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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죽는' 방법

  • 입력 2017.11.01 16:11
  • 수정 2017.11.02 10:09
  • 기자명 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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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MB 댓글부대를 알았다면 단두대로 가겠다”

홍준표 “한강, 낙동강, 금호강, 형산강, 제주 앞 바다에 빠져 죽겠다”

정미홍 “탄핵이 인용되면 목숨을 내놓겠다”

박지원 “(금품수수가) 사실이면 목포역전에서 할복자살 하겠다”

‘죽겠다’며 징징거리는 정치인들 많아도 너무 많다. 목숨이 두, 세 개 붙은 것도 아닌데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죽지 못해 오늘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많다. 제발 이제는 정치하면서 목숨 좀 걸지 말자.

1. 단두대형: ‘썰전’이 세운 단두대

선임이 후임을 단두대에 세웠다. 전원책이 부르짖던 ‘올 단두대! 불어로 기요틴!’에 박형준이 서기 직전의 상황이다.

지난 8월, JTBC ‘썰전’에서는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 파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MB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관을 지냈으니 유시민 작가가 박 교수에게 ‘댓글부대’의 정체를 묻는 건 당연했다. 박 교수는 “(MB 정부의 댓글부대 운영을) 알았다고 밝혀지면 단두대로 가겠다”고 받아쳤다. 그것도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이다.

아는지 모르겠다. 단두대를 만든 자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그 주인공이 루이 16세라는 썰. 루이 16세는 단두대의 최종 디자인 감수자였다고 한다. 바로 이런 식. “지금 디자인으로는 중간에 목뼈가 걸려서 쉽게 안 죽어. 약간 기울어진 칼날로 바꾸는 거 어때?” ‘목을 효과적으로 잘 자를 수 있는’ 단두대를 탄생시킨 루이 16세는 그 단두대에서 ‘댕강’ 목이 날아갔다.

그렇게 말여요. ⓒjtbc

그러나 JTBC에서 ‘MB 댓글부대를 청와대가 운영했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점차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중이다.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초조한 상태에서 박형준 교수는 여전히 ‘썰전’에 출연 중이다. 이분은 ‘청와대 댓글부대 운영’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단두대보다는 검찰 출석을 먼저 해야 할 듯하다.

2. 익사형: 강은 무슨 죄

홍준표 “한강, 낙동강, 금호강, 형산강, 제주 앞 바다에 빠져 죽겠다”

선거 유세 가는 곳마다 빠져 죽겠다고 난리다. 강에서 뛰어내리겠다는 많은 정치인이 있었지만 이리 갈팡질팡 하는 분은 난생 처음이다.

이분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보수 우파들이 못 이기면 한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시작하더니, 대구에서는 낙동강, 영천에서는 금호강, 포항에서는 형산강에 빠져 죽겠다고 했다. 자기 혼자 뛰어내리기 서운했는지 포항에서는 “포항 시민도 뛰어 들어야 한다”며 물귀신 작전까지 펼쳤다.

수은 중독 조심.

그러나 강만으로는 그의 넓고 깊은 포부를 담아내지 못했다. 대선 레이스 막판, 그가 택한 장소는 제주 앞 바다였다. 제주시 쪽인지 서귀포시 쪽인지 구체적인 건 밝히지 않았다. 홍퐁당, 퐁듄표 씨가 어디에서 뛰어내릴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도 궁금해 죽겠다.

내일이면 “금강에서 빠져 죽겠다”, 모레에는 “섬진강에서 뛰어 내린다”며 징징거릴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강은 많고 많으니까. 그 카드도 다 쓰면 어디로 가냐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가면 된다. 그야말로 ‘종북’이다.

압록강(왼)과 두만강(오) 중 홍퐁당의 선택은?

2. 순장형: 리더의 운명을 함께 하는 사람들

이정현 “뜨거운 장에다가 손가락을 넣어서 장 지지겠다”

우리에게는 ‘순장’ 풍습이 있었다. 왕이 죽으면 뒤따라서 목숨을 끊거나 혹은 강제로 죽이는 괴이한 풍습이다. <삼국사기>에도 그런 기록이 있다. “고구려 동천왕이 죽자 가까이 모시던 신하들이 왕을 따라 죽어 함께 묻히려는 자가 많았다”

이정현도 사후 세계에서 주군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삶을 기대했나 보다. 탄핵 정국에서 ‘가결’ 쪽으로 분위기가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이정현은 자신의 손가락까지 내건 ‘쓴 소리’를 가감 없이 쏟아냈다.

“실천도 하지 못할 얘기들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예? 탄핵하자? 야당이 탄핵을 실천한다면 제가 장을 지질게요. 뜨거운 장에다가 손가락을 넣어서 장을 지질게요.”

