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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에도 박근혜식 '은폐와 농단'이 있다

  • 입력 2017.03.15 15:35
  • 수정 2017.03.15 17:50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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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동남권에 '관문' 역할을 할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참여정부 등 역대 정부는 동남권 항공수요 증가를 고려할 때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꼭 필요한 일이라며 공감해 왔다.

그러다 2007년 제17대 대선 때 신공항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됐다.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안경을 끼고 신공항 바라본 이명박

이후 이명박 정부는 2008년 타당성 평가를 진행하고, 국가균형발전위에서 추진한 30대 광역선도 프로젝트에도 포함했다. 그러나 2011년 돌연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표면적인 이유는 사업성 부족이다. 하지만 뒷면에 더 큰 사정이 숨어 있었다. 부산과 대구, 보수 지지층의 분열을 우려한 것이다. 안방인 영남 지역에서 치열한 유치전이 벌어질 경우, 이명박 정권에 가해질 정치적 타격이 작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2016년 6월 김해공항과 그 주변 전경. ⓒ연합뉴스

그러나 신공항은 백지화된 것이 아니었다. 제18대 대선 때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호남이 '안방'이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신공항 부산 가덕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누리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PK의 표심 공략은 물론, 박근혜 후보를 곤란하게 만드는 묘수로 작용했다.

이에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중 플레이를 해야만 했다. PK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가덕도 신공항' 지지를 표명해야 했고, TK 지역에서는 '가덕도 신공항' 얘기를 쉬쉬해야만 했다. 박 후보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TK의 눈치를 살폈다. TK의 지역정치권은 가덕도보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밀양을 신공항 후보지로 강하게 제안했고, 또 일각에서는 대구공항을 확장 이전하자고 주장했다.

결론은 어땠을까.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씨는 2016년 6월 신공항 건설 포기를 선언했다. 대신 기존 김해공항을 신공항 수준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PK와 TK의 지역갈등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신공항에도 박근혜식 '은폐와 농단'이 있다

정부는 가덕도 신공항을 포기하는 대신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대안을 선택한 이유로 비용문제를 내세웠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비용은 최대 10조5800억 원으로, 김해공항 확장비용 4조1700억 원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정말 비용 때문일까?

줄곧 국민의 눈을 속여 온 정권이 바로 박근혜 정부다. 그런데 그 눈속임은 탁월함과는 거리가 멀다. 쉽게 들통 날 수밖에 없는 아둔함이 곳곳에서 뚝뚝 묻어난다. 이런 '미련한 눈속임'에 터 잡은 박근혜 정권식 은폐와 농단은 신공항 추진에도 동원됐다.

정부는 대구공항을 사실상 신공항 수준으로 키우기 위한 작업을 은밀하게 진행했다. 그다음 김해공항의 신공항 수준 확장(김해신공항)이라는 애초 계획에 칼질을 했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는 대구공항 부지 이전과 함께 새로운 부지에 대구통합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구통합공항 사업 비용은 7조2500억 원이다. 김해공항 확장비용보다 3조 원 더 많다.

반면 김해신공항에 대한 기대치는 훨씬 낮게 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해신공항 예비 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2040년 여객 수요를 2500만~2800만으로 예상했다. 이것은 애초 예측 3800만 명(파리공항공단 조사)에 비해 30%정도 낮게 추정된 수치다.

한편 최근 10년간 김해공항의 연평균 여객증가율은 11.4%이지만 박근혜 정부는 4.6%로 예측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다. 여기에 현재 김해공항 이용객 증가 추이를 반영한다면, 2040년에 2500만 이상이 방문한다는 정부의 예상 수치는 14년이나 앞당길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정부는 수요 예측을 낮춰 잡았을까.

'관문' 역할을 할 공항에 필요한 것

이대로라면 영남권에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 두 개의 공항이 들어설 판이다. 대구통합공항 건설과 김해공항 확장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11조4200억 원이다. 영남권에 대규모 공항이 두 개씩이나 필요할까.

영남권에 관문공항이 필요하다는 건 모두 인정한다. 항공 여객과 화물 수요가 수도권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관문공항으로서 역할을 다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대형 여객기(B747-8F, A380-800 등)가 이착륙하기 위한 활주로(길이 3.8km, 폭 60m 이상)가 필요하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있지만, 비상상황이 발생해 대형 여객기가 회항할 때 대체할 국내 공항은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영남권 관문공항은 인천 공항을 대체할만한 규모와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신공항 대신 추진하는 김해공항으로는 어림없다. 김해공항이 확장된다고 해도 대형여객기 이착륙에 적합한 조건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김해신공항 활주로가 3.8km 이상 보장되지 않으면 신공항 사업 자체를 무산시킬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인천공항에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태반의 여객기는 국내가 아닌 일본 간사이나 중국 푸동 공항으로 회항하는 실정이다. 김해공항이 확장된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으며, 대구공항은 더 어렵다. 미군 K-2 기지와 활주로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곳도 인천공항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도 저도 아닌 공항 확장에 정부는 엄청난 혈세를 투입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잘못은 TK 여론에 밀려 생뚱맞은 대구통합공항 카드를 꺼내 든 현 정부에게 있다. 신공항 건설에 대한 원칙과 기준은 깡그리 무시됐다. 국토 동남부의 관문공항은 PK의 것도, TK의 것도 아닌 '국민의 공항'이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아직 사업 초기 단계라는 점이다. ‘사업 중단’이 시급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공항 문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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