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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길에서 더욱 갓길로 밀려나는 존재들

  • 입력 2017.07.17 16:38
  • 수정 2018.05.29 09:37
  • 기자명 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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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텍사스 크리스쳔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강남순 교수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것으로, 본인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서울에 와서 아침마다 산책하는 도림천에서 만나곤 하는 이들이 있다. 500원 하는 커피와 삶은 달걀 등을 파는 이들--남자, 남편이 있는 여자, 그리고 여자. 이렇게 세 사람이다.

남자와 남편이 있는 여자는 나름대로 자기의 고유한 상권을 확보하고 있어서, 고정된 자리에서 장사하며 고정된 고객을 확보한 듯하다. 반면 늘 나의 눈을 끄는 사람은 한 여자-사람이다.

도림촌의 노점상 풍경. ⓒ강남순

그녀는 확고한 터를 가지고 있는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특정한 장사자리도 없다. 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혼자서 힘겹게 장사에 필요한 것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긴다. 남자는 힘이 세서 장사에 필요한 것들을 자전거에 잔뜩 싣고서 단번에 이동한다. 남편이 있는 여자는 작은 트럭에 남편이 물건들을 싣고 와서 내려주고 여러 가지 세팅을 해 주니 손쉽게 장사준비가 끝난다.

그런데 이 여자는 힘이 세지 않고, 손수레나 자전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와줄 사람도 없이 언제나 혼자다. 이 사람이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장사 터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참으로 힘겨운 생존 서사다.

오늘 아침, 밤새 비가 많이 와서 도림천이 넘쳤다.

다리 밑과 나무 밑에서 커피를 팔곤 하던 남자와 남편 있는 여자는 나오지 않았다. 자전거나 손수레도 없고, 힘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이 여자-사람만이 물이 없는 곳을 피해서 나와 있다. 저 많은 물건을 혼자서 하나하나 이동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야 했을까.

500원짜리 커피, 그리고 삶은 달걀 등을 파는 이들--이 주변부 사람들의 상권형성 공간에서도, 여전히 남자-권력, 남편-권력이 존재하고 있다.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스스로 남자도 아니고, 도와주는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있는 여자도 아닌, 그래서 어느 권력의 줄도 지니지 못한 한 여자-사람은 주변부 중의 주변부로 밀려 나간다.

갓길에서 더욱 가장자리 갓길로 밀려나는 존재들. 살아감의 뒷모습들은 이렇게 아프게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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