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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본 ‘야동’ 속 여성이 자살했다

  • 입력 2017.11.02 10:13
  • 기자명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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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 여자의 섹스 동영상을 다운 받았다. 온라인상에 여자의 신상이 알려지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여자의 동영상이 수천수만 건 다운로드되고, 수십 수백의 웹사이트를 돌아다니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웹사이트에서 동영상을 깨끗이 지워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수백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파괴된 일상 속에서 주위의 시선과 욕설을 견뎌내야 한다. 그럼에도 한 번 시작된 다운로드를 완벽히 멈출 순 없다. 어쩌면 여자는 자살할지도 모른다. 다운로드킬(DownloadKill)이다.

ⓒ부산경찰

부산경찰, Stop DownloadKill 프로젝트 시행

부산경찰이 지난 31일 공개한 영상 <불법촬영물(몰카) 범죄 근절 프로젝트 'Stop Downloadkill'>는 불법촬영물을 비판 없이 소비하는 다운로드 킬러들을 겨냥하여 만들어졌다.

▲31일 업로드된 부산경찰의 Stop Downloadkill 동영상

영상의 내용은 이렇다. 불법촬영물을 시청하려던 주인공 남성들은 부산경찰이 제공한 가짜 몰카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Stop Downloadkill”이라는 문구와 함께 경찰이 가짜 몰카를 제작하고 배포한 경위가 설명된다.

영상에 따르면 경찰은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파일공유 사이트에 가짜 몰카들을 실제로 업로드했다. 몰카 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사이트에선 지난 2주간 무려 26천여 명이 해당 영상을 다운로드했다. 물론 그들이 보게 된 건 불법촬영 영상이 아닌 경찰 측이 제작한 경고영상이었다.

몰카로 위장된 경고영상은 불법촬영 피해자의 자살을 암시하고, 그녀가 귀신이 되어 등장하는 연출을 통해 불법촬영물 시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경고영상이 업로드된 이후 해당 공유 사이트의 불법촬영물 유통량은 11%까지 감소했다.

다음은 부산경찰이 밝힌 <Stop Doenloadkill>의 제작배경이다.

피해여성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지만 몰카를 찍은 사람만 처벌받기 때문에 몰카를 보는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몰카시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피해여성들의 고통을 멈추고자 몰카 시청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프로젝트입니다.”

몰카는 디지털 성범죄, 보는 사람도 공범이다

불법촬영물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지난 926일 국무회의에선 불법 영상물의 신속한 차단, 몰카범과 영상물 유포자에 대한 처벌 강화, 불법촬영 기기에 대한 단속 등 관련 정책이 협의됐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도 디지털 성범죄를 소비하는 수많은 다운로더들을 잡아내진 못한다. 촬영자도 유포자도 아닌 다운로드 킬러들은 여전히 안전하게 영상을 다운받아 즐길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를 시청하는 작은 행위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부산경찰

부산경찰의 이번 프로젝트는 시장의 본질인 그 다운로드 행위에 대한 경찰의 첫 문제 제기인 셈이다. 특히 다운로드킬이라는 용어는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는 인격살인이라 외쳐온 여성단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여성계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소비가 사회적 살인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해 왔다. “몰카를 보는 사람도 찍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범이라 밝힌 부산경찰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영상의 촬영이나 유포를 넘어 영상 시청 자체도 범죄적 행위란 이야기다.

국산야동은 사라질 수 있을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불법촬영물은 대중에 의해 아무런 비판 없이 소비되고 있었다. 연인 간의 성관계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된 개인 간 성적 영상물’(리벤지 포르노)도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도 최근에 생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적인 영상물을 국산야동이라 부르며 마치 합법적으로 제작된 AV처럼 취급했다. 동의 없이 촬영되고 유포된 범죄적인 영상들이 취향(국산, 외래산)에 따라 소비되는 콘텐츠처럼 포장됐고, 그 포장은 무비판적인 소비를 더욱 부추겼다. 유머 게시판에서 유명한 '국산야동' 캡처본을 추억거리 삼아 유포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국산야동'도 '야동 순재' 같은 유행어와 같이 쉽게 소비됐다. ⓒMBC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본격적인 공론화 및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건 불과 2년 전인 2015년이다. 당시 국내 최대 음란물 유통지였던 <소라넷>에 대한 폐쇄 운동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의 촬영, 유통 및 소비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이 일어났다.

소라넷은 2016년 결국 폐쇄됐지만 불법촬영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텀블러 등 여러 파일공유 사이트에선 여전히 불법촬영물과 개인 간 성적 영상물이 넘쳐난다. 불법촬영 범죄도 2009(807)부터 지난해(5185)까지 542%의 증가율을 보였다. ‘국산야동시장에 대한 꾸준한 소비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그 거대한 시장을 없앨 수 있을까? 부산경찰의 인상적인 프로젝트는 실마리가 된다. 다운로드킬을 멈추기(Stop Downloadkill). 촬영과 유통을 방지하는 것과 별개로, 영상 소비 행위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인격살인임을 사회적으로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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