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서해순을 겨냥한 이상호 기자의 위태로운 단정

  • 입력 2017.09.29 13:38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TBC

상황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25일 서해순 씨가 故 김광석, 서연 부녀에 대한 타살 의혹에 대한 반론(좀 더 정확히는 서연 양의 사망신고를 늦게 한 부분에 대한 해명에 포인트가 맞춰졌지만, 실질적인 의혹은 타살 여부에 맞춰져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제기를 위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인터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후로 논란은 더욱 커졌고 의혹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관련 기사: ‘뉴스룸’ 출연한 김광석 부인 서해순, 논란은 더 커졌다)

한편, 故 김광석 씨가 사망했을 당시 시신을 부검했던 권일훈 권법의학연구소장(전 국과수 법의관)은 “말도 안 된다”며 타살 의혹을 (별다른 의학적 설명 없이) 일축하고 나섰다. 지난 28일 JTBC <썰전>도 이 사건을 다뤘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이목이 쏠렸다는 방증일 것이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해명하지 못한 서해순 씨의 자업자득이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의혹만으로 한 사람을 마치 명백한 범죄자인 양 몰아세우는 사회적 분위기는 광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사건의 중심, 발화점에 go발뉴스의 이상호 기자가 있다. 그는 SBS 수습 기자 시절이던 21년 전 故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썼다가 데스크로부터 물을 먹었다고 한다. 한번 물었다 하면 놓지 않는 기자 근성을 지닌 이상호 기자는 끈질기게 관련 자료를 모아왔다. 故 김광석의 가족 및 주변 인물들로부터 진술을 확보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광석>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김광석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당했다'는 의혹(확신)을 제기했다.

이상호 기자는 지난 20일 자신의 SNS에 “진실을 어둠 속에 묻을 순 없습니다. 김광석-서연 부녀 타살 의혹 재수사 요청하는 ‘고발장’을 내일(21일) 11시 서울지검에 접수하고 직후 서해순 씨 출국금지 촉구하는 기자회견 갖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의혹을 진실과 동의어로 사용했다. 짐짓 타살 의혹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는 김광석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그 살인범으로 故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를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진실이라 이름 붙인다. 과연 그럴까. 영화를 본 다수의 사람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살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담겨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하물며 서해순 씨를 살인범이라 지목하는 건 얼마나 앞서 나간 추론이겠는가. 당시 서해순 씨의 진술에 이상한 부분이 있고 딸 서연 양의 사망신고를 늦게 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것이 살인과 곧바로 연결되진 않는다. 설령 그에게 내연남이 있더라도 이는 마찬가지다.

ⓒMBC 노조

이상호 기자는 유명 언론인이다. 우리 사회에 언론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그리 많진 않다. 손석희, 주진우, 김주하 등과 함께 이상호라는 이름이 앞 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유명세와는 별개로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나뉜다. 기자로서 그가 보여준 집념과 노력, 혹은 ‘곤조’에 환호하고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가령, 삼성 X파일 사건은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2011년 12월 전두환 씨 자택 취재 사건으로 MBC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한 일은 그에게 ‘진정한 언론인’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또, 세월호 사건 당시 현장을 발로 뛰며 대안 언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이상호 기자가 언론인으로서 우리 사회에 세운 공이 혁혁하지만, 한편으론 기자의 역할을 벗어나는 등 저널리즘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들고 과도한 영웅주의에 빠져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세월호 침몰 현장 생중계 도중, '최대 규모의 수색 작업'이라는 대목에 분개해 연합뉴스 기자를 향해 “개XX야. 너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라며 욕설을 내뱉는 행동은 자신도 ‘모범적인 행동이 아니었다’고 반성했을 만큼 지나친 면이 있다.

故 김광석 씨의 죽음과 관련해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서해순 씨를 살인범으로 지목한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기자로서 의혹을 제기할 수 있고 그와 관련해 팩트를 모아 기사로 내보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능력이 된다면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해순=살인범’이라는 등식을 성립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적정선을 지키며 보도해야 한다. 서해순의 진술과 행적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고 심지어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위의 등식을 증명하진 않는다.

서해순 씨가 남편의 죽음 이후 20년 동안 저작권료를 10억 원 상당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살인을 설명하진 않는다. 또, 서해순 씨가 남편과의 불화를 겪던 중 남편의 친구와 눈이 맞았고 현재 그와 사실상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또, 서해순 씨의 오빠가 전과 13범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그 사실이 살인과 곧바로 연결될 수는 없다. 여전히 우리는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에서 이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그 어떤 단정도 섣부르며 위험하다.

ⓒtvN <아르곤>

“기자는 영웅이 돼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영웅의 말을 믿고 싶어하니까요. 저는 그저 제가 틀렸다는 걸 말하겠다는 겁니다. 저도 틀리고 다른 기자 누구도 틀릴 수 있다는 걸 말하겠다는 겁니다. 제가 틀리는 바람에 세상에 해를 입혔다고 그러니까 당신들은 뉴스를 믿는 게 아니라 판단해 달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는 겁니다."

지난 26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이자 백미는 김백진 앵커(기자)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대목이었다. 미드타운 쇼핑몰 부실공사와 그 배후를 캐던 김백진은 3년 전 보도했던 착한병원 시민단체 사건이 미드타운 쇼핑몰 건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아내의 죽음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제대로 된 취재를 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친 보도를 했다. 그로 인해 미드타운 비극의 싹이 자라났다는 걸 깨닫고 처절히 반성한다.

“내가 보고 싶은 진실만 본 거야. 기사라는 새끼가 사적인 감정으로 보도를 한 거야. 내가 미드타운 세우는 데 일조한 거야.” 아르곤의 김백진은 참된 언론인, 우리가 희망하는 언론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고 설령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오가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모든 언론인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감정에 치우친 기사가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기사가 아니라 오로지 팩트에 입각한 공정한 기사만이 진리임을 설파한다.

특히 ‘기자는 영웅이 돼선 안 된다’는 말은 더욱 뼈저리게 다가온다. 우리는 뉴스를 믿는 객체가 아니라 뉴스를 판단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기자를 믿는 게 아니라 팩트를 신뢰해야 한다. 이상호 기자의 의혹 제기 자체에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 그의 의혹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명백한 증거 없이 파편화된 조각들을 제시하며 섣부르게 의혹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믿지 말고 판단하자. 또, 영웅이 되려는 기자를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자. 그 정도면 충분하다. 김백진이 보낸 조언을 잊지 말자.


필자 버락킴너의길을가라

저작권자 © 직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