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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항상 거북이에게 엿을 먹지

  • 입력 2017.10.02 18:42
  • 기자명 여강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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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 루마니아)는 한 사회의 지식인의 역할을 ‘잠수함의 토끼’로 비유했다. 자신의 잠수함 근무 시절의 경험담을 토대로 당시 잠수함은 산소측정기가 없어 산소 부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토끼를 잠수함에서 길렀는데 토끼가 졸면 산소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즉, 한 사회에서의 지식인은 세태에 가장 민감한 자로 그 사회의 진보는 깨어있는 지식인의 적극적인 현실 비판에서 시작된다는 뜻이겠다. 하기야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을 보면 주변 상황에 민감한 듯 보이기도 한다.

동양의 십이지신의 네 번째 동물 토끼는 연약해 보이지만, 또 꾀도 많아 보인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 중의 하나로 민담이나 소설 등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중국 달 탐사 로봇 이름이 ‘옥토끼’인데 중국 전설 속 달의 여신 ‘창어’와 함께 달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고전 소설에도 토끼가 등장한다. <별주부전>에서 토끼는 꾀 많은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본명 Charles Lutwidge Dodgson, 1832~1898, 영국)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앨리스라는 소녀가 꿈 속에서 토끼굴에 떨어져 이상한 나라로 여행하면서 겪는 신기한 일들을 그리고 있다.

▲ 토끼와 거북이

한편 토끼가 인간과 매우 친숙한 이미지라면 거북은 조금은 신비스럽고 신화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십장생의 하나로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기도 하고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에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겠다’는 ‘구지가’가 등장하는데 고대 국가에서 왕을 출현을 노래하는 대목이다. 왕을 추대할 때 갑골로 점을 치는 과정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빠름과 느림, 친숙함과 신비스러움. 서로 다른 이미지의 토끼와 거북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솝(Aesop, BC 620?~560?, 그리스)의 우화집 <이솝 우화>일 것이다. 토끼와 거북의 경주 이야기로 거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른 토끼가 자만한 나머지 경주에서 진다는 이야기로 반대로 보면 거북의 성실하고 우직함이 잔꾀와 자만을 이긴다는 교훈일 것이다. 다소 생소하고 생경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 민담에도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고 한다. 동물의 낙원 아프리카인 만큼 어쩌면 생소하고 생경하다는 말은 선입견과 편견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 중국 신화 속 옥토끼

남아프리카 민담에 따르면 오래 전 정글에 물이 심하게 부족한 적이 있다고 한다. 모든 동물이 물이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물거북만이 성공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토끼는 나몰라라 태연하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동물들은 이런 토끼를 비난하다 급기야는 토끼가 자신들의 물을 훔쳐갈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일 밤 순번을 정해 물웅덩이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첫 날은 하이에나, 둘째 날은 사자가 물웅덩이를 지켰지만, 토끼의 꾀를 당해내지 못했다. 토끼는 둘 다 속이고 호리병에 물을 훔쳐갔다고 한다.

셋째 날은 거북이 보초를 서겠다고 자청해서 나섰다. 거북이는 등껍질에 끈끈이를 바르고 물웅덩이 바닥에 몸을 숨겼다. 이 날도 어김없이 물을 훔치러 온 토끼는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물웅덩이에 뛰어들었다. 순간 토끼의 발바닥이 거북이의 등껍질에 달라붙었고 날이 밝을 때까지 뗄 수가 없었다. 해가 밝자 다른 동물들이 와서는 이 상황을 보고는 토끼를 묶고 벌을 주었다고 한다.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이’처럼 달리기 시합 전설도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 걸쳐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북이의 제안으로 멀리뛰기 시합이 있었다. 토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웃었지만, 시합에는 응하기로 했다. 시합이 있기 전 날 거북이는 부인에게 시합 장소 가까운 덤불 속에 숨어있으라고 했다. 시합 당일 토끼는 가볍게 껑충 뛰었다. 거북이는 당황하지 않고 헛기침을 하며 자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는 덤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 때 거북이 부인이 토끼보다 훨씬 앞서서 나타났다. 남편 거북이와 아내 거북이를 구분할 수 없었던 토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북이가 뛰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거북이는 토끼의 눈이 느려서 보지 못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했다.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한 토끼는 결코 거북이에게 질 수 없는 달리기 경주를 제안했다. 거북은 그날은 너무 지쳐 다음 날 하자고 제안했고 집으로 가서는 온 가족을 불러모았다.

거북이는 밤새도록 달리기 경주할 길을 따라 가족들을 배치했다. 아마도 방식은 멀리뛰기에서와 같았다. 드디어 달리기 경주가 시작됐고 토끼가 훨씬 앞서기 시작했다. 당연히 게임이 안될 거라 생각했던 토끼는 뒤를 돌아보며 거북이를 불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앞에서 ‘나 여기 있어’ 하고 거북이가 대답했다. 토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경주 내내 계속됐다. 짐작하다시피 토끼는 거북이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중간중간 거북이 가족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국 토끼가 헐떡거리며 결승 지점에 도착했을 때 거북이는 이미 도착해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이 빠른 토끼의 오만이 느린 거북이의 성실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아프리카 민담에서의 ‘토끼와 거북이’는 빠르고 영리하지만 충동적인 사람과 느리고 우직하지만 사려 깊은 사람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물론 서로의 장단점은 있을 테지만 말이다.



<참고자료>

아프리카 신화/지오프레이 파린더/범우사

신화와 전설/필립 윌킨스/21세기북스

포털 사이트 지식 및 뉴스 검색



필자 여강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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