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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빨갱이' 타령은 안 통한다

  • 입력 2017.04.24 16:06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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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JTBC <썰전>을 이끄는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는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할 만큼 신묘한 케미를 자랑한다.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롤'을 부여받은 두 사람은 정치 · 사회 · 문화 등 각종 현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도 서로의 '존재'와 '포지션'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물론 독불장군으로 변신하는 전원책을 잘 다독이며 이끌고 나가고 있는 건 전적으로 유시민의 몫이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때론 '앙숙'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절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두 사람이 가장 뜨겁게 맞부딪치는 주제가 있으니, 바로 '대북 정책'이다(오히려 복지 등 경제 정책에서는 그만큼의 격렬함이 보이지 않는다).

1.

전원책 : 지금까지 야당은 북한의 김정은에게 대화하자고 퍼주고 다 해주자는 거 아니에요!

유시민 : 9년 동안 제재해서 뭐가 좋아졌어요?

전원책 : 제재 안 하고 퍼줘서 뭐 어떻게 됐습니까? 핵 개발밖에 더했어요?

유시민 : 뭘 퍼줬어요, 퍼주기는. 이명박이 더 퍼줬지.

2.

전원책 : 북한이 원하는 걸 다 해주고, 그 결과가 긴장이라도 조금 낮아지고 하면 좋은데.

유시민 : 긴장은 많이 완화됐죠. 민주 정부 10년 동안, 그게 객관적인 사실이죠.

전원책 : 아니죠. 암암리에 핵은 더 고도화시키고 미사일은 드디어 ICBM까지 나왔지 않습니까.

유시민 : 그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다 개발한 거예요.

전원책 : 아니, 핵실험을 처음 한 건 노무현 정부 때 한 거예요.

유시민 : 장거리 미사일은 다 이명박 정부 때 한 거 아니에요.

지난 4월 13일 방영된 <썰전>의 한 대목이다. 사실 두 사람의 토론은 매번 제자리를 맴돈다. 그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대화 vs 제재.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과거 소환'은 일상적이라 할 만큼 익숙하다. 서로를 향해 삿대질해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소위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벌이는 토론에서도 마찬가지다.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런 모습만 주야장천 보고 듣다 보니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친지들이 모인 명절 식탁에서도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를 통틀어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만한 유시민과 전원책의 대화조차 저러하니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이런 상황은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DJ 시절에 북에 넘어간 돈이 현물과 달러 등 22억 달러,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현물하고 현금 넘어간 게 44억 달러다. 그 돈이 핵무기가 돼서 돌아왔다"고 지적하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금액은 오히려 이명박 · 박근혜 정부가 더 많았다. 확인해 보시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이는 3월 3일 CBS가 주최했던 더불어민주당 경선 첫 토론회에서 "김대중 · 노무현 정부에 대해 북한 퍼주기라고 비난하는데 실제 대북송금액은 YS 때 가장 높고 이명박 정부도 많았고 김대중 정부는 그보다 적었다"던 발언과 궤를 같이한다.

'퍼주기'라는 비난에 대한 노이로제가 만들어낸 신경질적 반응이라 봐야 할 것 같은데, 통일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문 후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정부와 민간의 인도적 지원을 의미하는 '대북 현물 제공'을 제외하고, 단순히 '대북 송금'만 놓고 봐도 노무현 정부 22억 938만 달러, 김대중 정부 17억 455만 달러, 이명박 정부 16억 7,942만 달러, 김영삼 정부 9억 3,619만 달러 순이었다. 물론 '대북 현물 제공'도 노무현 정부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김영삼 정부나 이명박 정부의 송금액이 생각보다 높은 건 사실이지만, '더 많았다'고 주장하는 건 사실의 왜곡인 셈이다.

