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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번 버스, 분노의 화살은 누구에게 향했나

  • 입력 2017.09.16 10:01
  • 수정 2017.09.16 10:17
  • 기자명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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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역을 지난 240번 버스에서 5살로 보이는 아이가 내린 뒤 미처 내리지 못한 엄마가 울부짖으며 하차를 요청해도 버스 기사는 그대로 출발했다”

타깃 1. 240번 버스 운전기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글은 순식간에 주요 커뮤니티와 각종 SNS에 공유되었습니다. 대중의 화살은 240번 버스 운전기사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혼자 놔두고 갈 수 있냐?"

"네가 사람이냐?"

"우리나라 버스 운전기사들 진짜 노답이다"

ⓒYTN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비판해도 늦지 않다는 소수의 '신중론'은 성난 민심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강경 또 강경한 여론. 그렇게 모든 화살은 240번 버스 운전 기사에게 향했습니다. 이때 언론은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기사 잘못이다’는 입장의 기사를 내보냈고요. 성난 대중들은 청와대에 청원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타깃 2. 아이의 엄마

첫 번째 타깃이었던 버스 운전기사의 딸과 버스 손님들의 목격담이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당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외부 CCTV가 공개되면서 타깃이 훅 바뀌었습니다. 7세 아이(실제 확인 나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아이의 엄마에게로 화살이 향했습니다.

"아이가 저렇게 내릴 때까지 아이 엄마는 뭐했나?"

"저 사람도 결국 '맘X이었네"

"왜 내부 CCTV 공개 안 하나? 뭔가 숨기고 싶어서 그런거 아닌가?"

아이의 엄마는 “버스 기사와 업체의 사과를 받고 싶을 뿐 더는 논란이 확산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스 내부 CCTV 영상 공개를 거부했지만, 아이의 엄마를 향해 모든 비난은 쏟아졌습니다.

타깃 3. 처음 글을 쓴 사람

외부 CCTV가 공개되고, 내부 CCTV까지 확인한 서울시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약 16초간 정차하는 사이에 아이가 혼자 내렸고, 어머니가 하차를 요청했을 때에는 해당 버스가 이미 건대 입구 사거리를 향해 4차로에서 3차로 차선으로 변경한 상태여서 버스 기사는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음 정류소인 건대 입구에서 하차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번에 모든 화살은 온라인 게시판에 처음으로 글을 올린 이로 향했습니다. 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올려서 문제를 일으켰냐는 반응입니다. 대중들은 그에게 다시 화살을 쏘면서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채널A

240번 버스 논란의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4세 아이 → 7세 아이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내렸다 → 다른 아이와 놀다가 스스로 내렸다

아이가 내리자마자 버스가 즉시 출발 → 1~2초 정도 열려 있다가 출발

정류장이나 이동했다 → 20초가량 지난 뒤 다음 정류장에 정차했다

문제는 이슈가 터진 후, 대중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정확한 상황이나 버스 운전기사 혹은 엄마가 처했을 문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지요. 그저 누군가를 싸잡아 비난하는 데에 열 올렸습니다.

이번 이슈가 된 장소에서 버스는 4차선에서 정차해 승객이 타거나 내리면 바로 3차선으로 진입을 해야 합니다. 4차선은 우회전 차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문을 닫고 버스정류장을 떠나면 절대로 누군가를 하차할 수 없습니다. 이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당시는 퇴근 시간인 오후 6시 30분경으로 버스 내부가 매우 혼잡한 시간입니다. 건대입구역 혹은 정류장을 이용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그곳은 매우 복잡합니다. 버스 기사 입장에서는 아이가 엄마와 떨어진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운전기사를 향해 욕설을 했다거나 파출소에 가서 사법 처리를 요구하거나 신고 접수를 한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대중들은 그저 ‘누군가의 글’ 하나만 보고, 이 난리를 친 것입니다. 이 일이 크게 이슈화된 것도 당사자가 아닌 사건을 알게된 네티즌들이 청와대, 서울시 등에 고발하면서 문제는 확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마녀사냥’에서 가장 앞장선 건,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받아쓰기’한 언론에 있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었다고 하면 그것을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니 일단 보도하자’는 태도입니다. 기사 말미에 네티즌들의 반응을 붙여가면서 말입니다.

설사 240번 버스 사건이 애초 글에 쓰인 것처럼 버스 기사의 잘못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버스 기사 아저씨와 아이 엄마 간의 문제입니다. 대중들이 나서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닙니다. 그토록 '오지랖 넓음'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비판대상이 되는 모습입니다. 누가 이번 사건에 개입할 명분을 줬고, 누가 이번 사건의 대상을 비판할 자격을 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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