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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노무현 프레임’ 탈출기

  • 입력 2017.03.21 17:08
  • 수정 2017.03.21 17:57
  • 기자명 직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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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대 프레임] 4년 전, 우리는 왜 좋은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했을까? 나쁜 대통령은 어떻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을까? 대선 레이스는 수많은 프레임이 격돌하는 소리 없는 전쟁터다. 프레임은 단순히 사안을 보여주는 ‘창’에 그치지 않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식을 바라보는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눈은 대선 주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가?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난 시선은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의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프레임 대 프레임] 3부작은 이 질문들에 대한 응답이다.

#1. 보수 언론의 프레임 : 노무현을 반복하라

“사람은 좋은데 표의 확장성이 부족해.”

“지지층이 견고한데 거부 세력도 견고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흔한 평가들이다. 대중의 이러한 평가는 ‘문재인은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라는 인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재인을 ‘노무현의 비서실장’으로 규정하면 자연스럽게 문재인의 지지층은 노무현 지지층에 국한된다.

ⓒ직썰

2010년 정치 데뷔 이후 문재인에게는 끊임없이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문재인에게 노무현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동무이자 정치적 동반자였음은 부인할 수도, 부인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가 문재인의 정체성을 온전히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짓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라는 말에서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의 향수를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의 실정을 떠올린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어떤 평가가 어떻게 내려지는가는 중요치 않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이 참여정부를 떠올리는 순간 문재인은 ‘과거의 사람’이 된다. 이렇게 ‘노무현 프레임’은 문재인을 회고적 인물로 가둔다.

“문재인, 대선 출정식서 ‘MB 정부 역사상 최악’ 본인이 일했던 노 정부는 성공?”(조선, 2012. 6. 18.)

“노무현 3주기, 친노가 ‘새 역사의 주역’ 될 수 있나” (동아, 2012. 5. 23.)

보수 언론은 끊임없이 문재인에게 ‘노무현’을 물었고,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문재인은 자연스럽게 18대 대선 주자가 아닌 ‘노무현의 비서실장’으로 박제됐다.

보수언론은 문재인을 노무현 프레임에 가둔 뒤 반복적으로 “노무현과 뭐가 다르냐” 물었다. 2011년 6월, 문재인이 《운명》을 출간하면서 대선 후보로 떠오르자 이런 질문은 본격화됐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문 씨는 친노 세력의 중심이다. 그가 노무현 시대의 어떤 점을 계승하고 어떤 점을 반성하는지부터 아직 잘 모르겠다.” (조선, 2011. 7. 7.)

2012년, 보수진영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은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한다. 야권의 강력한 대선주자의 성장을 지켜볼 수 없었던 보수진영은 그를 ‘NLL 대화록’이라는 감옥에 가두기로 한다.

#2. 문재인을 가둔 ‘NLL 감옥’

ⓒ직썰

“2007년 노무현, 김정일 남북 정상의 단독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약속해줬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2012. 10. 8.)

그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통일 등에 대한 김정일의 발언에 노 전 대통령이 동의를 표했다며 당시 정상회담 대화록의 공개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날 보수 언론들은 비슷한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언론은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정문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썼다. 대선을 두 달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터져 나온 폭탄 발언. 문재인 진영은 가만있을 수 없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공식 수행원이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반격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는 별도의 어떤 단독회담도, 비밀합의도, 비밀 녹취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왜 이런 황당한 발언을 사실처럼 말하느냐”

민주당은 근거 없는 폭로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정문헌의 발언은 보수언론의 스피커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해명’을 요구받는 처지에 몰렸다.

박근혜 후보도 “자신 있다면 대화록을 열람하자는 요구를 수용하라”며 공세에 나섰다. 보수 언론은 NLL 논란이 발생한 이유를 문재인이 대화록 공개를 하지 않아 생긴 것으로 몰아갔다. 새 시대의 대통령이 되려 했던 문재인은 NLL 대화록 늪에 빠져 과거의 대통령 노무현을 변호해야 했다. 그렇게 문재인 후보는 ‘NLL 감옥’에 갇힌 채로 2012년 대선을 맞이했고, 패배한다. 문재인을 가둔 ‘NLL 감옥’은 보수진영의 가장 성공적인 노무현 프레임이었다.

“보수 언론은 문재인에게 끊임없이 ‘그런데 노무현은?’을 물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문재인은 자연스럽게 ‘대선 주자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의 비서실장’이 되어버린다. 이런 프레임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문재인을 미래의 정치인이 아니라 과거의 정치 세력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 프레임 대 프레임

‘NLL 감옥’은 대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정통성의 위기를 맞이한다. 여당과 보수 언론은 국면 전환을 위해 다시 한번 NLL 대화록 논란을 꺼내 들었다. 2013년 6월, 새누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논쟁에 다시 불붙이며, 국정 조사를 요구한다.

당시 문재인 의원은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며 정면돌파에 나선다. 대화록 공개를 제안한 날, 문재인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보면 당시의 분노가 그대로 전달된다.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런 몰상식한 일들이 기세등등하게 행해지는 것을 보노라면 그저 기가 막힐 뿐입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이 사라진 희대의 사초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대화록이 어디로 갔지? 아니, 이건 문재인이 책임지고 보관했어야지!’ 그렇다. 보수 언론은 대화록 실종의 책임마저도 문재인에게 떠넘겼다.

“끝내 대화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문 의원은 책임론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문 의원이 지난 2008년 대통령 기록물 이관 작업을 총괄했기 때문이다. (조선, 2012. 7. 20.)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다. <프레임 대 프레임> 저자 조윤호는 “문재인이 NLL 대화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할수록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늪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결국, 문재인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에 대해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는다. 수많은 기자와 지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서 선 그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번 검찰 수사는 잡으라는 도둑은 안 잡고 오히려 신고한 사람에게 너는 잘못이 없느냐고 따지는 겁니다.”


(‘정치 생명’까지 걸면서 NLL 대화록 논란을 일으킨 정문헌 의원은 2014년 12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1천만 원 벌금형을 받고 항고를 포기했다. 지금은 바른정당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남경필 경기도 지사의 ‘측근’이 됐다.)

#3. 2017년의 문재인은 2012년의 문재인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2016년 NLL 대화록 논란은 다시 한번 문재인의 발목을 잡는다. 참여정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2016년 10월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출간한다. 송 장관은 이 책에서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북한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을 결정했고, 이 결정 과정에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이 개입했다고 밝혔다. 마치 되감기 영상을 보듯 여당과 보수 언론은 문재인에게 ‘고백’을 요구하며 압박했다.

문재인은 2012년과 사뭇 다른 대응을 보인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불리한 국면을 벗어났을까? 과거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

ⓒ직썰

2012년 문재인 후보는 보수진영이 짜놓은 ‘노무현 프레임’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민주-진보진영의 패배와 박근혜라는 기형적인 인물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관건 역시 문재인 후보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2017년의 문재인은 2012년의 문재인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2017 장미대선에서 문재인은 ‘노무현 프레임’을 탈출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을까? <프레임 대 프레임>이 그 해답을 제시한다.

프레임에 먹히는 자와 프레임을 이용하는 자. 이 차이가 이번 대선의 결과를 판가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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