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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서 청소부를 하면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

  • 입력 2017.09.15 14:36
  • 수정 2017.09.15 14:54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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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게일 에반스 씨와 마르타 라모스 씨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이윤을 많이 내는 기업의 사무실 청소하는 일을 했다는 점입니다.

1980년대 에반스 씨는 로체스터에 있는 이스트먼 코닥 건물의 326동 건물 청소를 맡았습니다. 라모스 씨는 지금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사무실을 청소합니다.

마르타 라모스(왼쪽)과 게일 에반스(오른쪽) ⓒ뉴욕타임스

두 사람은 약 35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에서 일하는 청소부였습니다. 그 사이 미국 기업들이 계명처럼 삼게 된 경영 철학이 있다면 “핵심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위탁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더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구조를 간소화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윤을 주주에게 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불평등은 심화됐습니다. 표면적으로 국가 경제가 큰 문제 없이 굴러가는 상황에서도 특히 미국의 서민, 노동자 계층이 경제적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라모스 씨가 애플 건물을 청소하고 받는 돈은 시급 16.6달러(한화 약 18,500원)로, 물가 인상을 감안하면 35년 전 에반스 씨가 코닥 건물을 청소하고 번 돈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질 급여가 비슷하다는 것 말고는 두 사람이 처한 환경 사이에 공통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에반스 씨는 코닥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코닥 직원이었던 것이죠. 1년에 4주 이상 유급 휴가를 쓸 수 있었고 일과 학업을 병행할 경우 학자금 지원도 받았습니다. 매년 3월 지급되는 보너스도 꼬박꼬박 나왔죠. 그녀가 청소하던 건물에 있던 부서가 구조조정으로 사라지자 코닥은 그녀에게 회사 내에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줬습니다. 필름을 정해진 길이대로 자르는 일이었죠.

라모스 씨는 애플 건물을 청소하지만, 애플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는 아닙니다. 라모스 씨를 고용한 건 애플에 건물 청소 업무를 위탁받은 업체죠. 애플에서 일한 지난 몇 년간 휴가는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휴가를 가면 고스란히 급여가 줄어드니 엄두도 못 냈죠. 보너스는 물론 보너스 비슷한 것도 없고 당연히 애플에 고용된 것이 아니니 애플 건물 안에서 다른 일을 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이렇게 근무 조건만 봐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에반스 씨와 라모스 씨에게 회사가 준 기회를 보면 더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에반스 씨는 코닥에서 청소부 일을 하며 야간대학에서 틈틈이 컴퓨터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에반스 씨의 상사는 다른 직원들에게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사용해 재고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에반스 씨에게 부탁했습니다. 1987년, 마침내 학위를 마친 에반스 씨는 코닥 IT 부서로 승진, 발령됩니다.

10년도 되지 않아 에반스 씨에게는 코닥의 CTO(최고 기술담당 이사)라는 직함이 붙습니다. 이후 에반스 씨는 코닥에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다른 유수의 회사에서 임원직을 맡습니다. 라모스 씨가 꿈꿀 수 있는 승진이란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청소부 여러 명을 관리하는 선임직으로, 그 자리에 오르면 시급을 50센트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가능성이 열려있지 않습니다.

온종일 건물을 쓸고 닦고 광낸 건 에반스 씨와 라모스 씨가 다르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라모스 씨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1987년 코닥 vs 2017년 애플

ⓒ뉴욕타임스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20세기를 풍미한 기업을 꼽을 때 이스트먼 코닥은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사진 필름과 사진기를 비롯한 여러 제품을 팔았죠. 코닥의 창업주들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부자가 됐습니다. 동시에 코닥은 임원급, 기술 인력을 비롯한 다양한 사무직 회사원들에게 높은 보수를 주었습니다. 오늘날 애플을 떠올리면 될 겁니다.

