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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연어 무한리필집은 왜 사라졌을까?

  • 입력 2017.10.13 12:28
  • 수정 2017.10.13 17:50
  • 기자명 김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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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만약 당신이라면, 이 사업 할까요?

당신이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하자. 어느 날 A상품의 수입업자와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최근 A상품의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고 하면서, 가게를 차려서 저렴하게 팔면 장사가 잘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알아보니 가격이 크게 떨어지긴 했다. 게다가 A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므로, 저렴하게 팔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제법 수익을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되는 사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노파심에 A상품의 가격변동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조사해보니 다음과 같은 그래프가 나왔다. 현재 가격은 최고점 대비 37% 이상 하락한 상태였다. 당신이라면 이 상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사업에 뛰어들겠는가?

당신의 결정은 무엇인가?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사업에 뛰어들지 않기로 결정할 것이다. 적어도 그래프 상으로 보기에는 A상품의 가격은 장기적으로 상승 추세에 있으며, 지금이 예외적으로 낮은 상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저렴할지 몰라도, 가격이 정상 수준을 회복하면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현실에서는 이 사업에 뛰어든 사람이 매우 많았다. A상품은 바로 연어이다.

연어 무한리필점은 왜 갑자기 증가했을까?

ⓒ타누끼

2015년 하반기부터 엄청나게 늘어났던 연어 무한리필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연어는 특유의 기름지고 부드러운 단맛 때문에 회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매우 좋아하는 횟감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연어 선호도가 이처럼 높은데, 어느 날 무한리필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운 가게가 등장했다. 그것도 매우 저렴한 1만 원 초중반대의 가격에 말이다.

2015년 하반기 연어 무한리필점들은 큰 인기를 얻었고 SNS에도 자주 오르내렸다. 당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연어의 질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먹거리 X파일>에서는 무한리필 연어가 노르웨이산 양식이며, 양식 연어가 자연산보다 지방이 많다는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 방송이 겨우 지방이 많다는 것밖에 지적 못한 것은 그만큼 안전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미와 EU의 식품안전규정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까다롭다.

그렇다면 연어 무한리필점은 어째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 국제 연어시장에서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양식 연어의 생산량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자연산 연어의 생산량을 추월했다. 2015년 전 세계 자연산 연어의 연간 생산량은 82만 톤이며, 양식 연어는 220만 톤에 달했다.

그리고 전 세계 양식 연어 생산량의 50%를 담당하는 나라가 바로 노르웨이다. 그래서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의 가격은 국제 연어 가격의 표준지표로 쓰인다. 국제 양식 연어의 가격은 2014년 2월에 최고점을 찍었다가 하락하여 2015년 1년 동안은 kg당 5달러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2015년에 연어 무한리필점이 폭발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이토록 낮은 가격에 있었다.

2015년, 연어는 왜 저렴했을까?

kitchfix.com

양식 연어의 가격은 2015년에 왜 이렇게 하락했을까? 수요/공급의 법칙을 생각하면 연어 공급이 늘었거나 수요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연어 생산량을 살펴보면 2014년에 폭락을 부를 만큼 공급이 늘어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해답은 역시나 수요에 있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지역을 강제로 병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EU 국가들은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했고, 이에 러시아는 EU 국가들의 식품 수입을 금지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런데 러시아는 노르웨이 연어의 최대 수입국으로 연어 생산량의 10%를 소비한다. 그러므로 가격이 순식간에 폭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어 무한리필점을 오픈하는데 이런 배경정보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연어 가격의 추이를 살펴봤다면 그것이 가지고 있던 위험에 대해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연어 무한리필점이 우후죽순 들어서던 2016년 2월에 조회했던 가격 추이이다.

가격 하락이 간혹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과거의 데이터만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는 없다. 하지만 분명 장기추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당시 개인 블로그에 이 그래프를 올리며, 연어 무한리필점들이 위험하다는 글을 쓴 바 있다. 그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다음은 2017년 3월까지의 연어 가격 추이를 추가한 그래프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 12월을 기점으로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고, 2017년 1월에는 역대 최고치인 킬로그램당 8.6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노르웨이가 수출을 다변화하면서 판로를 다각화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수출 비중이 상당히 증가했는데, 우리나라의 연어 무한리필 열풍도 일부 기여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을 통해 우회 수입함으로써 전 세계 연어 소비량은 오히려 더 크게 증가했다. 그래서 2015년의 패닉을 딛고 가격이 상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속 가능성 예측은 필수

연어 가격이 이렇게 급등하는데, 무한리필점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소비자 가격도 올랐다. 서울 시내를 기준으로 2015년 하반기에 15,000원 이내로 부담 없던 가격이 1만 원 후반에서 2만 원 초반으로 크게 상승했다. 그리고 2016년에 그 많던 가게가 하나씩 사라져갔다.

자영업은 하루 장사하고 그만두는 사업이 아니다. 본전이라도 건지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은 해야 한다. 보통 1~2년 정도가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뽑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연어 무한리필점 사업이 지속되려면 연어 가격이 2015년의 저렴한 수준에서 중기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래프에서 보듯, 그 좋은 시절은 지속될 가능성이 낮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사업이 뜨고 사라졌다. 소비 문제가 아니라 공급 문제 때문에 말이다.

사업을 하기 전에 구글 검색을 통해 그래프만 확인했더라도 연어 무한리필점을 쉽게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업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속 가능성이 얼마인지 예측해야 한다. 연어 무한리필점처럼 예외적인 조건으로 인해 가치가 생긴 사업은 그 조건이 사라지는 순간 사업가치도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바비님이 직접 쓴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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