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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개념발언', 누가 누구에게 칭찬을?

  • 입력 2014.03.06 09:28
  • 수정 2014.03.06 09:51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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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몇몇 연예인들이 ‘개념발언'의 주인공이 되었다. 레인보우 재경, 씨스타 효린, 소녀시대 수영 등 SNS를 통해 삼일절을 기념하는 언급을 한 이들이다. 언론에서는 이들의 발언을 기사화하며 네티즌들이 이들을 '개념 연예인'으로 칭찬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지난 2월 27일 기사를 통해 소개된 ‘개념돌'의 정의를 보자. 기사는 개념돌을 “각종 선거 때 투표소에서 사진이 찍힌 아이돌 등 팬들이 보기에 흡족해 보이는 행동을 한 아이돌”이라고 설명한다. 투표일 뿐 아니라 삼일절·현충일 같은 국경일,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마다 개념 연예인은 속속 탄생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을 알렸던 연예인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일 SNS에서 삼일절을 기념하는 언급을 해 화제가 된 가수 씨스타 효린.

단어의 1차적 의미에 머물렀던 '개념'은 이제 사물이 아닌 사람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되었다. 특히 대중과 언론의 입맛에 따라 연예인들의 정치적 행보나 발언이 ‘소신' 내지는 '개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군 입대 등 정치적으로 옳은 입장이 정해져 있는 사안일 경우 더욱 그렇다. 환경을 고려한 행동,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행동이나 각종 선행 등 공익적인 듯 보이는 일들도 개념 연예인의 기준이 된다. '싹싹한' 인사성이나 예의 있는 모습이 방송을 탈 때도 마찬가지다. 스태프들에게 물건을 돌리거나, 프로의 모습 즉 열악한 상황에서도 방송을 위해 참고 견디는 모습들도 바람직한 행동의 범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연예인에게 '무개념'의 수식을 붙이는 경우도 흔하다. 예전 행동과 비교하며 환골탈태 했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한다. 최고의 조언자 '네티즌'들과 언론에 잘 보이면 '무개념'에서 '개념'으로 갈아탈 수 있다. 연예인들에게 요구되는 '예의범절'은 형체 없이 불려져 수많은 모범생을 만들었다. 새로운 인격을 부여받은 이들은 '착한'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그렇다보니 '이 정도는 알고 행동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국경일이나 투표일이 돌아올 때마다 강해지는 듯 하다. 앞서 언급한 언행들이 일반인에게 적용될 경우, 주변에서 칭찬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개념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개념의 존재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직업으로서의 '연예인'에 대한 특수한 시선에 기인한다. 연예인은 '원래' 그런 것은 잘 모르며, 소위 말하는 '소신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안에 대한 판단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연예인들의 언행은 배경에 따라 개념 혹은 무개념이 된다. ‘개념 연예인'을 기특하다는 듯 칭찬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인격이나 지성을 낮춰보고 있었다는 태도가 드러난다. 물론 그 '인격과 지성'을 대중과 언론이 정의하고 판단할 권리는 추호도 없다.
언론은 개념연예인을 소개하는 기사를 통해 '반응'에 앞서 연예인들이 '개념발언을 했다'고 먼저 정의하고 들어간다. 제목부터 "효린 개념발언, 같은 말도 달리 보이는 '아이돌의 힘'"(SSTV), "효린 개념발언 "삼일절, 오늘 의미 되새기는 하루 되셨으면..." 개념돌 등극"(SBS fun2)과 같은 식이다. 이 단어를 일반적인 듯 통용하고 편견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OO가 개념연예인이었네', 혹은 'OO은 개념돌이었네' 등으로 요약된다. 수많은 개념연예인 소개 기사가 '기승전 네티즌'의 전철을 밟고 있으며, 마치 그들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쥐고 있는 양 묘사된다. 개념이라는 단어가 평균적인 상식·예의 등을 두루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는 이상, '개념연예인 틀짓기'의 핵심에는 연예인들의 행동양식을 심판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포털 뉴스탭에서 '개념'을 검색한 결과. 대부분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언행에 대한 기사다.


국경일과 관련된 발언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은 연예인들이 ‘개념 없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해당 발언을 한 이들에게 개념이 있다는 이름표를 붙일 수는 없다. 일반인이나 정치인들의 발언이 그저 의견표명으로 보이는 것은, 그 의견이 어떤 시각으로든 해석될 수 있는 동시에 그 발언에 '개념'이 있는지, 즉 지적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등을 판단할 권력은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은 공리(公利)를 판단해야하는 '공인'이 아니다. "연예인은 옳은 행동을 해야한다"는 논리에 종종 등장하는 '타의 모범' 역시 그들과는 연관이 없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승자는 혼자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다른점이 딱 하나 있어. 바로 대중은 지고의 심판자라는 점이야. 오늘은 환호를 보내지만, 내일 타블로이드 신문에 우상의 스캔들이 폭로되면 박수를 치는 게 바로 대중이야. 그들은 이렇게 말해. '불쌍한 것 같으니. 다행히도 난 이런 치들과는 달라.' 오늘 그들은 숭배하지만, 내일은 아무런 가책없이 돌을 던지고 십자가에 못 박을걸. 그게 대중이야." 변덕스러운 타블로이드 신문을 꾸미는 일부 언론들은 이러한 '지고의 심판자'를 만드는 데 동조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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