하지만 코닥이 창출한 일자리 중엔 단순 업무 노동자들도 만족할 만한 보수를 지급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코닥 본사가 위치한 로체스터에는 두 세대에 걸쳐 중산층이 상당히 탄탄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앞서 여러 차례 이러한 차이를 지적하며 불평등이 심화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이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에는 칼럼에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조지 이스트먼(왼쪽)

사진과 카메라 기술에 근본적인 혁신을 이끈 조지 이스트먼과 스티브 잡스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이스트먼의 혁신은 이스트먼 코닥이라는 회사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둔 제품이 됐고, 회사가 위치한 로체스터 지역에 수 대에 걸쳐 지속할 단단한 중산층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 잡스가 애플에서 이룩한 혁신은 이에 비하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전후 미국 경제, 산업의 황금기를 통틀어 보더라도 낮은 직급에서 시작해 대기업 전체 임원급에 오른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에반스 씨의 사례는 대단히 이례적인, 그야말로 성공 신화라 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코닥을 비롯한 기업들이 한창 잘 나가던 그 시절에는 기계 기사부터, 창고 재고 관리 노동자, 비서 등 그 기업에 고용돼 일하는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고용 환경과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누리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컨설팅 업체들은 애플이 새로운 본사 건물을 짓기 전 본사에서 일할 직원이 약 23,400명, 이들의 평균 연봉은 10만 달러 이상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30년 전 코닥의 경우 로체스터에서만 6만 명 가까운 직원을 고용했고 각종 수당을 합친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해서 7만 9천 달러였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거둔 큰 성공의 원인으로 분명 예전보다 훨씬 적은 직원만 고용하고도 높은 매출을 올리며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산업 구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 IT 기업의 주식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플과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페이스북 세 기업이 지난해 올린 이익은 400조 원에 육박합니다. 하지만 이 세 회사에 고용된 직원 수는 20만 5천 명에 불과합니다. 1993년, 당시 미국에서 최신 기술로 무장한 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기업 세 곳을 꼽으라면 코닥과 IBM, 그리고 AT&T였는데, 이 세 회사가 고용한 직원 수만 67만 5천 명이었습니다.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보다 세 배나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도 이들이 거둔 이익은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고) 27% 적었습니다.

진보정책 연구소의 마이클 만델에 따르면 현재 가장 가치 있는 테크 기업 10곳에 고용된 직원은 150만 명 정도입니다. 1979년 미국 10대 기업이 고용한 노동자는 총 220만 명이었습니다. 다만 만델은 오늘날 테크 업계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는 과거 몇십 년에 걸쳐 규모를 확장했던 산업에 비해 훨씬 빠르다고 덧붙였습니다.

1980~90년대 이 회사들에서 생겨난 주요 일자리들은 오늘날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즉, 기업 전체 전략을 짜거나 새로운 기술을 실험, 연구, 개발하는 일, 제품 마케팅 담당 부서 같은 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 없이 회사에서 중요한 자리고, 담당 직원들의 급여도 좋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예전 대기업은 거의 모든 노동자를 직접 고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다릅니다. 즉, 제품을 생산하거나 물류 관리 담당 직원은 물론이고, 회사나 공장 경비원을 비롯해 제품 생산부터 소비자에게 가는 긴 과정에 조금이라도 관여하는 노동자들을 기업이 직접 고용하는 형태였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과거보다 훨씬 커진 상황에서 과거에는 꼭 있어야 하던 노동력이 이젠 기업에서 더는 필요 없어진 부분도 있습니다. 아이폰 카메라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코드는 최종본을 서버에 올리면 그 순간 전 세계의 필요한 곳에서 바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과거 코닥에서 생산하던 사진 필름은 직접 제조해서 세계 곳곳으로 직접 실어 날라야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경쟁 기업에 뒤처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기업들이 핵심 인력을 제외한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하거나 하청업체에 외주를 주는 식으로 직원 규모를 줄이고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도 사실입니다. 비용 절감이 지상 과제가 된 뒤 일어난 일이죠. 청소부나 경비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운영 체제의 버그를 잡아내는 일, 소셜미디어에 이용 원칙에 어긋나는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 수천 장의 입사 원서를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간접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실리콘밸리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물론, 애플 같은 회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데 비해 특히 직원 규모가 작은 아주 독특한 사례이긴 합니다. 페덱스 유니폼을 입고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는 대개 페덱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일하는 개인사업자입니다. 페덱스가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죠. 씨티은행이나 JP모건 등 대형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상담해주고 각종 벌금을 대납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계약직입니다. 어떤 회사의 고객 상담실에 전화를 걸면 열에 아홉은 회사 본사가 아닌 다른 주, 혹은 다른 나라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계약직 상담원들이 전화를 받습니다.

