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다이어트에 ‘나’는 없었다

  • 입력 2017.09.01 10:26
  • 수정 2017.09.01 12:34
  • 기자명 고함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름마다 핸드폰 배경화면은 '다이어트 자극 사진'이다.

어느새 8월의 마지막 주다.

아르바이트. 장학금 신청. 친구들과의 약속내가 경험하는 여름은 캘린더 앱에 적혀 있는 일정들로는 담아낼 없다. 다이어트와 자기 혐오가 매년 나의 여름을 가장 요약하는 단어였고, 이번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먹을 먹어도 다이어트 보조제 하나면 체중이 감량된다는 광고에 혹해 일주일 생활비보다 많은 금액을 뻔했고, 거울 살찐 모습으로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외출을 피했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서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하체 운동을 시작했었다. 하루 20분도 되는 운동을, 나는 일주일도 넘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살을 빼겠다면서 노력하지 않는 자신에게 의지가 박약하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동영상 속의 트레이너는 비디오를 꾸준히 따라 하기만 하면 하이힐을 신을 , 혹은 짧은 바지를 입을 슈퍼 섹시(Super Sexy)’ 다리가 연출된다고 장담했다. 내가 살을 빼고자 했던 이유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상하게도 조금씩 불편해졌다. 운동을 시작한 5일째, 결국 나는 마일리 사이러스 운동 영상을 노트북에서 지웠다.

네이버 웹툰 < ID 강남미인!> 1

운동을 그만뒀다고 해서 살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네이버 웹툰 < ID 강남미인> 주인공 미래가 스쳐 지나가는 여자마다 점수를 매겼 나도 길거리에서 끊임없이 다른 여성들의 다리와 다리를 견줬다. 언젠가 홍대 거리 한복판에선 다리가 가장 굵어 보여서 혼자 조용히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마른 몸에 대한 갈구와 강박은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자신을 옥죄여 왔다.

그로부터 며칠 드라이브를 정리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사진들을 보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밤마다 라면을 끓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날씬한 몸이었다. 그렇게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의 나의 체형은 지금의 나와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 살이 보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몸을 좋아했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는 몸에 만족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나는 몸이 변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을까. 비현실과 현실 경계가 갈수록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말랐음에도 볼륨감 넘치는 여성의 몸은 현실이, 표준 체중에 속하는 나의 몸은 비현실이 됐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혐오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남성 중심적 사회는 센티미터 단위로 여성의 몸에 대한 관리 기준을 세우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몸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 혹은 이상적인 몸에 도달해가는 몸만이 살아남아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는다. 여성 스스로 어느새 사회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을 답습하여 본인의 몸을 검열하게 된다. 이상적인 몸을 향한 분투는 끝없는 자기 혐오로 이어지는 도돌이표다.

언제쯤 지나가는 여성들과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비교하지 않을지, 언제쯤 아메리카노 이외의 커피를 주문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몸을 최대한 무덤덤하게, 자신으로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게 지워진 자국을 더듬어가며 다시 나를 그려가고 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한참 동안 몸을 가만히 바라봤다. 속으로 되뇌었다.이게 몸이구나.’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