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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점을 위한 수강신청, 배움을 가로막는 벽이다

  • 입력 2014.03.17 11:01
  • 수정 2014.03.17 11:31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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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이 과목 어떤가요?”
“지난 학기 그 과목 어땠어?”
“이 과목 정말 편하다더라.”

개강을 앞둔 대학생들의 단골 대화주제는 수강신청이다. 이러한 대화를 나누며 각자 예비시간표를 작성해둔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은 보통 듣기 쉬울 것 같은, 즉 만만한 과목이다. 만만한 과목을 찾기 위해 학교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숙명여대를 졸업한 사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거라서 듣기는 지루하지만, 그런 걸 신청하면 학점이 잘 나온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재수강, 수강철회, 학점 포기 등을 경험한다. 학생들은 보통 학점이 잘 나오지 않은 과목을 재수강한다. F학점만 재수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A+를 받은 과목을 고의로 재수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점포기도, 수강철회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대학교를 5학기 째 다니고 있는 기자의 경우, 필수 외의 영어수업은 수강신청을 한 적이 없다. 영어수업을 들어서 높은 학점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다음 책(book.daum.net)

다시 생각해보면 기자는 토익점수가 신발 사이즈이므로 영어수업을 듣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배경지식이 있는 것, 그나마 학점이 잘 나올 거라고 생각되는 과목에 관심이 가게 되고, 그렇지 않은 과목은 고려하지 않게 된다. 현재 베스트셀러인 『심리학, 미루는 습관을 바꾸다End Procrastination Now!』에서 윌리엄 너스William J. Knaus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만 있어야 한다’는 완벽주의가 ‘실패’하는 것을 두렵게 만든다. 이는 결과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성공할 자신이 없는 것에 한해서)’이라도, 막바지까지 미루게 만든다고 한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조차 미루게 만드는 게 완벽주의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라는 농담에 겉으론 웃지만, 속으로 공감하는 이유다.

이런 문제는 나 혹은 내 주변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의 김정훈 연구교수는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쉽게 주지 않거나, 과제가 많은 수업을 기피한다.”라고 말했다. 신라대학교의 박동섭 교수는 “‘강의평가 점수가 1등인 교수’는 일단 출석을 부르지 않고, 조별발표와 과제가 없으며, 중간과 기말은 리포트로 대체하는 교수지, 잘 가르치는 혹은 열심히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별다른 방법이 없다. 도전에 대한 실패의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책장에 꽂혀 있는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라는 책이다. 대학교 간판과 졸업학점은 평생을 가는 낙인 중 하나다. 젊었을 적 한 번의 실패, 성공이 평생을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사회는 학점이라는 낙인으로 우리를 평가한다. 입사지원서에 ‘학점’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면접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도전에 리스크가 높으면, 도전자체를 기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BS<자본주의>제작팀·정지은·고희정이 쓴 『자본주의』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생활이 안정될수록 모험을 하더라도 더욱 창의적인 일에 도전한다.”고 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할 자유가 없는 자유란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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