애플은 애플 제품이 잘 팔릴수록 애플 외에도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에 쓰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관한 경제를 총칭하는 ‘앱 경제’ 종사자 숫자만 1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애플은 추산하고 있습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44개 주에 애플 스토어가 있는데, 애플 스토어 직원들은 분명 다른 소매점에서 일하는 직원들보다 월급을 더 잘 받고 각종 혜택도 많은 편입니다. 애플의 눈부신 성장세에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예를 들면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도 평균 연봉이 7만 7천 달러나 되는 일자리 6천 개가 창출됐습니다. 애플은 직접 고용하는 직원 외에도 미국에서만 애플 제품을 공급하는 이들에게 연간 500억 달러를 쓴다고 밝혔습니다.

애플 측은 애플이 미국 50개 주 전체에서 총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말했습니다.

“건설, 고객 관리, 소매, 엔지니어링, 앱 개발, 제조, 판매 및 물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포함한 집계입니다. 전일제 정규직이든 시간제 직원이든 모든 애플 직원들은 직원 혜택과 주식 보상을 받습니다. 유능한 계약직 직원들의 노력이 없다면 애플 제품과 서비스를 매일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기 어려울 겁니다. 미국 전역에서 애플 제품과 서비스 공급에 힘써주는 9천여 공급 업체와도 애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혁신을 거듭해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대기업이 된 뒤 무사안일에 빠지고 자신들의 자리보전에 급급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사진 분야에서 처음에는 혁신을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낸 코닥에도 그러한 옛날 기업의 폐단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파산 뒤 몇 년간 잇단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을 거듭한 끝에 현재 코닥의 직원 규모는 미국 2,700명, 전 세계 6,100명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많은 산업체에서 직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계약직과 외주 업체에 위탁이 늘어난 건 분명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거나 적어도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이었습니다. 2010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외주를 맡긴 경우 청소부의 임금은 4~7%, 경비원의 임금은 8~24% 깎였습니다.

임금이 늘지 않다 보니 자연히 전반적인 불평등은 증가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의 제이 아담 콥과 텍사스 대학교의 켄후 린은 1989~2014년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불평등이 심화한 원인의 약 20%는 저숙련 노동자 혹은 중간 단계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던 관행이 사라진 데서 비롯했다고 분석했습니다.

1980년대 코닥과 오늘날 애플의 차이는 블루칼라 노동자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닥친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지게차 vs. 3D 지도

필 한든은 1970년 해군에서 전역한 뒤 코닥에 입사 지원했습니다. 바로 채용돼 물류창고에서 지게차 운전을 시작했죠. 그가 처음 받은 급여는 시급 3달러,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시급 20달러 정도(한화 약 22,600원)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하는 계약직 직원이 처음 받는 급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물론 말끔한 애플 사무실에는 지게차 같은 중장비가 없다는 점도 다르긴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면 직업의 영속성일 겁니다. 한든 씨는 1986년 플로리다로 이주할 때까지 16년 동안 지게차를 운전했습니다. 10년 뒤 코닥으로 돌아왔을 때도 바로 다시 채용돼 같은 일을 했으며 회사 근속 연수에 비례해 받는 혜택도 다 받을 수 있었죠.

실리콘밸리 테크 업계에서는 이른바 임시 문화가 흔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한 회사에 오래 머무는 경우는 흔치 않고 몇 달마다 새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일하다가 또 옮기는 경우가 잦습니다. 한 회사에서 한 번 체결하는 계약 기간이 18개월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실리콘밸리 여러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29살 크리스토퍼 콜은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콜은 애플 지도의 품질 보증 업무를 맡은 적도 있습니다.

