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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시' 논란과 스탈린그라드의 운명

  • 입력 2016.06.14 14:01
  • 수정 2016.11.15 14:21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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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시 만들자" 새누리당 박승호 예비후보

길가에 핀 개나리를 보며 봄을 느끼듯 정치인들의 망언퍼레이드를 들으며 선거철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수조원대 거부 정치인이 연봉 1만원짜리 시장이 되겠노라 공언하는가 하면, "시작은 쿠데타였으나 끝은 혁명이었다" 같은 논리파괴형 어록도 등장했다. 선거의 흥행지수를 높이고 유권자들의 변별력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정치인들의 이같은 무리수는 반가운 일이다.

지난주 새누리당의 경북도지사 예비후보 박승호 씨가 구미시의 이름을 ‘박정희시’로 바꾸자는 화통한 제안을 했다. 박정희 동상 건립과 박정희 추모제에 이은 박정희 숭배 시리즈의 완결판이라 할만하다. 박씨는 ‘박정희City’의 모델로 워싱턴DC와 케네디공항을 거론했다. 박정희의 이름에서 워싱턴과 케네디를 연상해낸 그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지만, 도대체 그것들과 박정희City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냐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눈 두 개에 코 하나 정도 말고는 별 공통점을 찾지 못하겠으니 말이다. 굳이 다른 나라에서 ‘박정희시’의 모델을 찾자면 구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볼고그라드 시내에 등장한 스탈린버스

무덤에서 걸어나온 독재자들

스탈린과 박정희는 닮은 점이 많은 지도자들이다. 한편에서는 양국의 경제발전과 안보체제를 다진 영웅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잔혹한 통치로 종신독재를 이룬 악인으로 양가적인 평가를 받는다. 자국에서는 이렇게 논쟁적인 인물이지만 자국 땅을 벗어나면 비교적 일관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또다른 공통점이다.

스탈린에게는 박정희가 갖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 이름을 본뜬 도시다. 스탈린은 1925년 볼가강 하류에 자리잡은 차리친이라는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하사'했다. 독재자의 이름을 덮어 쓴 이 도시는 10여년 뒤 끔찍한 대가를 치른다. 2차대전 중 러시아를 침공한 히틀러는 사활을 걸고 스탈린의 상징을 정복하려 했고, 스탈린 역시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도시를 지키기 위해 총력전을 벌인다. 그 결과 이 도시에서는 200일 동안 20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투가 벌어진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퇴한 독일군은 치명상을 입었고 이 사건은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승기를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 도시의 이름이 스탈린그라드가 아닌 차리친이었다면 독소전쟁과 2차대전의 양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스탈린그라드는 1961년 흐루시초프에 의해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지면서 다시 볼고그라드라는 이름으도 개명된다.

지난달 볼고그라드 의회는 전승 70주년을 맞이해 1년 중 승전 기념일을 포함한 전쟁 관련 기념일 6일 동안 도시 이름을 '스탈린그라드'로 바꾸는 조건부 개명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지역 정치가들이 스탈린 재조명 열풍에 편승해 도시 이름에 스탈린을 다시 덮어 씌운 것이다. 100년도 안돼 이름이 세번이나 바뀐 도시의 운명이라니 기구하기도 하다.

죽은 독재자는 저절로 부활하지 않는다. 스탈린의 부활은 그의 워너비 푸틴 대통령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강력한 전제군주의 이미지로 각인된 푸틴의 리더십은 과거 스탈린의 리더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푸틴은 집권 후 소련 국가(2001년)와 '붉은 별'(2002년) 등 옛 소련의 상징물을 복원시키면서 대중의 소련제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90년대 지독한 경기침체의 수렁에서 허덕이던 러시아의 서민들에게 푸틴의 애국주의는 희망의 이정표로 다가왔다. 야당과 시민사회, 서구의 외신들이 연일 푸틴의 행보를 '네오 스탈린주의'라며 비난했지만 푸틴의 지지율은 집권 이후 한번도 50%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 시베리아 미르니에서 열린 스탈린 동상 제막식에서 미르니의 시장 아나톨리 포포프는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모든 것을 바친 러시아의 위대한 아들(스탈린)을 위해 기념비를 세운다”며 독재자 스탈린을 극찬했다. 작년 박정희 탄신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반인반신"이라며 망자의 무덤에 노크를 하던 구미시장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독재자를 배출해 낸 양국 도시의 시장들이 나란히 숭배의 찬가를 쏟아낸다. 곳곳에 그들의 동상이 다시 세워지고 여당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죽은 독재자들을 찬양한다. 그들의 찬가가 스탈린과 박정희가 아닌, 현세계의 지도자 푸틴과 박근혜를 향해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죽은 독재자를 신의 영역으로 밀어올리는 것은 언제나 산자들의 욕망이다. 관련글 - 반인반신과 짬짜면, 경계의 미학

당장 '박정희시'라 불러도 손색없을 도시의 풍경

두 도시의 애처로운 동병상련

올해 3월 5일은 스탈린이 사망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스탈린의 묘가 위치한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는 추모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스탈린이 태어난 조지아에서는 하루종일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이날 볼고그라드(구 스탈린그라드) 시내에는 스탈린의 얼굴이 그려진 버스가 운행됐고, 러시아 관영 NTV는 '스탈린은 우리와 함께 한다'라는 제목의 6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작년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탄신제에는 3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서울의 모 교회에서는 사후 34년만에 제1회 박정희 추모예배가 열리는가 하면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박정희 기념공원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박정희의 유산인 새마을운동을 부활시켰고 여당의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5.16쿠데타를 옹호한다.

이 강렬한 데자뷰가 시사하는 것은 되살아난 양국의 국가주의다. 그 이름이 곧 국가였던 스탈린과 박정희는 양국 국가주의의 화신이다. 이들의 부활은 곧 강한 국가주의의 재현이다. 푸틴 시대에 되살아난 스탈린과 박근혜 시대에 되살아난 박정희는 이러한 정치적 함의를 공유한다.

한국에는 '어떻게 스탈린과 박정희를 비교해'라며 목청 높일 사람들이 많겠지만 러시아에는 '변방의 독재자를 어떻게 스탈린에 비교해'라며 불쾌해 할 사람들이 그보다 더 많다. 이해당사자들이 주도하는 내부의 논쟁은 언제나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외부인의 시선은 냉정하다. 러시아땅 밖에서 스탈린을 러시아의 영웅이라 평가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국민들의 뜨거운 옹호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은 스탈린을 그저 포악한 독재자로 기억할 뿐이다. 스탈린은 집권기간 동안 천만명 이상의 자국민을 학살하고 3000만명 이상을 강제 이주시켜 이중 절반 이상을 죽게 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기념하는 도시의 느낌은 어떠한가.

박정희를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박정희를 추억하는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외국 언론에서 박정희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세계 독재자 순위 차트 정도이다. 가끔 그의 이름이 제3세계 독재자들의 궤변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외부인들의 보편적인 시각에서 볼 때 박정희란 이름은 김일성보다 조금 덜 유명한 독재자 이름일 뿐이다.

스탈린그라드는 자신의 이름을 통해 구미시가 '박정희시'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준다. 다시 스탈린그라드가 된 볼고그라드와 '박정희시'가 될지도 모를 구미시의 운명, 참 애처로운 동병상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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