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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이 '나쁜 사람'인지 모른다

  • 입력 2017.11.13 11:52
  • 수정 2017.11.13 17:14
  • 기자명 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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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1일 뉴욕타임스 뉴욕 에디션 1면에 발행된 “강간을 저지른 남성에 대한 새롭고 면밀한 검토(New Scrutiny for Men Who Rape)를 번역한 글입니다.



'찾을 수 없는 강간범(The Undetected Rapist)’이라는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의 기사가 인용됐다. ‘강간피해자’ ‘정부, **주 여성 강간범을 찾는 중’ ‘강간, 유괴 기소자 가석방 되다’ ‘여기자, 악명 높은 강간범 ‘구린내’에게 강간당한 사실 고백’ ‘잔혹한 강간 사건으로 3명 기소돼

성폭행 가해자들은 신문기사에서도 재판에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해당 논문의 저자는 이같은 세태가 강간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한다고 말한다. 이 논문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으로 돌아간다.

1976년 클레어몬트 주립 대학원 박사과정의 한 학생이 LA전역에 특이한 광고를 냈다.

<당신은 강간범입니까? 익명성 보장 전화 인터뷰 진행.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213-ooo-oooo으로 전화 바람> Samuel D. Smithyman

그 학생은 바로 임상심리학자 사무엘 스미티맨 박사다. 그는 전화벨이 울리리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누구도 ‘강간범을 찾는 광고’에 응답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 하지만 전화벨은 200여 번이나 울렸다. 전화를 건 ‘강간범’은 ‘썸녀’를 강간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지인의 아내를 강간한 화가, 비버리 힐즈의 갑부들과 어울리기 위해 10~15명을 강간한 학교관리자 등이었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스미티맨 박사는 논문 ‘찾을 수 없는 강간범’의 기본 자료가 되는 50개의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를 한 남성들은 매우 평범했고 주변 배경도 다양했다. 스미티맨 박사는 “그들 사이의 일반적 공통점은 매우 적다”는 결론을 내렸다.

ⓒNBC

최근 몇 주 동안 전 세계 여성들이 SNS 해시태그 캠페인 #MeToo를 통해 자신들의 성폭행 혹은 성추행 당한 경험을 증언하고 있다. 스마티맨 박사의 실험을 뒷받침하듯 수많은 성폭행 사건에 등장하는 가해자의 프로필은 너무나 다양했다. 그러나 최근 관련 연구에서는 “성폭력 가해자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공통점은 인종, 계급, 기혼 여부 등 일반적인 통계 범주와는 관련이 없다. 대신 다음과 같은 공통 패턴이 있다. 1)가해 남성들은 이른 나이에 범죄를 시작했다, 2)다른 성폭행 가해자들과 알고 지낼 가능성이 있다, 3)그들은 합의 없는 성관계를 했다고 인정하지만, 여성을 강간했다는 사실은 대체적으로 부정한다.

전문가들은 가해자들이 자신의 고통에서 도피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이같은 패턴이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학술지 <폭력의 심리학>의 편집자 셰리 함비는 가해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폭력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10개의 논문을 받을 동안, 가해자 관련 논문은 1개 정도 도착한다. 가해자에 대한 연구는 극소수다. 성폭력 가해자는 대개 남성이지만, 성폭력 자체를 ‘여성의 이슈’로 여기는 이유도 일부 존재한다.

주제 선정 또한 성폭력 연구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이전의 수많은 연구들은 ‘기소된 강간범’에만 집중했다. 성폭력에 관해 수 십 년간 연구해 온 LA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네일 말라무스 박사는 ‘기소된 강간범’ 위주의 연구가 자료의 왜곡을 불러온다고 말한다.

“감옥에 있는 남성들은 ‘일반범’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시계, 차를 훔치듯이 종종 섹스를 훔치는 것이죠. 반면 성폭행을 저질렀지만, 감옥을 가지 않은 남성들은 ‘전문범죄자’가 됩니다.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감옥을 가지 않는 보다 더 큰 위법 행위를 한 것이죠.”

최근 성폭력 연구에서는 설문에 응한 가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고, 중립적인 법률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강간’과 ‘성폭행’ 같은 단어를 쓰지 않는 대신 '쌍방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성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행동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묻는다. 놀랍게도 인터뷰에 참가한 가해자들은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한다.

대부분의 성폭행 가해자들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1, 2학년, 즉 어린 나이에 범죄를 시작하는 편이다. 또한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실행다. 가해자 중 일부는 한 두 번 이후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확한 비율을 알 수 없는 나머지 남성들은 성폭행을 계속 하거나, 심지어 빈도 수를 더 늘려나갔다.

웨인 주립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안토니아 애비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젊은 남성들은 재범의 가능성이 낮은 반면, 피해자를 비난한 가해자들의 재범률은 매우 높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재범의 경험이 있는 한 가해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녀가 나를 흥분시킨 것에 대한 벌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성폭행이 상습적으로 변하게 되는 어떤 포인트가 있는지, 전체 성폭행 사건 중 몇 퍼센트 정도가 연쇄범에 의해 발생하는 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가해자들의 범죄 빈도의 높고 낮음을 나누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

조지아 주립대학 사회학 공공보건학 교수 케빈 스와트아웃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성폭행을 저지르는 빈도가 낮은 가해자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것은 약 복용량(dosage)처럼, 정도의 문제에 더 가깝다고 아리조나 대학의 공공보건학 교수 메리 코스 교수는 말한다. 코스 교수는 데이트 강간(date rape)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학자다.

그렇다면 무엇의 ‘정도’ 또는 ‘복용량’을 말하는 것인가? 가해 남성들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어떤 위험 요인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여기서 위험 요인이란, 과도한 음주, 섹스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 “안 돼”라는 말을 “돼”라고 해석하는 강간에 대한 신화 등이다. 여성을 묘사할 때 과격한 용어를 쓰는 또래 집단도 여기에 속한다.

ⓒEBS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위험 요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강간 포르노에 특히 흥분하는 남성이라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좋은 경우 성폭행을 시도할 확률이 낮다. 반면 자기도취적 성향이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해, 성폭행을 저지를 확률을 더 높이기도 한다.

강간이 여성을 힘으로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 발상이 여성에 대한 적대적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물론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은 범행의 모티브는 매우 다양하며, 이를 수량화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말라무스 박사는 재범 경험이 있는 가해자들이 종종 고등학교에서 여성들에게 거절당한 경험 또는 비슷한 상황의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몸 좋은 놈들이나 축구부 놈들이 예쁜 여자는 모두 차지했다”

한때 인기 없었고 종종 자기도취적인 남성들은 더욱 성공적인 강간범이 된다는 논리이다. 말라무스 박사는 “여성들에게 복수한다는 개념, 그들을 힘으로 이겨버린다는 생각이 어떤 흥분의 근원이 되는 걸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연구 참가자들은 그들이 쌍방의 합의 없는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것을 ‘강간’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반복적으로 마주했다. 코스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들에게 ‘피해자의 동의 없이 삽입했느냐’고 물으면 설문참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간과 같은 행위를 했느냐’고 물으면 늘 ‘아니오’라고 답한다.”

수감 중인 강간범에 대한 연구에서도 거리두기 경향을 찾을 수 있다. 연구 대상자 중에는 분쟁지역에서 성노예를 둔 가해남성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성폭행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범죄를 저지른 건 저기 어딘가에 있는 ‘괴물’이라고 봤다. 셰리 함비는 이렇게 분석했다.

“이들이 싸이코패스가 아니라는 증거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 누구도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는 것이다.”

결국, 강간을 저지른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문제라고 절대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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