“매년, 길어야 1년 반마다 새 일거리를 알아보는 일이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이들은 업무에 따라 보수는 많이 받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정규직에 밀려나는 처지임을 깨닫게 될 때가 왕왕 있습니다. 대개 계약직에는 스톡옵션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직 회사의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꽤 많은 부를 쌓은 이들 가운데는 스톡옵션으로 받았던 주식 덕을 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계약직에는 이런 가능성이 애초에 차단된 셈입니다. 계약직은 또한 유급 휴가나 병가, 육아 휴직을 쓸 때도 차별받습니다. 직장 의료보험에도 가입이 된다지만, 대기업들이 정규직 사원에게 들어주는 최고 수준의 의료보험보다는 단계가 낮은 경우가 보통입니다.

별것 아닌 차이와 차별이 유난히 도드라질 때도 많습니다. 애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한 기술자는 새로운 버전의 애플 운영 체제를 발매하기 전에 몇 달간 시험하고 개선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성공적으로 운영 체제를 발매한 뒤 애플의 정규직 직원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근사한 파티에 초대받았습니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계약직 직원들은 그저 동네의 작은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조촐한 자축연을 갖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일할 때는 정규직과 계약직 나눌 것 없이 모두 함께 열심히 일했지만, 마지막에 받는 대우는 이토록 달랐습니다.

화이트칼라 계약직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미국 전체로 보면 딱 중위 소득 정도에 해당합니다. 뛰어난 기술을 갖춘 이들이라면 연봉 10만 달러(한화 약 1억 1천만 원) 이상 받는 일도 있죠. (천정부지로 치솟은 베이 에이리어의 집값을 생각하면 그 돈도 부족합니다.) 컨설팅 업체의 집계를 보면 애플이 현재 본사가 위치한 산타클라라 카운티에서 간접 고용한 노동자는 약 18,000명, 이들의 평균 연봉은 5만 6천 달러(한화 약 6천 4백만 원)입니다.

물론 급여 명세서에 드러나지 않는 혜택이나 장점도 있습니다. 계약직으로라도 애플이나 구글에서 일하면 맛있기로 유명한, 외부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구내식당도 이용할 수 있죠. 친구들에게는 어쨌든 세계 최고의 기업에서 일한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고용 형태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대기업일수록 근무 여건도 좋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초과 근무가 잘 없는 편인 것도 장점이죠. 계약직으로 일하다가도 잘 해서 눈에 띄면 승진할 수도 있습니다.

테크 업계의 계약직 주선 업체에서 일하는 프라딥 차우한은 계약직의 삶이 끔찍한 것은 물론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자리가 있고 일한 만큼 보상을 받고 일하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상적인 건 아니죠. 특히 계약직인 이상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회사로서는 노동 계약을 언제까지 맺어야 한다는 의무가 없죠.”

바로 이 점이 예전 대기업 중견 사원들이 누린 혜택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즉, 예전에는 일자리의 영속성이라는 것이 보장됐고 직원들은 회사와 명운을 같이하기에 자연히 높은 충성심을 갖고 회사를 위해 일했죠.

한든 씨도 자신이 코닥에서 일하며 힘들었을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회사 자체는 정말 훌륭한 직장이었죠. 오랫동안 제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코닥 덕분이에요.”

변속기와 스테이플러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 제품에 필요한 변속기를 조달할 때는 당연히 여러 업체로부터 입찰을 받아 가장 싼 가격을 써낸 업체의 제품을 사는 식으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동차 제조사는 가장 좋은 품질의 변속기를 만드는 업체를 골라 거래하고, 물건이 좋으면 계속해서 신뢰가 쌓이며 거래를 이어갑니다. 싼 물건을 썼다가 1단 기어도 잘 변속이 안 되는 불량품을 시장에 내놓았다가는 자동차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자동차 제조사도 스테이플러 같은 간단한 사무용품을 살 때는 말 그대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제품을 사다 쓸 것입니다. 브랜드나 기능은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요.

노동자가 처한 상황도 어떤 맥락에서 보면 비슷합니다.

