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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위는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 입력 2017.05.29 11:13
  • 기자명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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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위 사건

“A 대위는 동성애자로서, 군인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군사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점심시간 중 독신자 숙소에서 하급자를 추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 당국과 검찰은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데이팅 앱을 동원해 동성애자를 색출하였다고 알려졌다.”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군인권센터의 노력으로 세간에 알려진 A 대위 사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구속기소되고 징역형을 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을 최대한 건조하고 간략하게 요약하면 위와 같다.


군법원, ‘색출·처벌 논란’ 동성애자 대위에 징역형, 법률신문

군형법상의 추행

위의 요약은 군사법원 측의 보도자료를 건조하게 요약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진짜 건조하게 사실만을 명료하게 전달하지는 못한다. 이는 ‘추행’이란 단어의 정의 때문이다.

추행은 보통 상대의 의사에 반해 벌이는 성적 접촉을 말한다. 하지만 군형법상의 추행은 남성 간의 성적 접촉을 전부 일컬어 말한다. 다시 말해, 위의 문장을 군사법원의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대신 최대한 ‘진짜’ 사실에 따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A 대위는 점심시간 중 독신자 숙소에서 하급자 남성과 성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징역형을 받았다.”

다른 정황이 발견될 수도 있지만, 군형법 92조에 6은 ‘합의에 따른’ 성관계만을 처벌한다. 만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추행’이라 부르는 행위가 합의 없이 이루어졌다면, 법리적으로 남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92조 6이 아니라, 92조 2(유사강간)이나 3(강제추행)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추행’을 처벌하는 조항은 분명히 따로 규정되어 있다.

추행이란 단어는 사건을 오인하게 만든다. 알고 보니 성추행이었어?, 하는 반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는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군형법이 남성 간의 스킨십 일체를 추행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일어나는 착시일 뿐이다.

그래서 A 대위의 잘못이 없는 것인가

그럼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그래서 A 대위는 잘못이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군인권센터는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A 대위가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서 성행위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에 따르면 점심시간 중 독신자 숙소에서 이뤄졌음이 밝혀졌다. 물론, 점심시간이 일과시간에 해당하는지, 독신자 숙소가 영외에 해당하는지는 판단이 다소 다를 수 있겠으나 군인권센터의 발표에서 정보가 불충분했음은 사실이다.

점심시간 중 독신자 숙소에서 하급자와의 관계는 부적절한 데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형사처분에 이를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난 그리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군형법도 그렇게 규정하지 않는다. 이성애자가 점심시간 중 독신자 숙소에서 하급자와 관계를 맺었다 해서 처벌하는 법은 없다. 다만 동성애자에 관해서만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군형법 92조 6의 위헌성

군형법 92조 6은 동성애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이다. 같은 일이 이성 간에 일어났다면 처벌하지 않는다. 과거 여군이 없었을 때라면 군의 특수성 때문에 합의된 성관계라 해도 처벌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법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여군이 계속 늘고 있으며 여군 상대의 성범죄 또한 심각한 수위에서 횡행하는데도 여전히 동성애만을 처벌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 이런 이유라면 마땅히 모든 종류의 성관계를 처벌해야 마땅하다.

또한, 영외에서의 합의된 성관계 또한 처벌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 법 조항에 따르면 동성 군인과 성적 접촉을 한 행위 전부가 처벌되도록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법의 위헌성을 말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부분이다. (명확성 위배)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으니 위헌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간통죄에 대한 판단이 수년 만에 뒤집혔듯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뒤집힐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결정은 관습 헌법을 내세웠던 행정수도 위헌 결정보다도 더 심각한 –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조악한 – 결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다수의견은 ‘기타 추행’을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 규정하는 등 헌법재판관들의 주관적 판단을 합헌 결정에 적극적으로 써먹었는데 사실 위의 문구는 바다를 넘으면 혐오표현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을 만한 표현이다. 게다가 영외에서의 합의된 성관계도 처벌 대상인가 하는 명확성 문제는 아예 생까고 넘어가 버렸다.

이 조항이 5:4로 가까스로 합헌 결정되었음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근혜 정부 동안 시대의 흐름을 역행해 법조계를 비롯한 각계가 심각하게 보수화, 아니, 수구화됐음을 생각하면 사실 몇 년 내로 위헌 결정이 나올 것이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진짜 추행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정당한가

사실 강제추행을 한 것을 강제성을 띠었다는 증거가 불명확해 추행죄로 처벌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 군형법 92조 6은 쌍방을 모두 처벌하게 돼 있는데 상대가 기소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의심의 이유였다. 이 경우 문제의 본질은 성소수자 차별이 아니라 상·하급자 간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 문제로 뒤바뀐다. 하지만 강제추행죄가 엄연히 따로 마련돼있으며 강제성이 최소한 의심되기라도 할 경우 법리적으로 마땅히 수사를 더 진행해 이 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점 등, “사실은 강제적이었다”고 볼 근거가 매우 빈약했다.

