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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원자폭탄 후유증은 대물림되고 있다

  • 입력 2017.07.18 12:09
  • 기자명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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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은정 의원의 전화 연락

한은정 더불어민주당 창원시의원

7월 13일 저녁 한은정 더불어민주당 창원시의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예상하지 못한 전화였다. 내가 경남도민일보 7월 11일 자에 데스크 칼럼으로 쓴 ‘김형률특별법과 탈핵’을 읽었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의논하자는 전화였다.

2. 핵 피폭 2세 김형률의 유전 불치병

김형률은 핵 피폭 2세다. 어머니 이곡지가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에 노출됐다. 다섯 살 나이였다. 그러나 겉으로는 탈이 없었다. 이곡지가 결혼해 낳은 자식이 김형률이었다.

김형률의 이 책은 일본 사람이 펴냈다. 속되게 말해 쪽팔리는 일이다.

김형률은 전체 여섯 남매 가운데 넷째였다. 그는 1970년 태어나면서부터 핵 피폭 유전병을 앓다가 2005년 5월 숨을 거뒀다. 면역력과 호흡 기능이 거의 없는 불치병 ‘면역글로불린M 증가에 따른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이었다.

김형률은 2002년 3월 22일 핵 피폭 2세로 유전병을 앓는다는 커밍아웃을 했다. 핵 피폭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최초 커밍아웃이었다. 그때 핵 피폭 유전병은 김형률 혼자뿐이었지만, 김형률이 세상을 떠날 때는 70명 남짓으로 늘어나 있었다.

지금은 ‘원폭2세환우회’에 2,400명가량이 가입해 있다고 한다. 유전병을 앓는 2세는 1,300명 정도고 이 가운데 600명이 경남 합천에 산다. 우리나라 핵 피폭 2세는 최소 1만 명이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지 탓에 제 모습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3. 합천에 핵 피폭 관련자가 많은 까닭

한은정 의원이 말했다. “‘김형률특별법과 탈핵’ 칼럼을 보고 핵 피폭 2세 문제를 처음 알았다. 알고 보니 핵 피폭 문제도 일제 강점이 남긴 아픈 역사였다. 그런데도 여태 히로시마·나가사키 핵 피폭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앞에 적은 대로 대충 알고 있는 바를 얘기해 드렸다. 한은정 의원이 물었다. “어째서 합천에 핵 피폭 1세·2세가 그렇게 많으냐?”

“합천에는 너른 농지가 적은 줄 안다. 1930년대 합천에 3년 잇달아 기근이 들었다고 들었다. 먹고 살 거리가 없어진 합천 농민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갔다. 막노동이라도 해서 입에 풀칠해야 하니까. 그런 까닭으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합천 출신이 많았고 피폭을 당하고 해방이 되면서 고향 합천으로 돌아왔다. 합천을 한국의 히로시마라고도 하는 이유다.


그래서 핵 피폭이자 관련 시설인 ‘평화의 집’ 등이 합천에 자리 잡게 됐다. 이런 것이 다시 핵 피폭 1세·2세들을 합천으로 좀 더 모여들게 한 측면도 있는 줄 안다. 원폭2세환우회 연락처를 알지 못해 대신 김형률 아버지 김봉대 어른 전화번호는 알고 있으니까 문자로 보내드리겠다.”

김형률의 어머니 이곡지님

4. 나는 한은정 의원이 정말 고맙다

나는 내가 쓴 칼럼을 보고 누가 연락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여태 그런 적이 한 두어 번이나 있었을까? 그것도 대부분 항의성이었을 따름이다. 통화를 마치고 한은정 의원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심이었다. 지금도 진심으로 고맙다. 칼럼을 읽어줘서가 아니라 핵 피폭 2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해 줘서 그렇다. 한은정 의원은 말했다.

“우리가 일제 강점의 아픔으로 알고 있는 것이 여태까지는 이른바 위안부 문제뿐이었다. 핵 피폭 1세와 2세 문제도 우리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유전병이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다.

일단 창원시에 핵 피폭 1세와 2세가 있는지 자료를 달라고 해놓았다. 합천에 핵 피폭 1세와 2세가 많으니 더불어민주당 조직을 가동해 경남도의회와 해당 시·군의회 차원에서 얼마나 되는지 파악부터 하겠다.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이지 싶다.”

5. 미국도 관리하지 않는 핵 피폭 유전병

김형률의 생전 활동 모습. 더운 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했다.

정말이다. 한은정 의원 얘기가 맞다. 핵 피폭 유전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핵 피폭 가계(家系)와 혈연으로 맺어지면 바로 그 순간부터 핵 피폭은 ‘내 일’이 되고 ‘내 문제’가 된다.

핵 피폭 2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관리·보호·통제를 하지 않는다. 가해자인 미국도 하지 않고 원인 제공자인 일본도 하지 않고 피해자인 대한민국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방치돼 있다. 오히려 어설프게나마 조사를 한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슬픈 얘기가 있을 정도다.

지난해 국회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는데 여기서도 핵 피폭 2세는 통째 빠뜨려 놓았다. 정부는 예산 타령을 했다. 김형률의 아버지 김봉대 어른은 김형률이 하늘에서 지금 상황을 보면 어떻겠는지 참담하다고 했다.

지금처럼 무방비한 상태가 몇 세대만 이어져도 나중에는 누구나 핵 피폭 유전병의 고통 또는 공포에 시달릴 수 있다. 지금처럼 관리·보호·통제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떤 가계가 핵 피폭과 관련돼 있고 어떤 가계가 관련돼 있지 않은지 알 수 있는 근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6. 핵 피폭은 지금도 진행 중

게다가 핵 피폭은 지금 이 순간도 진행 중인 사건이다. 72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과거지사로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 스리마일, 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2017년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7회 부산반핵영화제에서 김형률 아버지 김봉대, 어머니 이곡지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서해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핵발전시설에서 일상이 돼 있다. 핵발전소 노동자들한테 질병이 생기고 아픔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인정하지 않는다. 핵 피폭과 무관하다고 한다. 직업병으로 인정하면 골치 아픈 문제를 표면으로 끄집어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제대로 된 대책이 없는 상황이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 핵 피폭 유전병은 아무도 모르게 우리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기 십상이다. 지금 당장 대책을 세워서 그렇게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김형률은 핵 피폭 유전병에 대해 생전에 이미 정답을 내놓았다. “원폭 2세에 대해 현재 수준에서 검사 가능한 분자유전학적 조사를 하고 동시에 미래 유전학 지식이 보다 발전할 경우를 대비해 원폭 2세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보관할 필요가 있다.”

7월 7일 제7회 부산반핵영화제에서 만난 김형률 아버지 김봉대는 감동이었다.

현재 치료 가능한 부분은 치료받을 수 있게 하고 지금 수준을 넘어서는 부분은 미래 의학의 발달을 기대하자는 얘기다. 누가 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소박하고 온건한 주장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이 두 가지 모두 하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더 있다. 김형률의 일생이 증명하는 것처럼 이들의 삶은 제도권 바깥으로 내쫓겨 있다. 이제라도 핵 피폭 1세는 물론 2세·3세·4세들의 생존권을 인간답게 살 권리(인권) 수준에서 빠짐없이 보장해야 한다.

한은정 의원의 관심이 정말 고마운 까닭이 여기 있다. 한은정 의원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핵 피폭에 따른 유전병을 공론화하는 지렛대 구실을 해주면 좋겠다. 법률·행정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덕분에 대를 이어 고통받는 핵 피폭 모든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그것은 핵 없는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핵이 있는 이상 핵 피폭 또한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 핵 피폭 유전병 또한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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