제품 엔지니어나 마케팅 책임자를 적재적소에 뽑아 쓰는 건 회사의 성패를 가를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 제대로 된 사람을 뽑으려 하고 물론 전일제 정규직 노동자로 뽑고 오래 붙잡아두려 각종 혜택을 줍니다. 마치 변속기 같죠. 그런데 지난 세대를 거치며 회사들은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 노동자를 점점 스테이플러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즉, 우수한 노동력을 높이 사는 대신 가능한 한 싼값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회사의 핵심 역량에 가용 자원을 모두 쏟아붓고 나머지는 외주 업체에 위탁하라는 풍조가 자리 잡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당장 애플 임원들도 본사 건물 청소부를 누구를 뽑고 누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더 좋은 아이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어떤 일에 대한 수요가 들쭉날쭉할 때도 회사가 해당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업체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선보이기 전에 품질이 괜찮은지, 각종 문제는 없는지 미리 점검해보는 데는 단기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들은 제품을 출시하는 동시에 필요가 없어집니다.

사실 직접 고용 형태보다 외주 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 형태로 계약을 맺고 일하면 급여나 보상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이론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가 로펌을 고용해 법률 관련 일을 처리할 때는 자체 법무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때보다 통상 훨씬 큰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물론, 법률 서비스가 독특한 영역이긴 하지만, 어쨌든 외부 업체를 통한 계약직이 반드시 값싼 노동력과 일치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회사가 갈수록 더 많은 기능을 외주로 위탁하면서 단지 경영상의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근거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회사들은 외주를 늘릴수록 인건비를 비롯한 각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회사들은 모든 직원에게 똑같은 직장 의료보험을 들어줘야 하고 연금을 보조해야 합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큰 혜택인데, 주요 기능을 외주로 돌리거나 계약직 채용을 늘리지 않는 회사들은 이 모든 비용을 고스란히 내야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슷한 임금을 받더라도 다른 비급여 혜택을 가능한 한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와튼 경영대학원의 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회사들은 공평무사의 원칙을 저버린 것으로 낙인 찍히는 데 대한 부담이 상당합니다. 회사들은 경비원이나 행정 비서가 부사장과 받는 급여가 크게 차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이 신경씁니다. 실제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보다 저숙련 노동자나 중간 정도 숙련 기술을 가진 노동자에게 돈을 더 주는 경향이 있죠.”

린다 디스테파노가 코닥의 비서직에 지원한 건 1968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부활절 주간이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코닥에 취직해 주급 87.5달러(한화 약 10만 원)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값어치로 환산하면 연봉 3만2천 달러(한화 약 3천 6백만 원)에 해당합니다. 그녀는 40년 동안 코닥에서 일했는데, 비서직을 거쳐 회사 출장을 관리하는 등 다양한 일을 맡았습니다.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이사들의 저녁 식사를 챙기는 일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졸 출신 사원이 흔히 책임지고 맡아서 하는 일은 아니긴 했죠. 하지만 상사들로부터 신뢰를 받은 탓에 그런 일도 했던 것 같아요.”

코닥에서 성실히 일한 린다는 번듯한 집을 샀고, 너무 낡기 전에 새 차를 살 수 있었으며, 가끔 공연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일하던 부서는 2008년 구조조정으로 해산됐고, 직원들의 출장 관리 업무는 외주 업체에 맡겨졌습니다. 당시 시급 20달러(한화 약 2만 3천 원)를 받던 그녀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그나마 벌이가 가장 좋은 자리가 마트 약품 코너에서 일하는 판매원으로 시급은 코닥에서 받던 급여의 절반도 안 되는 8.5달러(한화 약 1만 원)였습니다.