엄밀히 말해서 '장 지진다'가 죽음으로 곧장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이 극대화된 형벌이나 고문으로 본다면 뭐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뜨겁게 끓인 장(醬)을 손톱 및 예민한 부위에 들이 붓는다고 상상해보라. '차라리 죽여주쇼!' 소리 지르기 딱이다.

장을 지지면 이렇게 됩니다.

이정현의 호언장담, 그 결과는? 국민들은 서로 집에 있는 간장, 된장, 쌈장을 내놓겠다고 쌍수를 들었다. 이정현의 ‘결단’을 도울 조력자들도 나타났다. ‘이정현 손 장 지지기 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이정현의 대학 후배들은 족발을 고추장 국물에 지지는 퍼포먼스를 하며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라며 친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정현은 “사실이 아닌 보도”를 했다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내뺐다. '내가 언제 장 지진다고 했냐'며 되레 큰 소리쳤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 요즘은 어디서, 뭘 하시는지…

정미홍 “탄핵이 인용되면 목숨을 내놓겠다”

다시 <삼국사기> 기록을 보자. 도무지 이해는 안 되지만, 당시에 하도 왕 따라 죽으려는 신하가 많다 보니 동천왕의 아들인 중천왕은 순장을 아예 금지해 버렸다. 그런데도 왕의 장례를 치르는 날이면 무덤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건 새 임금에 ‘줄’을 못 댄 이유인 것도 같지만 어쨌든.

정미홍, 이 분도 탄핵이 인용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큰소리 떵떵 쳤다. 이정현의 ‘장 지진다’보다 구체성은 떨어지나 그보다 더한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탄핵 심판은 각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만약 인용 된다면 제가 먼저 목숨 내놓겠다”

정미홍의 발언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검색어 1위, 암만 유명한 정치인도 해내기 어려운 일입니다만... 탄핵 인용 후, 논란이 재점화 되자 이 분도 이정현처럼 안면몰수하며 얼굴을 싹 바꿨다.

“누구 좋으라고 죽습니까?”

네? 아무도 좋은 사람 없어요.

3. 사무라이형: 할복만이 살길

박지원 “(금품수수가) 사실이면 목포역전에서 할복자살 하겠다”

박지원은 어디에서 죽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이 사람, 뚝심 있다. 장소는 오로지 목포다.자신이 ‘목포의 적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동 인구가 많은 목포 역 앞에서 할복 자살을 하겠단다.

때는 2012년 7월,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전 회장, 보해저축은행 오문철 전 대표 등으로부터 8천 만원을 수수했다는 혐의가 나왔다. 박지원은 무죄를 주장하며 ‘할복’ 카드를 꺼냈다.

“(금품수수가) 사실이면 목포역전에서 할복자살 하겠다”

다행히 할복은 면했다. 2016년 6월, 파기환송심에서 박지원은 모든 혐의를 무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법에서는 물증 없이 ‘진술’ 하나만으로도 유죄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와 무관하게 말이다.

그래서 였을까. 정치 9단 박지원 선생은 할복을 피하기 위한 미묘한 여지를 하나 남겼다.

할복 아니고 ‘활복’

자세히 보라. 할복이 아닌 ‘활복’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계속 살아 있겠다는 거다.

인명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했다. 일본 같으면 할복한다."

이분 특이하게도 자살을 권유했다.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으로서 친박 세력에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엄청난 직을 잃게 됐는데 그분을 따라다닌 사람들이 뭐하냐. 나 같으면 국회의원직 내놓겠다”는 의미다.

나 말고 얘네요!

의도는 좋다. 그런데 할복이라니. ‘제대로 책임지라’는 말을 뭐 그렇게 무섭게 하시나. 친박계에만 몰아붙일 일이 아니었다. 본인도 책임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아닌지.

4. 그냥 죽는다

김진태 “새누리호는 난파 직전이다. 난 그냥 여기서 죽겠다.”

깔끔하다. ‘~하면 ~하겠다’는 조건부도 아니다. 그저 비유일 뿐이라고 눙치지도 않는다. “그냥 여기서 죽겠”단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난 직후인 2016년 11월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한 발언이다.

“정신을 내주고 몸을 더럽혀서 무슨 후일을 도모하겠나? 그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중략) 새누리호는 난파 직전이다. 난 그냥 여기서 죽겠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대통령 나가라, 당 대표 나가라 하지 않고 배와 함께 가라 앉겠다.”

결과적으로 김진태는 끝까지 남았다. 탄핵 이후,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영장 청구를 결정하자 “궁궐에서 쫓겨나 사저에서 눈물로 지새는 여인에게 사약을 내리는 격”이라며 눈물을 찍어냈다.

그리고 이 사람만큼은 ‘죽지 않았지만’ 인정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결정적인 대사가 있었다. 언론 인터뷰 중 한 기자가 김진태에게 물었다.

“’박근혜’는 어떤 존재인가?”

짝사랑도 이만큼 절절할 수 없다.

“가슴에 묻어야 할 사람.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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