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안중근의 잘린 손가락은 어디에 있을까?

  • 입력 2017.04.12 11:02
  • 기자명 정운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2월 7일 청국과 러시아의 경계지역인 카리에서 동지 12명과 함께 ‘단지동맹'을 맺었다. 이날 안 의사는 결의의 표시로 왼손 무명지 한 마디를 잘라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고 썼다. 안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쓴 글씨에 낙관 대신 무명지 한 마디가 잘린 장인(손바닥 도장)을 사용하곤 했는데 이는 그의 상징과도 같다.

동지 정대호가 안 의사의 왼손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져 있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자 안 의사는 “의병이 될 목적으로 그리 했다"고 답했다. 혈서를 쓴 피 묻은 태극기는 1914년 8월 23일 자 <권업신문>에 실렸다. 혈서 태극기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대동공보사에서 한동안 보관했으며, 순국 후 엽서로 제작돼 널리 유포됐다. (우측 위 사진 참조, 사진 하단 오른쪽에 '안 의사의 손가락' 사진이 실려 있다)

우측 하단 원내에 안 의사의 단지가 실려 있다 ⓒ연합뉴스

사형집행 하루 전인 1910년 3월 25일 안 의사는 두 동생 정근, 공근과 마지막 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안 의사는 자신이 죽은 뒤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당부했다. 우선 하얼빈에 가서 동지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블라디보스토크 이치권의 집에 맡겨둔 의복과 손가락(단지)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안정근은 1911년 단지동맹원 백규삼에게서 잘린 손가락과 함께 혈서를 한 태극기를 넘겨받았다고 한다.

안정근의 차녀 안미생에 따르면 안정근은 해방 후까지도 단지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4년 8월 안정근의 둘째 며느리 박태정(당시 84세)은 MBC 광복절 특집다큐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에 출연해 “어머님이 저한테 하루는 ‘내가 단지를 허리에 묶어 메고 다녔는데'라고 하시더라고요"라며 안정근의 부인 이정서가 안 의사의 단지를 허리춤에 묶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효창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는 백범 김구 선생이 1946년에 조성한 것으로 안 의사의 유해가 묻혀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해 빈 무덤이다. 만약 안 의사의 단지를 찾아 이곳에 묻는다면 이 가묘는 하루아침에 진짜 묘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참고로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있는 고당 조만식 선생의 묘소에는 유해 대신 고인의 손톱과 머리카락이 묻혀 있다.) 안 의사의 온전한 유해를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선 단지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체 안 의사의 단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출처: <안중근가 사람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