로체스터 vs. 쿠퍼티노

로체스터를 조금만 돌아다녀 보면, 이스트먼 코닥이라는 회사가 이 도시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도심 어디서든 코닥 타워가 눈에 들어오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극장 이름도 이스트먼 극장입니다. 지금은 주차장이 텅 비어있는 거대한 건물은 코닥 파크라고 알려진, 과거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코닥이 과거에 발간한 연례 보고서를 보면 경영진이 코닥이 창출하는 일자리와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연례 보고서의 제일 첫 장에는 항상 미국과 전 세계에서 코닥의 직원이 몇 명이나 되며 이들에게 지급하는 임금과 각종 혜택이 어느 정도인지가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애플은 곧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새로운 본사 건물로 이주할 예정입니다.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에서 애플은 당연히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도시 전체 일자리의 40%를 애플이 책임지고 있고 지역 사회의 환경 개선금과 인프라 건설 지원금으로 7천만 달러(한화 약 7백 90억 원)를 애플이 부담했으니 쿠퍼티노는 곧 애플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쿠퍼티노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돈이 많은 부자에 국한됩니다. 중위 집값이 한 채에 190만 달러(한화 약 20억 원)이 넘으니 중산층도 명함을 내밀 수가 없죠.

사비타 바이디야나탄 쿠퍼티노 시장은 아직 애플 CEO인 팀 쿡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애플 본사를 유치했다는 건 분명 도시의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스스로를 글로벌 대기업으로 여기지, 쿠퍼티노에 있다는 걸 딱히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긴 해요. 중산층도 발붙이기 힘든, 상류층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 동시에 문제입니다.”

애플 건물의 청소부 라모스 씨는 쿠퍼티노에서 떨어진 산호세에 있는 방 두 개 딸린 아파트에서 자식 4명과 함께 삽니다. 월세는 2,300달러(한화 약 2백 60만 원). 가끔 초과근무를 해서 그녀가 버는 세전 수입은 연봉으로 34,520달러(한화 약 4천만 원)입니다. 월세만 매달 내도 27,600달러(한화 약 3천 1백만 원)로, 그녀와 가족이 쓸 수 있는 한 달 생활비는 600달러(한화 약 6십 8만 원)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끔 있는 초과 근무를 빠지지 않고 해서 수당을 받고, 10대가 된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돈을 보태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는 수준입니다.

그녀의 근무시간은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입니다. 가끔 다른 청소부가 출근하지 않으면 그 몫까지 할 일이 많아집니다. 초과 근무가 생겨 그만큼 수당을 받는 건 좋지만,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기 전까지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올해 그녀가 속한 미국 서비스노조 서부 지부에서 임금 협상을 도와준 덕분에 그녀는 시급 60센트 오른 급여를 받게 됐습니다. 코닥의 경우 노조는 많지 않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반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코닥 같은 회사는 노조 설립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항상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습니다.

애플의 노동자들에게 단결이나 연대는 가망 없는 화석화된 언어입니다.

“똑같이 청소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각자 맡은 일만 하고 퇴근하게 근무 일정이 짜여 있어요. 일터에서 잠깐잠깐 마주치는 것 외에는 서로 볼 일도 없고요.”

라모스 씨가 스페인어로 말했습니다. 반면 1980년대 코닥에서 청소부로 일을 시작했던 에반스 씨가 기억하는 당시 일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에반스 씨는 코닥에서 임원까지 승진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휴렛패커드 임원직을 거쳐 현재는 인사 컨설팅 업체인 머서의 정보 책임자로 있습니다.

“이스트먼 코닥은 직원들을 분명히 신뢰했어요. 가족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회사에 보탬이 될 만한 기술을 배우거나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고 의사를 표시하면 분명 회사 안에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기꺼이 필요한 지원을 해주고 도움을 주려 했어요.”

이제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책 <충성의 시대는 끝났다(The End of Loyalty)>를 쓴 저자이자 드러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릭 바르츠만은 말합니다.

“현재 테크 대기업들을 보면 전부 다 21세기형 사내 복지라 부를 만한 것들을 하고 있죠. 회사 안에 푸스볼 같은 게임기도 들여놓고 구내식당에는 신선한 초밥이 항상 있고 뭐 그런 거요. 하지만 그런 걸 누릴 수 있는 직원들은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서 그 혜택을 받는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교육을 많이 받고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아 관리직까지 오르면 정말 일할 맛 날 겁니다.”

하지만 21세기 경제는 평범한 노동자 수백만 명을 그러한 혜택에서 배제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아낌없이 투자해 보유하고 같이 성장하는 자산인 대신, 가급적 아끼고 줄여 쓰면 좋은 비용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원문: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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