군인권센터 측에서도 이런 의심에 대해 강경 대응을 피력하고 나섰다. A 대위와 관계를 맺은 사람 모두 소속 부대가 달랐으며, 실제 이들도 수사를 받고 기소 / 재판 과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A 대위는 다만 가장 먼저 그 법적 절차가 진행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군형법 92조 6이 강제성 여부와 관계없이 쌍방을 무조건 처벌하는 법임을 고려해 볼 때 A 대위가 ‘무서워서’ 스스로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한 뒤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한다. 강제성이 있었다면 A 대위만 강간 또는 강제추행이 적용돼 중형에 처할 뿐 그 상대는 죄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A 대위 관련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공식 입장, 군인권센터

난 이 또한 동성 간의 성관계에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한 사례라 생각한다. 이성 간에 독신자 숙소에서 점심시간에 성관계를 맺었고 내규에 의해 징계받았다는 소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사실 이것은 강간인데 강제성이 증명되지 않아서 군기 문란 행위로만 징계받은 것”이라고 의심할 이유가 없다. 똑같은 행위가 동성 간에는 형사처분을, 이성 간에는 징계(사실 직접적인 지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이조차 받지 않는 거로 보이지만) 받는 문제일 뿐이다.

물론, 군은 투명하지 않고 군 조사 결과를 무조건 신뢰하기도 어렵다. 쌍방 중 한쪽에서 “이것은 사실 성폭력”이라는 주장이 나왔다면 마땅히 그 주장을 경청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사건과 완전히 동떨어진 제3자의 가정 외엔 그런 증언이 나온 적이 없었다.

동성애자의 약자성은 이성애자와 쉽게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군영 내에서 동성 간 성폭력이 벌어지기도 하나 이는 대부분 동성애라는 성향과는 그리 관계가 없었으며 가해자의 대다수가 이성애자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성 강간이 이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성의 발현이듯 동성 강간 문제도 그리 보는 것이 합당하다. 오히려 성적 지향이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면 그는 군 내에서 큰 불이익을 겪게 되며, 특히 장교라면 그 불이익은 당연히 불명예제대를 비롯한 군 사회로부터의 격리로 나타나게 된다. 이성애자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이와 같은 맥락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연대

지금은 지지하고 연대할 때

이처럼 성소수성이 그 자체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심각한 약점이 될 수밖에 없는바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에서 A 대위를 비롯해 조사받고 있는 성소수자 군인들은 분명히 악법의 피해자들이다. 형사 처벌받았을 뿐 아니라 아웃팅 당해 사회적인 불명예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알고 보니 성범죄자가 아니냐는 주장은 그 자체로 심각한 2차 가해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군의 폐쇄성을 고려하자면 외부에서 상황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나마 정황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군사법원의 보도자료는 사실 의도성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추행’이란 단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만일 이 사건에 알려지지 않은, A 대위에게 잘못이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면, 나는 당연히 A 대위를 편들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군형법 92조 6에 의해 형사처분을 받았다는 현재까지의 정황은 그를 마땅히 악법의 피해자로 보고 연대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사족으로, 이 수사가 시작된 것은 두 남성 간의 성행위를 다룬 영상이 유포되었고, 이 영상의 등장인물이 자신의 관등성명을 대는 장면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A 대위가 해당 동영상의 주인공이며 이를 유출한 인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는데 A 대위는 이 동영상과는 무관하며 단지 이를 계기로 군 당국이 동성애자 데이팅 앱을 이용해 동성애자 색출에 나서며 걸려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은 명백히 A 대위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군형법 92조 6은 명백한 악법이므로 폐기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 보수층을 중심으로 강제적으로 단체생활을 하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영내에서의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률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군형법상 92조 6의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하고 군 위계 및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하급자와의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할 것이냐, 같은 부대 소속이거나 업무 연관성이 있을 때만 처벌할 것이냐 등 디테일에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고, 나는 마땅히 처벌 대상을 후자일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A 대위는 처벌받지 않는다.)

실제로 약자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이 방법이 옳다. 하지만 군형법엔 이런 합리적 법률 대신 동성애 처벌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현행법상으로도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는 유사강간 및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대체 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이처럼 미개한 법을 그냥 둬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강간을 막기 위해 성행위를 모두 금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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