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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이 JTBC 토론회를 유독 힘들어했던 이유

  • 입력 2017.04.27 10:16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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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방송된 JTBC <2017 대선후보 토론회>는 전반적으로 정책 토론이라 부를 만했다. 여전히 네거티브와 색깔론이 기웃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무게 중심을 잡아준 사회자의 역량 덕분인지 그동안 세 차례의 토론회를 겪은 대선 후보들의 학습능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후보들은 상대방의 정책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제법 연출했다. 모든 후보가 정책 토론에 걸맞은 능력과 태도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무난하다'고 할 수준까지의 평점은 확보했다. 기대치가 워낙 낮아졌기 때문일까?

ⓒJTBC

그런데 막돼먹은 후보 한 명이 토론회를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렸다.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그 후보, 바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였다. 그의 비뚤어진 질문들이 각 후보의 민낯을 드러내는 선한(?) 결과를 가져온 측면도 있지만, 토론회의 질을 생각했을 때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퇴행적이었다. "동성애 반대합니까?" 성 정체성에 찬반을 묻는 몰지각함에 치가 떨렸다.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한 후보들이 방송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무감각하게 내뱉을 수 있는 현실이 참혹하기만 하다. 질문과 대답 모두 수준 미달이었다.

이 참담함을 견디지 못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대신 나섰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1분 발언권 찬스를 기꺼이 사용하며 말을 이어갔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이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이다."

토론이 끝난 후 그는 “TV를 보고 계신 수많은 성소수자가 너무 슬퍼할까 봐 1분 발언권 찬스를 썼다"고 덧붙였다. 최소한의 상식을 말해준 그의 존재가 참으로 고마웠다.

ⓒJTBC

"일자리 문제를 민간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제일 첫째가 기업 기 살리기입니다. 기업에 투자해줘야 일자리가 생깁니다. 기업의 기를 살리려면 우리나라 기업이 작년에만 500억 불 이상 해외로 투자하고, 국내 투자는 사내 유보금이 수백 조 있고 투자를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청년 일자리가 안 생깁니다. 그러면 왜 일자리가 안 생기냐, 기업이 투자를 안 하느냐, 그건 우리나라의 3%도 안 되는 강성 귀족노조들 때문입니다. (…) 문재인 후보는 민주노총에 얹혀서 민노총 지지를 받아 정치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대한민국 젊은이 일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강성 귀족노조, 이런 적폐를 없애야 청년 일자리가 생기고, 노동정책이 바뀌어야 일자리가 생긴다."

미꾸라지가 돼 토론회 전체를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렸던 그 막돼먹은 후보의 활약(?)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자리 문제에 있어서 그 후보는 (청년)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강성 귀족노조의 탓으로 돌렸다. 기본적으로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기존의 보수가 취해왔던 스탠스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노조를 손봐야 하는 대상이자 적폐로 규정하고 없애자고 말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말을 하는 후보가 스스로를 ‘서민 대통령’이라 칭한다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애초에 강성 귀족노조라는 표현 자체에 문제가 있지만, 이를 지적하기에 앞서 저 막돼먹은 후보의 주장은 사실관계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2016년 투자·경영 환경 조사 결과(전경련이 매출액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에 따르면 정작 기업들은 투자 축소의 원인을 내수 부진(27.2%), 세계경제 회복 지연(14.7%)으로 꼽았는데, 통상임금이나 노조 등 노사문제 영향이라는 대답은 고작 0.9%에 불과했다. 막돼먹은 후보의 이야기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적확히 보여주는 조사다.

이처럼 막돼먹은 후보가 메시나 호날두급 드리블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도 막아서지 못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민주노총에 얹혀서 민노총 지지를 받아 정치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밖에 안 된다. 그 가운데 귀족노조는 몇 %나 되겠나.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1%밖에 안 되는 대기업 노조가 아닌 재벌인데 홍 후보는 재벌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줄곧 노조만 탓한다”며 반격에 나섰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응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아예 대답을 회피하고 ‘뉴딜 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JTBC

지난 26일 그러니까 토론회 다음 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토론은 유독 힘이 들었”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게시했다. 토론이라면 이골이 났을 그가 유독 힘이 들었다고 말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제가 대통령 선거 후보토론의 상대로 결코 인정할 수 없는 한 사람 때문입니다. 토론회 참석을 막을 수 없기에, 국민들의 양해를 구하고 토론거부를 선택했습니다. 그랬더니 맘 놓고 노동에 대해 악의적 선동을 늘어놓았습니다. 다른 후보들의 반박을 기대했지만 정적만 흘렀습니다.”

지난 3차 토론회에서 “저는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 후보로 인정할 수가 없”다며 “저는 오늘 홍준표 후보와는 토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4차 토론회에서도 심 후보는 홍 후보와 말을 섞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홍 후보의 노동에 대한 악의적 선동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만약 심 후보가 당시 수비를 할 수 있었다면 저 막돼먹은 후보의 드리블 같지도 않은 엉성한 발놀림을 얼마나 기똥차게 막아냈을지 그 실력을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의 노조는 귀족이 아닙니다. 그들이 거품 물고 공격하는 귀족 노동자의 급여는 연봉 7, 8천만 원 정도입니다. 이마저도 연장근로, 잔업특근으로 자신을 혹사시켜야 나오는 금액입니다. (…) 이삼십년 일한 숙련 노동자가 7, 8천 받는 것이 귀족으로 매도될 일입니까? 이 정도 안 받고 아파트 대출 갚고, 애들 대학 공부시키고, 또 결혼할 때 조금 거들어 줄 수 있습니까? 노동자로 태어나면 이 정도 꿈도 꾸면 안 되는 것입니까? (…) 귀족노조 타령에는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후진적 노동관이 깔려있습니다. 몽뚱어리를 굴려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안락한 삶을 누리고, 그러면서 권리 운운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행복한 꼴은 못 보겠다며 야비한 공격을 퍼붓는 서민후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심상정 후보는 저 막돼먹은 후보의 강성귀족노조 타령을 색깔론으로 규정한다. “반대세력을 사실도 아닌 낙인을 찍어 공격하는 정치폭력”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손봐야 할 암적인 존재는 노조가 아니라, 색깔론만 물고 사는 저질 정치인”이라 쏘아붙인다. 속이 다 후련하다. 만약 심 후보가 (당시 토론 현장에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을) 저 대사를 실제로 했었더라면 토론회를 지켜보며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었을 유권자들이 얼마나 통쾌했을까.

하지만 앞으로도 심 후보는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그래서 경쟁 후보로 인정할 수 없는 홍 후보와 말을 섞지 않을 것 같으니 그와 같은 명장면은 오로지 상상의 몫으로 남겨둬야 할 듯싶다. 앞으로 토론회가 2회 남았다. 막판을 향해 가는 만큼 더욱 열띤 토론이 진행될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다른 후보들도 머리 회전 속도에 제법 가속도가 붙었을 것이다. 또, 입이 풀릴 만큼 풀렸을 게다. 그렇다면, 부디 각성해서 저 막돼먹은 후보의 후진적 노동관에 제대로 철퇴를 내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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