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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을 재미로 소비하는 사람들

  • 입력 2017.11.16 16:19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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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작년

작년 9월이었다. 교내 카페에 앉아 있는데 땅이 흔들렸다. 흔들림을 느끼는 순간, 이게 지진이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이럴 때에는 책상 아래로 숨으라던 대피 요령이 뒤늦게 생각날 때쯤 지진이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방금 전처럼 생각났을 바로 숨지 않으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졌을 있었겠구나.

생각을 되뇌고 있는데, 더욱 강력하고 오래 가는 지진이 다시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책상 아래 숨었다. 복도에서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고 있었다. 나도 지진이 멈춘 후에 짐을 빠르게 챙겨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학생들은 우왕좌왕하며 운동장에 모여 있었고, 어떻게 대처할 모르는 학교 당국도 혼란에 빠졌다. 살짝 비가 내리던 그날, 기숙사를 포함한 건물들은늦게까지 출입이 금지되었고, 긴급휴교령이 내려졌다. 자취하던 집에 도착해서 보니, 복도에 입힌 대리석 조각이 떨어져 깨져 있었다.

지진, 올해

그리고 어제, 작년만큼의 지진이 일어났다. 각각 5.4, 4.3도로, 2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났다. 포항역은 수도관이 터져서 임시폐쇄되었고, 도로는 갈라졌다. 어떤 건물은 외벽을 감싼 벽돌이 무너지고 회색 콘크리트가 드러났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 나는 서울에 있었고, 약간의 여진만을 느꼈다.

SNS 친구들의 안부와 위로, 그리고 생존신고로 가득찼다. 도저히 다른 얘기를 찾아볼 없을 정도로 하나의 주제가 피드를 가득 채우는 일은 유쾌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모든 번잡함들로 지인의 살아있음을 확인할 때면 더없이 반가웠다.

ⓒ페이스북 갈무리

그리고 이런 혼란 와중에, SNS에서는 다시 지진을재미 소비하는 글이 떠돌기 시작했다.지진이 아냐./내가 맘을 흔든거지/사귀자 나랑소위유사남친컨셉 표방하면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계정에서 올라온 글이다. 사람들이 항의하자 현재는 삭제됐다.

이와 비슷하게 작년 지진 직후, 만화가 레바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근데 지진못느꼈는데 .. 아주살짝만 한번더일어났으면’, ‘오나홀있는분들 당장 꺼내서 끼고엎드리면 지진땜에 덜뺄수있겠네요!!’ 트윗 역시 삭제되었다. 묻고 싶다. 지워졌으니 괜찮은 걸까.

지진의 비대칭성

지진은 진앙지로부터 멀어질수록 위력이 약해진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거리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 재난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메워지기 힘든 경험의 비대칭이 생긴다. 재난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경험한 이들의 감정을 쉽게 공유하지 못한다.

지진의 이런 특성은 다수자와 소수자가 겪는 경험의 간극과 비슷하다. 여성, 장애인, 퀴어가 겪는 세계가 남성, 비장애인, -퀴어의 세계와 다른 것처럼, 경상도에서 일어난 지진은 서울의 여진과 명백히 다르다.

진앙에서 지역에서는, 그저 한두 번의 여진을 흥미롭게 느끼며 하던 일을 마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앙 부근의 모든 사람들은 지진 이후 반쯤은 피난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상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도 비극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놓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직업이 있고 당장 내일 일이 있는 사람들은 지진의 공포가 가시지 않은 공간에 들어와 다시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 화분이 깨지고 가구가 흐트러진 집을 손으로 정돈하는 것도 공포를 겪은 이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재난 앞에서 우리는

이렇듯 지진은 경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크나큰 간극을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지진을 농담거리 삼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지진 당사자가 내뱉는 자조는 오히려 공포를 이기려는 증상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가볍게 던지는 농담은 말로써 행하는 고립이며 무심한 폭력이다.

재난 앞에서 우리가 해야 일은, 오로지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무너진 자리와 마음을 보듬고,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것이 정말 재앙임을 깊이 느끼고, 인기를 위해 한낱 웃음거리로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반응을 보고 아니다, 싶어 지운 후에는 이미 늦다. 피해 당사자에게 절대 농담일 없는 폭력에, 이미 폐허가 그들의 마음은 짓밟힌다.

어제의 지진으로 쑥대밭이 거리. ⓒ연합뉴스

불안 속에서 살아가기

이런 지진이 오고 나면, 나와 우리 주위의 일상생활이 함께 흔들린다. 늦는 경보는 방금 겪은 재앙을 건조하게 알리는 글자에 불과하다. 그런 지진이 오고 나면 무너진 장소를 복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진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은 여진으로 가득찬다. 여진이든 버스의 엔진으로 인한 떨림이든, 어떤 떨림에도 신경이 쓰인다.

이것은 지진을 몸으로 느끼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지진을 겪은 이후의 불안은 이전과 결코 같을 없다. 무사히 일상으로 안착하기까지는 마음 속으로 기나긴 경계심을 안고 살아야 한다. 다리를 떨면서 발생하는 진동까지, 모든 크고 작은 떨림이 생존과 결부되어 있다는 기분이 떠나지 않는다.

지진 이후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막연한 공포다. 가장 굳건하다 믿었던 땅이 흔들리는 경험은, 철썩같이 믿던 많은 것들이 함께 흔들리는 것을 뜻한다. 이미 흔들렸으니 앞으로도 언제든 이렇게 흔들릴 있는 땅에서 살아가기란, 가장 근본적인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런 불안은 오롯이 자신의 피해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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