나, 수능 수험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학생이고 (당장 나는 고등학교도 똑바로 다니지 못했는데 수능은 무슨), 수능 점수와 무관하게 대학교에 갔다.

우리 부부는 수능 점수로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뒷문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을 쓴다. 20대 초반까지는 둘 다 뒷문으로 대학에 들어간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이 많았다. 참고로 가연이는 네덜란드 대학에서 유럽법을 전공했고, 나는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한예종 면접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교수님께서 '여기 떨어지면 어떡할 텐가'를 물었고, 나는 '엄마가 제주대 가라시는 데요. 여기 떨어지면 제주대 가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내가 수시 때 지원한 학과들은 정말 버라이어티한데, 부산대 노어노문과/중앙대 경영학과/제주대 경제학과/한예종이었다.

한예종을 제외한 3개 대학은 최저학력이 나란히 필요했고, 한예종만 수능과 무관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한예종 합격통보가 수능보다 일찍 나왔다. 그래서 앞의 세 대학은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았다. 11월이 수능이었던 것 같은데, 10월 말부터 혼자 놀자판이였다.

촛불을 든 학생들(참고 이미지). ⓒ레디앙

가연이는 수능을 보기는 보았는데, 촛불소녀로 학교 선생님에게 개기거나, 한미FTA 시위, 부마민주항쟁 토론상을 받는 데 관심이 있었지 제도권 입시 교육에는 영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다. 당연히 수능도 원하는 만큼 잘 못 봤다. 고졸로 남느냐, 재수하느냐 기로에서 장인어른이 가연이를 앉혀놓고 세계지도를 펼쳤다. '수능을 1년 더 보느니, 네가 가고 싶은 국가의 아무 대학이나 가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가서 공부하고 싶은 국가를 유학원 도움 없이 스스로 조사하고 선택해 오라고 하셨다.

가연이는 처음에 프랑스로 가야겠다 싶어, 불어를 배웠고 1주일 만에 그만뒀다. 불어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노르웨이 대학도 알아봤었는데, 학사 과정은 무료가 아닌 관계로 그만뒀다. 그러다 얻어걸린 것이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에서는 더치로 공부하지 않냐는 질문이 많지만, 네덜란드의 영어 구사율은 90%가 넘고, 웬만한 대학의 커리큘럼은 다 영어로 진행된다. 결국 가연이는 친구들이 재수하고 있는 동안, 혼자 영어를 공부하겠다며 강남역을 오가며 1년간 영어공부를 했고 네덜란드로 출국했다.

처음에는 헤이그에서 행정학을 공부했으나, 이후 유럽법에 관심이 생겨 유럽연합이 탄생한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따라 난데없는 '지방대학' 마스트리흐트 대학 법과대학으로 갔다. 유럽법을 공부하려면, 유럽연합의 중심지에서 공부하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고, 아주 단순했으며 정확했다. 귀국할 것을 염두에 두면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에 가는 것이 맞을 텐데, 가연이는 항상 이런 공부에 쓸데없는 확신이 있었다.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스러운 판단이었다.

그리고 가연이의 고집적인 선택은 옳았다. 네덜란드에서 유럽법을 공부한 덕에, 영어를 하게 되었고, 아무 한국인도 공부하지 않는 유럽법을 공부한 덕에, 한국에 와서도 아무것도 할 만한 실무는 없지만, 지금 공부하는 헌법과 비교하면서 공부할만한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고생은 조금 많이 했지만, 누가 알아주는 대중적인 명문 대학을 나온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나도 한예종을 간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한예종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수능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늘 모지리 취급을 받았고 나는 정말 내가 모자란 줄 알았으며, 이 격차는 평생 돌이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회의 부진아로 낙인찍혔다가 구사일생으로 한예종이 나를 살렸다. 결국 수능과 관계없는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고, 마음껏 놀 수 있었다. 대자보도 마음껏 썼고, 하필 이명박-근혜시대를 타고나 집회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뭘 배웠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편견 속에서 벗어나는 법은 배운 것 같다.

ⓒ연합뉴스

수능이 잘 풀리지 않아 성적표가 나온 날에는 항상 자살하는 학생의 소식이 들린다. 그럴 때마다 속상하다. 수능이 잘 풀리지 않고, 뒷길로 들어가도, 인생은 어떻게든 풀린다.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이 도피유학이니, 딴따라니, 어쩌구니 얘기하든 말든, 본인 인생을 챙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당장 어느 대학에 갈지 보다도 내가 무엇을 제일 재밌게 공부하고 싶은지만 알면 된다.

추가로, 다시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응용학문보다는 순수학문을 할 것 같다. 문사철/자연과학이 위기인지는 벌써 10년도 더 넘은 것 같은데, 결국 학부 때는 문사철법/자연과학을 공부하며 지평을 넓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전공은 대학원부터 해도 충분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수능에 패배한 생존자 둘이 결혼하여 살아도, 어떻게든 즐겁게 공부하며 먹고는 산다. 수능이 아이들의 학습 욕구를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