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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히어로 토르가 재밌어진 마블의 속사정

  • 입력 2017.11.02 18:46
  • 수정 2017.11.03 09:44
  • 기자명 영화 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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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3>는 마블 영화의 관점을 바꿔놓은 영화다. 단순히 코믹스를 영상으로 이식해 오락성을 극대화한 영화라는 인식을 깼다. 슈트와 자신의 맨몸 사이에서 보이는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은 꽤 진지했고 이는 영웅의 고뇌를 철학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어벤져스>는 마블 영화들의 세계관을 통합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고 관객을 설레게 했다. 홀로 영화 하나를 온전히 끌어갈 수 있는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 엄청난 볼거리를 선물했다.

한편, 마블은 덩치를 키워가면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데드풀> 등의 영화를 통해 마이너한 감성과 독특한 재미까지 더했다. 늘 거기서 거기일 것 같던 영웅 영화는 관객과 시대에 맞게 진화해왔고 개봉하는 영화마다 흥행하고 있다. 마블은 말 그대로 흥행보증수표인 셈이다. 그리고 <토르: 라그나로크>도 마블의 진화를 목격할 수 있던 영화다.

‘개봉 5일 만에 200’, ‘미국 개봉 전, 흥행 수익 1억 불 돌파 <토르: 라그나로크> 흥행에 관한 소식이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있다. 다른 영웅과 비교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던 노잼 캐릭터 토르는 어떻게 강자가 되었나(토어강?!) 이번 글에서는 토르 시리즈가 선택한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도 MCU가 지킨 전통에 관해 써보려 한다.

가볍고 흥겨워진 분위기

아이언 맨, 데드풀, 스타로드 등의 캐릭터에 비해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미에 관한 강박은 <토르: 라그나로크> 첫 장면에서부터 볼 수 있다. 수르트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쇠사슬에 묶인 토르는 빙글빙글 돌며 수르트의 말을 끊는다.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이 모습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번 토르엔 잔재미가 넘쳐날 거야! 이제 토르는 노잼이 아니야!’

80%를 현장 애드립으로 촬영했다는 감독의 말에서부터 <토르: 라그나로크>가 얼마나 유연했는지 느낄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촬영장의 생생한 분위기와 그때의 트렌드를 담을 최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토르: 라그나로크> MCU의 우주 영화 선배 격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유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용한 음악만 봐도 가오갤 시리즈와 유사한 복고풍의 음악을 택했다. 엄청난 흥을 느낄 수 있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Immigrant Song’의 비트, 분위기만으로도 토르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

여태 MCU는 여성 캐릭터를 메인으로 활용한 적이 없다.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네뷸라(카렌 길런) MCU에도 강인하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있었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DC라는 (명목상의) 라이벌이 MCU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뒤처지지만, ‘원더우먼(갤 가돗)’이라는 여성 영웅으로 역대급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할리 퀸(마고 로비)’이라는 한 해를 대표할만한 캐릭터를 보였다는 건 눈여겨볼 사건이다.

페미니즘과 여성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면서 할리우드는 여성 캐릭터에 관해 새롭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젠더 스와프(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 바꿔 영화를 새롭게 만드는 것) 등의 노력으로 여성의 역할을 더 드러내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에 맞춰 <토르: 라그나로크>엔 헬라(케이트 블란쳇)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빌런을 내세웠다. 심지어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오스카상을 2(<에비에이터> 여우 조연상, <블루 재스민> 여우 주연상)이나 수상한 케이트 블란쳇이다. 그녀의 존재감만으로도 남성 영웅 위주의 MCU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대교체의 시작

얼마 전 마블은영웅의 장례식 장면에 등장할 배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그리고 마블의 케빈 파이기 회장도몇몇 영웅들이인피니티 워이후 MCU를 떠날 것이라 말했다. MCU에서 퀵 실버(애런 존슨) 등이 죽은 예는 있지만, 아직 메인 영웅이 죽은 적은 없다. 새로운 영웅(스파이더맨, 블랙 펜서)과 기존 영웅의 이야기가 맞물리는 과도기에 접어든 MCU는 세계관을 우주로 넓히면서 영웅의 수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리하는 중이다.

그 과도기의 중심에 있는 <토르: 라그나로크>는 마블이 가는 방향을 미리 알렸다. 이번 편에서 노쇠한 영웅 오딘(안소니 홉킨스)이 물러나고 젊은 신 토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세대교체다. 토르가 한쪽 눈을 잃은 장면을 통해 토르는 오딘의 외형을 물려받았고 왕위를 계승하는 시련을 통과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케빈 파이기 회장이 그런 청사진(이미 2020년 계획까지 세워져 있다)으로 기존 영웅들이 메인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됐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나의 캐릭터로 끝없는 시리즈를 만든 ‘007’ 같은 영화와 비교했을 때 너무 이른 퇴장이다. 수익을 보장하는 캐릭터를 쉽게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으로도 보일 정도다. 이는 마블이 개별적인 영웅보다 MCU 그 자체를 하나의 시리즈로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로 보인다.

그래도 지켜낸 마블의 전통

MCU에서 3개의 시리즈가 나온 영화는 아이언 맨과 캡틴 아메리카다. MCU는 영화별로 다양한 영웅의 개성이 돋보이지만, 시리즈 전체로 보면 일관적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시리즈의 첫 편은 영웅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을 얻고 세상을 구하게 되는가를 볼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엔 더 강한 적이 등장하고 자신이 획득한 힘에 적응하며 더 강한 영웅이 돼가는 과정이 있다. 끝으로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전 시리즈를 통해 얻은 것들을 잃고 내면의 문제와 갈등하고 고민한다. 이 세 번째 편에서 영웅은 윤리와 철학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영화는 단순한 오락 이상의 것을 표현한다.

아이언 맨은 슈트를 잃고 맨 얼굴로 세상과 대면했고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어벤져스를 나와 자신이 가야 할 길에 관해 고민했다. 그리고 토르는 묠니르 없이 맨주먹으로 우주를 방황했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는 맨몸으로 적과 맞서며 자신이 망치의 신이 아닌, 천둥의 신임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물려받은 영토 아스가르드가 아닌 그 속에 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왕좌에 앉았다. 토르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모두 성숙한 영웅이 됐다.

이처럼 MCU는 지난 시리즈를 겪으며 마주한 약점과 딜레마를 세 번째 이야기에 던져 놓는다. 그러면서 영웅의 성장을 유도한다. 성장이라는 말보다 성숙이라는 말이 적절해 보인다. 앞 두 편에서 성장한 영웅은 세 번째 이야기에서 성숙한 영웅이 된다. 세 번째 시리즈를 앞둔 또 한 편의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도 유사한 구도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어벤져스 내부의 갈등이 커지고 각 영웅은 어벤져스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관해 고민하며 다시 성숙한 어벤져스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이지 않을까.

MCU는 관객의 취향과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반영해 변화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계획한 큰 그림과 주제를 일관적으로 추구하며 통일된 MCU를 운영한다. 이젠 평론가들의 평가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정도로 마블 스튜디오는 그들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를 높은 퀄리티의 재미있는 영화로 이뤄내고 있다. 그래서 마블은 믿고 선택할 기준, 하나의 장르가 됐다. 이들의 영화는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서 필수적으로 관람해야 하는 영화가 됐다. 그리고 아직 실망한 적이 없다. 마블이 계획한 청사진이 얼마나 더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여전히 마블이란 장르를 무한히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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