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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여, 대통령에게 정의를 가르쳐주세요

  • 입력 2017.02.10 11:49
  • 수정 2017.03.03 12:04
  • 기자명 여강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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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동의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지, 무능, 국정철학의 부재가 민간인 최순실에게 국정농단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게이트'가 맞다. 박근혜 게이트의 시작은 넘지 말아야 할 법의 선을 넘은 게 밝혀지면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그 선을 '국민감정법'이라고 부른다. 병역 비리와 특혜입학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국정1인자'로 불렸던 최순실이 딸 정유라를 이화여자대학교에 특혜 입학시킨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입학 후 수업을 듣지 않았는데도 문제없이 학점을 받았다는 뉴스는 대학생들과 청년층은 물론 그들의 부모들에게도 엄청난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짧은 시간에 촛불이 늘어난 데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의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과연 정의는 존재하는 것일까? 전 세계 사법기관들 앞에 공통으로 서 있는 저울과 칼을 든 여인의 동상은 그저 감상하기 좋은 조각품에 불과했던 것일까? 작년 말부터 시민들을 그렇게 분노케 했던 '박근혜 게이트'는 이제 그 마지막인 '탄핵 인용'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정의의 여신, 테미스

분명한 것은 '저울과 칼을 든 여인'이 결국에는 정의의 실체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여인의 정체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 테미스(Themis)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칼은 늘 추상같고 저울은 늘 기울어짐이 없기에 아무리 부정한 세상이라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촛불도 절대 꺼지지 않으리라! 이런 믿음과 함께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테미스는 티탄족 12신 중 하나로 메티스에 이어 제우스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여신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테미스의 부모다. 그래서인지 테미스는 가이아에 이어 델포이 신탁을 관장하는 여신이기도 했다. 훗날 델포이의 수호신은 빛의 여신 포이베를 거쳐 아폴론에게 상속됐다.

▲ 저울과 칼을 든 테미스 또는 디케

테미스가 정의의 여신이 된 이유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 제의 율법 등을 발명한 이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또 올림포스 신들의 회의를 소집하고 수관한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다.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주인, 신 중의 신이 된 것도 강력한 힘에 테미스와의 결합으로 정의와 분별력을 장착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테미스는 또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영웅 아킬레우스의 탄생에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우스가 한창 테티스에게 빠져 있을 때 테미스는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면 아비인 제우스를 쫓아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델포이의 신탁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결국, 제우스는 테티스를 포기하는 대신 인간인 펠레우스를 테티스의 남편으로 짝지어 줬다. 테티스와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아킬레우스였다.

델포이 신탁의 수호신으로서 테미스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크로노스가 신탁 때문에 자식들을 낳자마자 삼켜버리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일 때도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가 마지막으로 태어난 제우스를 은신처로 보내 크로노스의 살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도 테미스였다. 나중에 제우스는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고도 아버지인 크로노스의 뱃속에 갇혀있던 남매들을 구해냈는데 그들이 바로 포세이돈, 하데스, 헤라, 헤스티아, 데메테르였다. 또 불손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신들이 일으킨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이었던 데우칼리온과 피라 부부에게 다시 지상을 인간들로 채울 방법을 가르쳐준 이도 테미스였다.

헌재의 탄핵인용은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다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신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제우스와 테미스 자식 중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Horai) 세 자매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Morai) 세 자매가 있다. 호라이 세 자매로는 질서를 상징하는 에우노미아(Eunomia), 정의를 상징하는 디케(Dike), 평화를 상징하는 에이레네(Eirene)가 있고, 모이라이 세 자매로는 운명의 실을 뽑아내는 크로토(Clotho), 운명의 실을 배분하는 라케시스(Lachesis), 운명의 실을 끊는 아트로포스(Atropos)가 있다. 한편 테미스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를 낳았다고도 하는데 때로는 디케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어쨌든 디케는 어머니 테미스와 함께 정의를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졌는데 전 세계 사법기관들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두고 누구는 테미스라고, 누구는 디케라고 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불어 로마신화에서 테미스와 디케의 역할은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로 전승되는데 '정의'의 영어 표현인 'Justice'의 어원이 바로 유스티치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의 대통령은 정의에 대한 개념이 전무해 보인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최첨단의 시대 21세기에 20세기 그것도 70년대식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돼 있는 대통령이니 말이다. 사회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뜨려 놓고도 진심 어린 사죄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대통령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턱 막힐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놓고 헌재의 탄핵 결정에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 자신은 소수의 지지자만을 바라보며 그들이 자신의 탄핵을 막아줄 것으로 믿는다. 게다가 소위 '태극기 집회'라고 부르는 대통령 지지자들의 극우집회 참가자들은 그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탄핵을 반대하고 있다. 좌파 척결을 위한 블랙리스트가 뭐가 잘못됐냐 말한다. 세월호 당시 대통령은 정상적인 근무와 의무를 다했다고도 한다. 심지어 박정희의 딸이니 봐주자고도 한다. 요즘은 극우집회에 성조기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전 세계에 우리나라처럼 사대주의적인 극우나 보수가 있을까 싶다. 대통령이 말했던 우주의 기운이 극우집회에 등장한 성조기와 함께 미국에도 전해졌을까. 취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트럼프 대통령 탄핵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할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재벌들을 겁박해 재단을 설립하고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권에 직접 관여한 대통령을 헌재에서 탄핵인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조차도 필요 없을 것이다. 헌재의 탄핵인용은 테미스와 디케가 들고 있는 기울어지지 않는 저울의 최소한이다. '정의'라는 믿음 하나로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테미스여! 디케여! 대통령에게 정의를 가르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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