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선거법 VS 광고법 현수막 혈전, 꿍꿍이 서로 달라

  • 입력 2014.04.11 09:55
  • 수정 2014.04.11 10:00
  • 기자명 오주르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교차로나 상가 주변. 투표 독려 현수막으로 가득하다. 심지어는 현수막에 가려 도로표지판을 볼 수 없을 정도다. 법정 선거운동기간은 5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13일간. 공직선거법에 묶인 예비후보자들이 사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전 선거운동 수단이 돼 버린 투표 독려 현수막

이런 상황에서 투표 독려를 빙자한 현수막 게시는 매우 유용한 홍보 수단이 된다. 선관위는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 없이 투표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공직선거법 제58조 1항을 근거로 해 투표 독려 현수막 게시를 허용하고 있다.

‘후보자 지지·추천·반대’를 협의로 해석해 현수막에 예비후보자 이름과 소속 정당을 기입하는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겠다는 얘기다.

공직선거법 제58조 (정의 등)
①이 법에서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한다.
5.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포함한다)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 없이 투표참여를 권유하는 행위.

‘선거홍보물이다’ VS ‘공익성 게시물이다’

이름과 소속정당을 넣는 건 사실상 ‘선거홍보물’로 위법이라는 해석도 있다. 현수막을 걸어 놓은 이유가 투표 독려가 아닌 예비후보자 홍보 목적으로 해석되는 만큼 이런 행위는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예비후보자 이름과 소속정당이 기입된 투표 독려 현수막은 사실상 선거홍보물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시각과, 이를 ‘선거물’로 해석하는 건 정치적 자유권과 표현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선관위는 ‘예비후보자의 이름과 소속정당을 노출시킨 투표 독려 현수막’에 대해 너그러운 입장이다. 반면 안전행정부는 그렇지 않다. 거리 미관을 해치고 주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민원이 폭증하고 있어 그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선거법 58조’ VS 안행부의 ‘옥외광고물관리법’

안행부는 9일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을 적용해 시군구청에 신고된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 나붙은 현수막을 즉시 철거하라고 지자체에 통보했다. 선관위 입장과 상충되는 조치다.

선관위의 공직선거법과 안행부의 옥외광고물관리법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적법’과 ‘불법’ 두 잣대가 동시에 적용되면서 예비후보자들 사이에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일 대전 서구 둔산동 일대에서 투표 독려 현수막 수십 장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고 CCTV를 통해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졌다. 다름 아닌 구의회 의장을 지낸 바 있는 새누리당 소속 현역 구의원 A씨. 공천경쟁자가 내건 현수막을 제거한 것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법 광고물을 철거했을 뿐 경쟁후보의 선거운동을 방해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불법광고물 단속 권한도 없는 사람이 왜 이런 ‘자원봉사’를 자청한 걸까. 현수막을 내건 목적이 투표 독려라는 ‘공익행위’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방증해 주는 사건이다.


적법이면서 불법

공직선거법으로는 ‘적법’, 옥외광고물관리법으로는 ‘불법’. 때문에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자체 공무원 퇴근 시간에 맞춰 현수막을 걸었다가 출근 시간이 되면 일시 철거하는 예비후보자들이 많다. 선거법을 적용해 붙였다가 광고물관리법을 의식해 떼어내는 황당한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차체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단체장들이 안행부의 지침을 잘 따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정치적 득실을 감안한 ‘오락가락’ 집행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단체장들은 ‘공직자 정치적 중립의무’ 조항 때문에 ‘투표독려 편법 현수막’조차 내걸 수 없다. 하지만 경쟁자들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리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을 터. 꺼내 든 ‘무기’가 바로 ‘안행부 지침’이다. 이런 입장에 놓인 단체장들은 상대 후보 현수막을 적극적으로 철거한다.

일부 단체장들, 유불리 판단해 정치적으로 악용

반면 출마를 포기한 단체장의 경우 안행부 지침에 따르기보다 선관위 입장에 서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철거와 단속이 느슨하게 이뤄진다는 얘기다.

또 자신이 소속된 정당 후보자들이나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후보자에게 현수막 게시가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판단한 단체장들은 안행부 지침을 무시한 채 ‘비영리 목적의 현수막은 단속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옥외광고불관리법 예외조항’을 적용해 현수막 설치를 적극 허용하고 있다.


현수막, 어깨띠, 표찰 등의 표시물을 사용한 투표 독려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규정해 이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있는 상태다. 이러면서 혼란이 더 가중된 것이다.

현수막 혈전으로 혼탁해지는 지방선거

각자 제 입맛에 맞게 해석한다. 선관위는 투표율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공직선거법 제58조를 너그럽게 해석해 투표독려 현수막에 ‘적법’ 도장을 찍어준 반면, 안행부는 주민 불편과 민원을 고려해 ‘불법’이라고 판정했다.

예비후보들은 ‘적법’과 ‘불법’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현수막 혈전’을 치르고 있고, 정치적 계산이 빠른 단체장들은 ‘안행부 지침’과 ‘옥외광고물관리법 예외조항’을 놓고 어느 것을 적용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한지 주판알 튕기느라 바쁘다.

뜬금없는 ‘현수막 혈전’으로 선거 혼탁과 공정성 훼손이 우려된다. 공정한 선거관리 책임은 대통령과 선관위에 있는 만틈 ‘현수막 혈전’을 종식시킬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할 것이다. 악용될 바엔 차라리 현수막 전면 금지가 훨씬 낫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