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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 80%가 데이트폭력 가해자라는 기사는 사실일까?

  • 입력 2017.08.18 09:45
  • 수정 2017.08.18 09:48
  • 기자명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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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에 발행된 기사 하나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남성의 80%가 데이트폭력 가해자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
[단독] 성인 남성 80% 데이트폭력 가해자… ‘행동 통제’ 가장 많아, 세계일보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를 인용 요약한 기사가 왜 [단독] 딱지를 붙이고 있는지는 둘째치고… 사실 쉽게 이해되는 기사는 아니다.
우선 남성 80%가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 자체가 경험적으로 와닿지 않고, 연구 방법이 남성 스스로가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설문조사에 응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는 데이트폭력을 가했다”고 응답한 남성이 80%에 달한다는 것인데, 보통 이런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의 과오를 축소하거나 감추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요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사에서도 알 수 있지만 연구보고서 원문을 보면 그 이유가 좀 더 명확히 드러난다. 본론부터 들어가면, 이 보고서가 사용한 ‘갈등책략척도’가 강도가 매우 약한 폭력(?)까지 데이트폭력의 범주로 넣고 있기 때문.
예를 들어 상대의 핸드폰이나 블로그를 점검하는 것, 통화가 될 때까지 통화하는 것, 다른 이성을 만나는지 의심해본 것 등은 데이트폭력 중 ‘통제행동’에 들어간다. 문을 세게 닫거나 발을 세게 구르는 것은 ‘정서적 폭력’에 들어간다. 상대가 원치 않는데 얼굴이나 팔, 다리를 만지는 것은 ‘성폭력’에 들어간다.
이 보고서는 통제행동을 데이트폭력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이 피해자에겐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신체적 폭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포함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한남 아웃!'이 아니다.
세계일보의 기사만 보면 이 연구보고서의 결론이 “한국 남성의 80%가 데이트폭력을 행사한다! 한남충 아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의 결론은 그게 아니라, 이러한 폭력이 어떤 요인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에 있는지를 분석하고 어떻게 더 심각한 데이트폭력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또 이 보고서는 스스로의 한계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성별에 따른, 연령대에 따른 심층분석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
예를 들어, 같은 척도를 이용한 논문 ‘집착 성향과 대학생의 데이트 폭력 간의 관계'(2014, 서경현, 양승애) 에서는 연인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남성의 31.4%, 여성의 58%로 조사되기도 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2배 가량 더 많은 폭력을 가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통념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방어적 행동이나 상대를 밀치는 것 등 강도가 약한 공격까지 신체적 폭력에 들어가는데다가, 여성을 때려선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남성의 답변이 소극적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말로 통념과 달리 데이트 폭력에 성차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데이트 폭력의 끔찍함, 굳이 과장은 필요없지 않을까
데이트 폭력의 실태는 끔찍하다. 전 여자친구를 가둬두고 성폭행하거나 폭행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심심찮게 터져나온다.
하지만 세계일보의 기사 같은 건 오히려 데이트 폭력의 현주소를 직시하기보다 두 성별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물론 데이트 폭력을 어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정말로 남성의 80%가 데이트폭력 가해자일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정의에 따르면 여성의 80%도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라.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외의 내용들이다. 어떤 요인이 데이트폭력과 연관성이 있는가, 데이트폭력을 막기 위해 어떤 예방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들. 남성의 80%가 데이트폭력 가해자라는 과장되고 선정적인 기사 제목 뒤에 숨겨진 보고서의 진짜 결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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