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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박? 서독처럼 안하면 예멘 꼴 된다

  • 입력 2014.03.28 13:36
  • 수정 2014.03.28 17:11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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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 종식되며 네 개의 점령지역으로 분할됐던 독일. 연합국 점령지역은 독일연방(서독), 소비에트연방 점령지역은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정부가 들어서며 분단시대를 맞는다. 45년 지난 뒤 1990년 10월 3일 동독의 다섯 개 주가 서독에 편입되면서 통일독일 시대를 열었다.

메르켈, ‘통일대박’ 얘기하자 뼈 있는 충고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통일을 외치며 독일을 방문했다. 독일 통일을 벤치마킹해 ‘통일대박’을 이루겠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통일한국’이 갖게 될 장밋빛 미래를 강조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통일을 배우러 왔다는 박 대통령에게 뼈 있는 말을 건넸다. ‘북한이 보이지 않는 일방적 통일’에 대한 경고다. 박 대통령과 한국정부를 향해 선 굵은 충고를 한 것이다.

“(통일 당시) 독일은 (상대방의) TV도 볼 수 있었고 서로의 삶에 가까웠지만 남북한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통일이 되면) 모든 상황이 바뀐다.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하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도 필요하다.”

통합의지 실천 없는 '통일대박'은 신기루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시도 때도 없이 종북몰이에 열중하는 정부여당이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금과옥조다. 평화적 통일은 남한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있다. 평화 통일의 반쪽 몫은 북한이다. 때문에 통일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통합 의지를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다.

서독은 일찌감치 ‘통합의지’를 실천하는데 정성을 다했다. 동독이 어떻게 나오든 크게 괘념하지 않고 통일을 향한 의지를 하나씩 현실화 했다. 1969년 빌리 브란트 수상은 미국과 서독내 보수층의 이념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독과 관계를 개선하는 등 적극적인 유화정책을 폈다. 폭넓은 대화와 화해 제스처로 이념 대립을 극복해 나갔다.

서신교환과 통행이 허용됐고, 1973년 들어서는 서독 TV방송을 동독에서도 시청할 수 있었다. 각기 정부로부터 통행허가를 받아 서독 사람이 동독을, 동독 사람이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 TV방송은 서독과 동독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문화와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는데 방송이 미친 영항은 매우 컸다.

통일-통합 모두 일궈낸 독일, 그 비결 배워야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경제적 격차도 남북한과 비교할 때 그다지 크지 않았다. 서독이 동독과 적극적인 경제 교류를 지속한 결과였다. 서독은 동독에게 늘 ‘푸근하고 인심 좋은 형님’처럼 행동했다. 그 결과 동독의 경제력은 유럽 공산권 국가 중 1위를 지킬 수 있었다. 통일 당시 동독의 주민소득은 서독의 1/3 수준이었지만 현재 남북한 주민 소득 격차는 18배가 넘는다.

<붕괴된 베를린 장벽. '통일대박'이 아니라 통합의지의 꾸준한 실천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잦은 접촉과 대화, 인적·문화적 교류에 경제적 협력이 더해지며 이념 갈등과 소득 격차가 줄어들면서 동독에 변화가 찾아왔다.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라는 구호가 시위대의 입을 통해 확산됐다. 결국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양쪽 독일은 통일조약에 서명했다.

서독은 ‘통일대박’을 외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동독과의 통합의지를 차분하게 실천에 옮겼다. 이것이 통일과 통합을 모두 일궈낸 비결이다.

통일 당시 동서독, 현재 남북한과 천양지차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하는 방식은 서독과 완연히 다르다. 엄연히 북한이라는 파트너가 있는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북한을 단지 흡수돼야할 대상으로 보려한다. 이런 식이라면 통일은 가능할지언정 통합은 어렵다. 외적인 통일이 내적인 통합으로 이어지려면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또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도 들어간다. 독일 통일 비용은 약 1800조원으로 추산된다.

독일 통일 당시 동서독간 경제적, 문화적, 이념적 차이는 현재 남북한의 그것에 비해 훨씬 좁혀진 상태였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교류는 커념 전쟁 불사 운운하는 남북한과는 천양지차였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상당한 갈등과 진통을 겪어야 했다.

서독처럼 해야 한다. 통합의지를 실천에 옮길 프로그램 없이 섣불리 ‘통일대박’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를 보면 불안감이 태산처럼 밀려온다. 이 상태로 간다면 실패한 통일인 예멘의 경우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통일된지 13년 만에 다시 분리독립 외치는 남예멘 지역 시위대>

서독을 배우고 실천하지 못하면 예멘 꼴 난다

예멘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예멘 아랍공화국(북예멘)과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선 예멘 인민민주공화국(남예멘)으로 분리됐다가 1990년 남북간 합의로 통일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섣부른 통일은 국민들을 내전으로 내몰았다. 통일내각 구성과 권력 분배를 놓고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북예멘이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워 남예멘 수도를 점령함으로써 내전은 일단락되고 외견상 통일이 이뤄진 듯했지만 다시 분단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남예멘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분리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볼프강 쇼이블레, 로타어 데메지에르 등 독일 통일 주역들을 불러 통일에 대한 ‘과외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박 대통령의 북핵포기 발언과 영변 핵시설을 체르노빌과 비교한 것을 놓고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막말을 쏟아냈다. 남한 통일부 또한 강한 어조로 북한을 비난했다.

북한이 “촌스러운 행보” “무지와 무식” “방구석 아낙네” 등 원색적 비난을 퍼붓자 통일부 대변인은 “무례한 위반 행위를 하지 않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맞받아쳤다. 툭하면 욕설과 막말이 오고가는 사이가 남북한이다.

이런 상태에서 외치는 ‘통일대박’은 전혀 감동이 없다. 마치 돼지발톱에 칠해놓은 메니큐어 같다. 통일의지의 실행과 실천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통일대박’의 꿈은 예멘의 경우처럼 불행한 역사의 반복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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