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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쫌!

  • 입력 2017.10.16 14:00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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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운전자들은 깜빡이(방향전환지시등)를 잘 조작하지 않는 풍조가 지속되고 있다.

언제부턴가 운전자들이 깜빡이(‘방향전환지시등’이란 복잡한 용어보다 운전자들이 스스로 만든 이 말은 얼마나 간명한가!)를 잘 켜지 않는다. 특히, 우회전할 때나 길가에 정차할 때 오른쪽 깜빡이 켜는 걸 생략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택시가 그러더니 요즘은 일반 승용차도 그걸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운전 기능을 익힐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이 깜빡이를 켜는 것이다. 앞뒤나 옆의 운전자에게 자신이 운전하는 차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구실을 하는 깜빡이를 제때 제대로 조작하는 것은 도로 안전을 위한 기본이다. 도로교통법에 그걸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도로교통법

제38조(차의 신호) ① 모든 차의 운전자는 좌회전·우회전·횡단·유턴·서행·정지 또는 후진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진로를 바꾸려고 하는 경우에는 손이나 방향지시기 또는 등화로써 그 행위가 끝날 때까지 신호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엔 배운 대로 깜빡이를 조작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걸 귀찮다고 여겨서인지, 굳이 상대 운전자에게 자신의 진행 상황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깜빡이를 통해 예고하지 않고 차로를 바꾸거나 우회전을 하고 정차를 해 버리는 앞차 때문에 뒤차는 적지 않게 당황하게 된다.

깜빡이 점등률 전국 66.5%

깜빡이를 조작하지 않는 경향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토교통부의 ‘2016년 교통문화지수’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66.5%에 그쳤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 10대 가운데 3대 이상이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운전한다는 얘기다.

그나마도 이는 과거에 비기면 얼마간 향상된 결과다. 지난 2009년 62%였던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2012년에 59%까지 떨어졌다. 이후 회복세를 보여 2013년 66%, 2014년 64.9%, 2015년 66%로 60% 중반대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체로 도시에서는 ‘인구 30만 미만 도시’(68.21%)가 ‘30만 이상 도시’(64.39%)보다 점등률이 높고 기초자치단체로 농촌의 군(71.27%)과 도시의 구(62.85%)를 비교하면 군 지역의 점등률이 높다는 점이다. 전국 평균은 65.47%다.

그러나 광역시도별로 비교하면 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상위 3개 시도는 세종(99.9%), 대전(83.4%), 충북(78.9%)이고 하위 3개 시도는 울산(44.6%), 부산(52.3%), 경북(57.8%)이다. 상위 시도는 충청도 쪽이고 하위 시도는 영남이다.

상·하위 3개 시도는 각각 도시가 두 군데, 도 지역이 한 군데다. 내가 사는 경북은 하위 3위다. 그동안 운전을 하면서 내가 목격했던 깜빡이 미조작 사례가 내게만 보였던 사례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고장은 왜 전국 평균(65.47%)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운전 문화도 '각자도생'으로 바뀌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딴 게 1991년이니 벌써 26년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본격적인 마이카 붐이 오기 전이다. 89년도에 재직하던 학교는 교직원이 50명이 넘었는데 자기 차가 있는 이는 한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처음 운전한 차는 12인승 승합차였고, 두 번째는 승용차였다. 물론 둘 다 이른바 ‘스틱’ 차였다. 그 무렵만 해도 차가 요즘처럼 많지 않아서 그랬던지 운전자들끼리는 일종의 동지 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은 길가에 고장 난 차가 있으면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서 상황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하던 때였다. 요즘과 달리 교통위반이 잦은 길목에는 경찰이 잠복 단속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단속 카메라가 출현하기 이전이다.

이때 단속 경찰을 지나쳐 온 운전자들은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들을 향해 전조등을 번쩍번쩍해 단속 상황을 경고해 주는 게 불문율이었다. 당연히 경고를 받은 운전자는 손을 흔들어 감사의 뜻을 표하기 마련이었고.

외진 지역에서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주변 운전자가 자기 차 보닛을 열어 점프선으로 충전해 줘 곤경을 벗어난 기억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요즘처럼 긴급출동 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운전자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풍조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사람들은 이제 경찰의 단속을 경고해 주지도 않고 길가에 고장 나 서 있는 차를 흘깃 보고 지나쳐 버린다. 예외로 도움을 주려고 차를 세웠다가 뒤따른 차량에 치여 희생되는 선의의 운전자들 얘기는 참 가슴 아프다.

▲ 단속카메라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만 해도 운전자들끼리 동지의식으로 서로 협조하는 문화가 있었다.

깜빡이 미점등은 이런 변화의 일부로 이해될 수 있을 듯하다. 이제 사람들은 상대 운전자에게 운전 관련 정보를 나누는 따위의 배려를 베풀지 않는다. 운전자 각자가 알아서 운전하고 만약에 분쟁이 생기면 보험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운전 관련 상황을 녹화하는 블랙박스의 등장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고의든 실수든 상대 차량의 운전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굳이 깜빡이를 작동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운전은 사람이 한다

대신 운전자들은 블랙박스에 찍히는 상대 차량의 방향지시등 미점등을 신고해 버린다. 이 방향지시등 미점등 신고는 해마다 늘고 있는데, 2015년의 이 미점등 공익신고는 10만9506건으로 전체의 16.7%를 차지했다. 이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로 2016년에는 20.7%(22만 5417건), 2017년 1~8월은 25.3%(17만 2852건)를 기록하고 있다.

지시등 미점등은 도로교통법 제38조 제1항 위반(차의 신호 위반-방향전환·진로 변경 시 신호 불이행)으로 범칙금 3만 원을 내야 한다. 문제는 3만 원의 범칙금이 아니다. 같은 운전자끼리 배려하는 운전이 실종돼 버린 상황, 자신의 안전을 자신이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풍조다.

26년 전 처음으로 운전을 하던 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자동차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운전을 도와주는 장치들도 날이 갈수록 는다. 뒷날 무인자동차가 등장해 그게 일반화되면 어떨지 모르지만 운전은 사람이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 길에 나온 차들이 꼬이지 않고 제 길을 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교통 규칙이고 그걸 지켜서 안전한 자동차 문화를 이루어내는 것도 사람의 몫이다. 사소한 듯하지만 상대 운전자에 대한 배려가 도로 위 교통안전을 담보하는 핵심이라는 걸 확인해 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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