"김대중-노무현의 대북정책 핵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대화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만큼은 계승해야 한다"는 안희정 충남지사(도 퍼주기 논란에서 왜곡된 통계를 사용했다)의 말처럼, 우리는 '핵심'에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부정확한 통계 자료를 통해 논란을 재확산하는 우를 범하기보다 정확한 숫자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이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북정책의 '원칙'을 천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너희도 돈 많이 줬잖아"라며 비겁한 태도를 보이거나, 말뿐인 어설픈 '자강안보'를 내세우는 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아 보인다. 물론 무작정 '퍼주기'라고 비아냥대는 정치 집단의 한심함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렇게 공포의 시나리오를 조장해서 국민 협박하고, 이런 식의 안보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우파의 전술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 남북관계라든가 북핵 · 미사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을 가려 막는 건 감정에 휘둘리는 거예요. 미우니까 때려버려야 해. 그리고 우리 힘으로 못 때리면 저기 바다 건너 센 놈 데려와서 때려버려야 돼.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된 거예요. 저는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군사 행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보고요." (유시민)

남북관계에 있어 '평화'를 이야기하는 정치인들과 그런 생각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좀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시대의 흐름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김대중 · 노무현,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동안 '대화' 국면이 진행됐고, 그 반동(反動)으로 이명박 ·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정부 10년의 '제재' 국면이 등장했다. 하지만 극단적인 강경 대책이 낳은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다. 개성 공단이 폐쇄됐고, 그로 인해 수많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대화가 철저히 단절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한반도의 숨 막히는 긴장은 (군수 산업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았다.

반동 이후에는 또 다른 반동이 이어진다는 역사의 전례를 돌이켜본다면, 다시금 변화가 시작될 차례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지난 23일 한국 사회여론연구소(KSOI)는 '차기 정부 대북관계 방향성'을 조사했는데,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조의 응답이 68.6%였다고 한다. 반면, '북한에 강경한 대응으로 나가야 한다'는 대답은 26.5%에 그쳤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의견은 '평화적인 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핵과 미사일 등에 대해서는 강경한 대응을 해야 한다(58.9%)는 것이었다.

선거 때마다 불어 닥쳤던 '북풍'이라는 '유령'의 영향력도 자잘해진 지 오래다. 더는 유권자들은 그와 같은 '쇼'에 속지 않는다. TV 토론회를 통해 불거진 '주적 논쟁'이나 뜬금없이 다시 제기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도 선거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오마이뉴스>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에 확인하고 결정하자고 말한 사람은 정작 송 전 장관 본인이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확보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칭 보수 후보들은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최한 1차 초청 토론회(3차)에서도 또 다시 '색깔론'을 제기하며 한심한 작태를 계속하고 있다.

색깔론은 효과가 있었을까? 그 표적이 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였을까? 한국 사회여론연구소(KSOI)의 대선 후보 지지율을 살펴보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44.4%로 굳건했다. 반면, 철 지난 '색깔론'에 의존한 채 자신의 존재감을 갉아먹고 있는 두 명의 정치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8.4%,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5.0%에 그쳤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들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은 23일 토론회에서 심상정 후보가 내뱉은 시원한 일갈(一喝)로 대신하고자 한다. 양측 모두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 결정이 잘된 것이냐, 잘못된 것이냐 진실공방이 아니다. 이전투구식으로 가고 있다. 그 당시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기권 결정을 했을 것이다. 지금 국민은 새누리당에서 10년간 너무 적대적으로 대치관계에 있어 상상이 안 가겠지만, 그때는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6자회담도 이뤄질 때이다. 남북이 평화로 가는 절호의 기회인데 한국의 대통령은 그것을 살리는 것으로 정무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본다. 유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 대화를 안 할 것이냐. 문재인 후보도 책임 있다. 단호하고 당당하게, 자신 있게 견해를 밝혔으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NLL, 사드, 인권결의안 등 모호한 태도가 정쟁을 키우는 측면이 있지 않은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대통령은 통치권을 위임받은 주체다. 비서실장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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